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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 편]비둘기 비둘기 비둘기의 꿈 / 려 원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2.20|조회수12 목록 댓글 0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의 꿈

 

려 원

 

 

아스팔트 위에 압착 된 날갯죽지

비둘기의 꿈이 납작하다

 

몸통은 사라지고

붉은 핏자국만 저승사자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다

 

비둘기에게 아스팔트는 더 이상 날아갈 필요 없는

안식처였을까

든든한 반석, 따뜻한 바위로 보여

날개를 접은 것일까

 

섬뜩한 위험을 느낄 여지도 없이 나른한 권태처럼

압사당한 주검이

짓눌린 꿈에서 깨어날 듯

부리에 씨앗을 물고 날아오를 것만 같다

 

아무도 모르는 절벽에 이르러 지상에 떨군 씨앗들은

다시 꽃 피울까

 

꽃길을 건너온 들짐승들의 발자국에서는 흙냄새 대신

꽃잎 적신 빗물이 흘러

폭포수가 된다

 

산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메아리가 된다

삼나무 숲의 흔들림이 천둥번개가 된다

 

그리고

이름 모를 붉은 꽃이 핀다

 

비둘기가 날아와 앉은 바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건축물이 되었다

 

한 마리의 비둘기가 달리는 차에 치여

로드킬로 피를 흘리고

그 핏자국이 꽃으로 피어나기까지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의 말이 없는 죽음이 서럽도록 황홀한

노을이 되어

저 하늘을 꾸미고 있다

 

 

 

 

 

 

소금 의자

 

눈물자국처럼 피어난 꽃

소금꽃

의자에 핀 소금꽃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낡은 것은 낡을수록 그리움처럼 꽃을 피운다

 

빗방울 흩뿌리면

아버지는 가장 먼저 처마 밑에 의자를 들이고

삐걱삐걱 주저앉으셨다

 

아버지의 젖은 날개

빗줄기는 해안선까지 흩뿌린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반짝이며 날아오르는 거라고

아버지는

낡은 의자에도 꽃말을 새기셨다

 

낡은 의자가 있던 자리

수백 마리의 나비가 날듯

꽃들은 피어올라 풍경소리가 되었다

 

아버지의 마른기침 소리처럼 삐걱거린

소금 의자

 

장맛비 그치고 무지개가 다리를 놓으면

아버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가 헤엄쳐 온다

 

소금꽃을 피우던 아버지의 젊은 모습이

향유고래의 꼬리지느러미처럼 힘차게

물길 차오른다

 

내 가슴의 해안선에도 만조의 밀물이 밀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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