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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시인특집]바닥을 날며 / 곽경덕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09|조회수25 목록 댓글 0

바닥을 날며

- 박쥐자세

곽경덕

 

숨죽인 방 곳곳에 쥐들이 죽어있다

날갯죽지 가려운 새들이 앉아있다

잠시 눈을 감아 머리를 비운다

먼저 다리를 찢어 다리를 버린다

다음, 골반을 누르며 골반을 잊는다

마지막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내려간다

가슴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이제 버티기에 들어가 나를 만난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다친다

아픔을 덜 느끼려면 아픈 쪽을 잊어야 한다

머리를 비워야 가슴이 땅에 닿는다

살을 버리고 뼈를 잊어야 내가 보인다

몸에 길을 내고 길에 길들여져

비로소 나를 만나는 길로 들어선다

저녁이 밤으로 움직이는 사이

엎드린 박쥐들이 바닥을 날고 있다

 

 

* 박쥐자세(원어:우파비스타코나아사나):난이도 높은 요가 자세중 하나

 

 

 

 

 

정동길 걸으며

 

벽은 부딪치고 담은 속삭인다고 해야 할까

벽은 앞에서 막아서고 담은 옆에서 같이 걷는다

때로 담이 높으면 벽이 될 때가 있어 서로 머리를 맞대곤 했으나

벽이 높을 땐 담을 쌓고 살 때가 있어 가슴을 부딪치곤 했다

늘 집안에 있어 넘을 수 없는 벽

담은 늘 길 위에 있어 넘을 수 있다

벽은 평평한 몸에 종이를 발라 울기도 하고

곳곳에 무늬를 새겨 바뀔 것이 없으나

담은 틈 사이 풀싹이 자라고 이끼를 키우며 모습을 바꾼다

틀에서 구워져 다 똑 같은 벽돌은

손에서 깎여져 제 각각인 돌담 보다 반듯하나

나는 벽에 부딪칠 때 마다 돌담길을 걸으며 담에게 길을 물으면

그 울퉁불퉁한 얼굴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길을 알려 주곤 했다

벽은 마디마다 꺾이며 끝이 없으나

담은 길을 따라 휘어져 다시 돌아와 나를 맞아 주었다

 

 

 

 

 

 

시, 어쩌다 요가(박쥐자세)

 

먼저 다리부터 찢어야 했다. 처음, 팔꿈치가 바닥에 닿는데 한 달이 걸렸다. 다음, 머리가 닿는 데는 한해가 걸렸다. 이제 가슴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골반을 누른다. 다치지 않으려면 몸에 힘을 빼야 한다.

몸에 힘을 빼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 쉽지 않았다.

고통이 오는 부위일수록 본능적으로 힘이 들어가기 마련, 부상을 피하려면 힘을 빼야 하는데, 아픔을 덜 느끼려면 딴생각을 해야 하는데

가슴이 땅에 닿으면 마음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마음을 내려놓아야 가슴이 땅에 닿을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시와 요가는 닮은 점이 많다.

겉보기엔 어렵다 난해한 은유와 난해한 동작이 그렇다.

속을 보면 환하다 마음을 찾아가고 몸을 찾아가는 점이 그렇다.

시를 왜 쓰는가? 가슴을 쥐어짜는 그 고통을, 요가를 왜 하는가? 몸을 쥐어짜는 그 고통을, 둘 다 답은 같다. “나를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발적 고통은 희열이다. 정신이 육체를 움직인다고 하는가? 요즘 의학계와 철학계의 학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체로 육체가 정신을 움직인다고 한다. 스승님께서도 문학에만 전념을 쏟으시느라 몸을 추스르지 않으셨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건강한 몸으로 시적 내공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스승께서 나에 대한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건강한 몸이라도 늘 약하고 고단한 이들의 삶을 둘러보아야겠다.

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는다. 멋진 사람과 밝은 세상을 스케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그 자체가 스스로의 위안이다. 내가 굳이 더 찬미해 주지 않아도 된다. 늘 어두운 곳에 앉아있는 이들을 향해 시심을 열겠다. 그것이 이 이류 시인의 책무라 믿는다. 나는 당연히 일류는 아니다. 그렇다고 삼류는 너무 서글프다. 스승께 받은 지독한 배움은 일류 인데 이 세상 그 많은 문학상 한번 받지 못했으니 삼류, 가감해서 이류쯤으로 해두자 다만 지독하게 배운 대로 한글로 쓰겠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우아한 우파비스타코나아사나(박쥐자세)처럼, 언젠가 완전한 박쥐가 될 때까지, 날 수 있을 때까지.

요가는 나에게 시를 가르친다. 가슴을 바닥에 내리라고, 머리만 닿으면 않된다고, 머리로 썼다면 반드시 가슴으로 뒤집으라고.

시는 나에게 요가를 가르친다. 몸에 힘을 빼라고, 차라리 딴생각하라고, 골반이 아플수록 골반을 잊으라고.

문학이 나를 이끌어 가는 건, 그것이 그저 뜬구름 잡듯 감상에 젖는 사치가 아니라 하루하루 현실에 돌입하는 실질적인 삶의 국면에서 스스로 심신을 단련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객체는 그로 인해 비로소 주체가 될 수 있다. 요가 만 2년 차 오늘, 드디어 가슴이 바닥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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