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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 편]갯벌 / 마선숙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2.13|조회수23 목록 댓글 0

갯벌

마선숙

 

 

살아내기가 수의처럼 느껴지면

절뚝절뚝 서편으로 간다

바다에 다다라 날 내려놓는다

 

뻘이 천년 만년

잠언처럼 경전처럼 누워있다

 

모래뭉치

칠게 굴

갯지렁이

말미잘처럼 진흙에 영욕을 넣는다

 

나를 질문한다

 

뻘은 몸에 닿는 걸 온통 품는다

헛된 욕망을 공처럼 튀어오르지 못하게 한다

호미로 쓸쓸한 생을 캐어

나의 영토 동편으로 간다

 

저만치 벽 속의 집이 보인다

 

 

 

 

몸빼는 가고

 

엄마 대신 몸빼만 남았다

 

항아리 바지 입으면 엄마라 안 부를래

산골 할머니 같아서 창피해

얼룩덜룩 꽃무늬 벽지 입은 것 같아

 

눈 흘기고 투덜거리면 엄마는 세상을 향해 웃었다

 

몸빼 입으면 무서운 게 없어

덤빌 테면 덤벼 하듯이

 

이 몸빼가 네 아버지보다 좋다아

내 마음 편하게 해준 건 이것뿐이야

날 구겨 트리지 않은 것도 몸빼 뿐이야

 

엄마는 펑퍼짐한 바지에 엉덩이를 넣으며 일갈했다

 

드라마 보는 몸빼

밭일 하는 몸빼

손주 업은 몸빼

 

허리춤의 꼬깃꼬깃 고무줄로 감은 지폐와

곶감 몇 개

 

엄마 세상 떠난 뒤

빨랫줄에 걸려 우는 몸빼

 

빨래를 걷어 내가 입었다

엄마처럼 구겨지지 않았다

몸빼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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