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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 편]전자레인지 위 고양이 / 김선미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2.13|조회수39 목록 댓글 0

 

전자레인지 위 고양이

김선미

 

 

팔이 저린 시인의 시를 읽는다

중앙문화센터에서 만난 시 선생님

시집을 출간하고

보낼 시집에 서명을 하고

봉투에 주소를 쓰며 우편번호를 찾고

나도 그처럼 팔이 저리고

시인들은 다 팔이 저리고

구파발 홍제동 서초 고양 수원 파주 창녕 대구 세종 부산 광주 해남

안성 문막 전주 강릉 창원 제주

주소를 쓰다 보면 시인의 시와 삶의 내력이 보인다

어린 시인 청년 시인 노시인 시를 쓰다 만 시인 할 것 없이

지하 방에서 지상 26층에서 학교에서 노동 현장에서

팔이 저린 시인은 몇 년 전 저세상으로 가셨다 그는 나의 첫 시 선생님

소식도 반갑고 시도 반갑고 어느 행사장에서 봐도 반가웠지만

그는 반가워하지 않을지 모른다 “여러분들은 모두 시인이 될 수 없

어요, 무슨 시인이야”

염소처럼 웃던

아직 멀었어 머리를 흔들며 돌려보낼 수도 있겠다 팔을 주무르며

“난 팔 병신이야” 하며 담배를 피워 물던

저 전자레인지 위 고양이

목에 리본을 달고

저린 팔을 내미는

콘도의 고양이

사람들 손을 타는 고양이

누구는 멀리 서서 지켜보고 누구는 옆에 앉아서 보고 누구는 만져보고

 

 

 

 

 

극장

 

올해는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사인한 사람들의 책을 사서 읽는다

개의 머리를 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들

다이아몬드 감정

사도 도마가 주님의 옆구리에 넣었던 팔과 손은 무덤 밖 그릇에 담겨
있다

이런 이야기들

 

거실에 커다란 전신용 거울을 달았다

액자와 액자와 액자 그리고 거꾸리 소파가 생겨난다

나는 생겨나고 생겨나고 생겨나고 살아있는 동안 계속 생겨날 것이다

절판된 책처럼

 

어느 날 내가 사라지면 거울엔 다이아몬드 감정이 생겨날지 개의 머리를 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이 될지 알 리가 없지만

 

없는 이야기라도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먼지 그네 누나 언니 어디 응 안돼 빨리 와 콩 맘마 이런 단어를 배우는 아기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다

아는 사람에게 또는 모르는 사람에게

사인해 주는 일들을 나는 오늘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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