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08
우영창
남편의 의무를 다하며
자식에게 훌륭한 교육을 시키고
그리고 남은 약간의 돈으로 선배가 술을 산다
그 술을 내가 얻어 마시는구나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 마음을 표현할 길 없구나
-간만에 시를 한 편 썼다.
읽어줄 인간이 없어 나 혼자 백 번을 읽었다
-선배, 나는 시를 쓰면
시만 쓰는 놈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마 돈을 벌 땐 돈만 버는 놈 같았을 거예요
선배는 이제 세계시장의 그늘을 이야기하고
나는 어디론가로 가 버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곳이 아프리카는 아닐 것 같기도 하고
- 아프리카 동물들도 사람을 무서워하겠죠?
- 인도를 못간 데는 다른 이유가 없었어요
- 유로화 강세가 얼마나 더 갈까요?
-세상인심이 다 그런 건가 봐, 옛말이 그르지 않아
-세간에 떠도는 소문들이 점점 지겨워지는구나
- 비밀인데 마약이 먹고 싶어졌다, 어린 여자와
선배, 그게 뭐든 나는 늙은 여자가 필요해요
그녀가 날 버린다는 확신이 필요해요
-나는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지리도 궁금해요
-사람 좋다는 소리에 흠이 날까 봐 전전긍긍한 세월이었다
-선배, 그거 아시나요? 상가에 가면 항상 내 자리가 있어요
-니미, 난들 없겠냐
이제 자리를 옮길까요?
호프값이 제 주머니에 있답니다
골목길에 달빛이 조금 있는 게 어리석어 보이나요?
우리가 저걸 오줌발로 조져 볼까요?
호프집이다,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떠든다
‘자 밤이다 우리는 지껄일 권리가 있다
오늘도 우리는 돈을 벌었다
좆 같은 것들이 우리를 신경 쓰이게 했다
퍼마시자 밤이 왔다’
그러니 나도 노래를 부르는 대신 나무에 올라가는 대신
호프잔으로 코를 막았다 뗐다
두서없이 주절댈게요
선배는 반박 뒤에 동조를 해주세요
나는 요즘 술자리가 없답니다. 그러니 내가 취할게요
인생에 대해 사나운 정의를 내버릴게요
내 욕망은 빼고 저잣거리의 욕망을 나열할게요
선배, 취하기 전에 선배 얘기를 마저 하세요
두 놈만 욕하고 한 놈은 남겨두세요
형수는 마침내 서예를 한다고 말하세요
손주 얘기를 할 때는 내가 듣는지 확인을 하세요
그러다가 하품을 감추면 밤은 깊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친해진 건 아니지만 멀어질 이유도 없겠군요
전철이 지하를 돌고 있다는 사실이 근사합니다
이제 일어나세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수긍하세요
우리는 곁옷을 챙기고 헤어지도록 합시다
무슨 까닭인지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아무도 되살려낼 수 없는 세계의 하루를
우리 손으로 끝장내버렸습니다
선배도 들었나요, 내일 소환이 예정된 자가
오늘 밤 그녀를 임신시킬 거라는 소식을.
이번에는 그가 성공하고 마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우리는 그만 축배를 미리 들었나 봅니다
자정에는 기온이 더 떨어질 거라 하는군요
하지만 상관없겠죠?
그때, 얼어가는 대지에 우리가 묶여 있었던 건
그때, 얼어붙은 별빛에 우리가 노출되었던 건
동 터오는 새벽을 극진히 접대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설마, 그 새벽이 여태 오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선배, 나는 곧 집에 도착합니다
열쇠를 꽂고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기계음이 좋아졌던 적 있으세요?
당신의 남자
당신의 남자가 누구인지 압니다
오늘도 그 자를 봤으니까요
전철칸 사내들 중 하나더군요
식당에서도 봤습니다
설렁탕에 후추를 뿌리고 있더군요
어쩜, 공항검색대를 통과하는 그 자라고 해두죠
골프장이나 비즈니스 미팅 중이라고 해두죠
어쨌든 그가 누구인지 압니다
그는 당신의 남자입니다
한때 내가 그랬듯 말이죠
하지만 그는 당신만의 남자는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사랑이 가장 이유 없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만이 여전히 방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