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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시 두 편]가파도에 가서 / 최귀례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2.06|조회수17 목록 댓글 0

가파도에 가서

최귀례

 

 

하얀 들판이 유영하며

구름을 그린다

 

바람은 스러지고

바람결에 슬픈 울음소리를 낸다

 

새하얀 드레스 요동치는

웃음들이 길을 틀 때마다 가파도는

실신을 거듭한다

 

깍두기의 전설은

정수리를 갈아엎은 꽃의 설움이다

 

바람이 품앗이하는 청보리가 춤추면

잡힐 듯 굽히지 않는

풀빛 속으로 혼을 불사른다

초록 물결이 파도칠 때마다

수염은 거세지고

무리의 환호가 벌판을 휘몰아친다

 

 

 

 

동해남부선

 

 

승객들은 얼굴이 없다

 

차창 밖의

풍경이 바람을 탄다

 

노란 풀꽃들의 마을에

기적이 멈추면

고개 숙인 사람들이 머리를 쳐들고

두리번거린다

 

 

노란 들판의 질긴 운명들은

거처를 탓하지 않는다

 

민들레의 척박한 넋두리가

장단을 뜯는다

행방이 묘연한 혈육을 찾아 헤매는

고들빼기의 현수막이 휘날린다

뽀리뱅이가 의문의 전화를 걸면 무성음이 울려 퍼진다 괭이밥꽃 무리는

자잘한 징검돌을 건너뛰며

봄의 노래를 연주한다 풀 중의 풀

씀바귀가 악보를 뒤적이며 철로를 달린다

 

초록빛 풀들의 영토가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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