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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시 두 편]이별예보 / 박선희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11|조회수13 목록 댓글 0

이별예보

박선희

 

 

떨고 있나요

덜컹거리는 유리창

사각 틀 가장자리에 종이를 끼울까요

창 전면에 엑스자로 테이프를 붙일까요

팔다리가 묶인 채 입 닫고 귀 막고 견뎌야겠죠

투명이 자랑이지만 풍경이 깨지면 어떡하죠

바람을 묶을 수 있을까요

깨진 유리는 독을 품은 전갈이 되기 쉬워요

 

천천히 찾아봐요

유리창이 그린 나뭇가지에 앉은 새

바람이 피워 올린 꽃대

안팎으로 드나들던 통로를 지우고

닿지 않는 손끝으로 더듬던 나비

 

지문을 찍기 전

유리의 기억 속에는

바람의 깊이가 스며있어요

투명한 몸으로 햇살을 튕겨내도

밤이면 창 가득 검은 짐승을 풀어

뜨거운 황홀을 낳지요

갰다 흐렸다

수은주를 오르내리며

파편으로 튀어 오를 것 같은 날들

벌어진 틈 흔들어 대다 북상하는

 

나뭇가지 찢기고 전신주 뽑힌다는 예보

이번에도 빗나갈까요

 

 

 

 

 

눈의 보관법

 

눈이 와요 눈이 오고 있어요 자꾸 눈으로 눈이 가요 창틀은 온몸으로 눈을 받네요 눈을 손으로 뭉쳐요 잘 뭉쳐지지 않아요 손바닥의 온기를 건네요 어느새 손안에 눈이 가득하네요 동그랗게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어요

 

마음이 온통 눈사람 쪽으로 쏠려요 눈빛에 귀퉁이가 조금씩 무너져가요 눈물일까요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넣듯 서둘러 냉동고에 넣어요 검정 비닐들 사이에서 눈이 눈부셔요 하늘을 날아다니던 눈이 얼음이 되어가요 녹지 않게 하려던 거였는데 여름에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꽁꽁 얼음이 되어 가요 눈은 보관하는 게 아닌가요 그저 소리 없이 사라져야 하는 걸까요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잡아둘 수 없었던 당신

첫눈 올 때 보자던 당신

발바닥에 박힌 유리 파편이 아픔을 일깨우듯

눈은 해마다 당신의 말을 데리고 와요

눈은 당신을 보관하고 있어요

금세 떠나버릴 것 같아 눈을 움켜쥐어요

 

첫눈이 폭설처럼 내리기는 쉽지 않아요 냉동고에 있는 당신, 추운가요 끌어안을 수는 없잖아요 당신이 눈물 흘리며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요 내 체온을 간직한 당신을 밖에 세워둘 수 없어요 사라질 눈을 염려하기보다 잊지 않고 오는 당신을 마냥 반겨야만 했을까요 시공을 날던 날개를 체온이 녹여 버렸네요 욕심이 얼려버린 날개, 어쩌면 좋죠

 

마음을 준다는 건 온몸을 꽁꽁 얼려 버리나 봐요 한번 준 마음 걷어 들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눈의 보관법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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