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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시 두 편]이별밥 / 정 미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2.13|조회수15 목록 댓글 0

 

이별밥

정 미

 

 

복을 먹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복집에서 살기로 합니다 그 때문이었죠 불현듯 퍼붓는 폭우 속에서 헤엄치고 싶다거나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복어의 뻐끔뻐끔을 알아듣고 싶다거나 그런 이유 아니었죠 뜬금없이 그는, 복이 곧 독이라 하면서, 죽음의 경계까지 갔었다는 말을 느릿느릿하면서, 복어가 돼보기로 한 걸까요 유리창을 맹렬히 때려대는 빗방울을 바라보지 않았어야 했을까요 그랬다면 배불뚝이를 삼킬 수 있었을까요 복어는 늘 무언의 말을 하죠 독이고 나발이고 복이나 먹고 싶었는데 돌연, 그가 이별밥이라 합니다 복의 편린을 먹는 그는 볼록 배를 갖고도 무엇도 담지 않은 밥공기입니다 늘 부푸는 게 복어의 혈통이므로 커다란 수족관을 복의 집이라 믿고 싶습니다만, 복과 집을 나눠도 복을 대접한 그의 이별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오리무중의 죽음을 들은 식당에서 묵묵히 머물다 사라지는 복어가 되어버린듯이요 그러므로 독은 복의 밥입니다 복과 독이 공존하는 복집이 그의 기거공간이죠 난독성의 삶과 비통한 복 사이에 집을 지은 그가 까마득한 혼잣말을 합니다 공기 방울을 말주머니라 여기니 그가 대접한 복이 고봉밥이 됩니다 매끼가 생이고 누구나 눈앞의 밥이 마지막이고 한 생의 내력이 된다는 그의 말이 부풉니다 지금도 비는 치명적으로 쏟아지고 비로소 나는 복을 먹습니다 독이 되거나 복으로 스밉니다 독은 늘 가면을 쓰고 있죠 알 수 없는 복의 속내, by

 

 

 

 

그 집이 나를 붙잡은 건

 

 

여봐란듯이 서 있는 건물들 사이

뭉텅뭉텅 머리털 빠진 지붕 때문만은 아니었지

쓰러질듯한 낮은 담장 너머로

밖을 내다보고 서 있는 한 그루 목련 나무

그 밑에서 경계도 없이

냉이 제비꽃 봉숭아 엉겅퀴 애기똥풀꽃들

소근소근 이야기하고 있더군

 

커다란 대문과 높다란 담장 틈에서

밀리는 아픔보다 남은 삶이 애타는지

신발 질질 끌며 빨랫줄에 간신히 몸을 너는 노모

쪼그려 앉아 휴일의 그림자를 떠메는 부부

어수선한 흙 마당에서 뜀박질하는 아이들

기둥이 다리 저리다고 투덜거려도

햇살을 끌어당기고 있더군

 

나뭇등걸처럼 거칠어진 몸으로

아흔아홉 굽이를 건너온 그 집처럼

헐거워진 겨울을 빨아 너는 기와집 사람들

첩첩 어둠길 더듬은 수신호로 내건 하얀 손수건

지지구지지구 다림질에 환한 웃음으로 피어

목련꽃 식구들이 햇살과 비벼지는 찰나

그 집이 나에게 손을 흔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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