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난호 읽기

[시 두 편]보관保棺 / 김일용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16|조회수8 목록 댓글 0

보관保棺

김일용

 

 

묵묵히 서 있는 주방 한쪽의 냉장고

잉태되어 가슴에 품고 산 세월 모질게 억누르고

고립의 선을 여닫이로 겨우 이어온

양문형 두 문짝

 

숨쉬기도 버거운 불룩한 뱃속에

포화상태로 냉기를 감싸 안은

배고픔을 위해 있는 재료들 안에서

숨쉬기를 빼앗기고 숙성된 자아도 접어둔 채

토막 난 생각들이 질식되어 만신창이로 굴려져

끈적한 핏줄이 뇌 속을 파고든다.

 

온갖 부패를 차단이라도 시키듯

용쓰며 발악하고 나온 처연한 울음소리 외면하고

양수 터진 시간 이후 탯줄 끊긴 세상 밖에서는

눈 뜨기가 무섭게 짓눌려진 목의 거센 무게

관자놀이 선연히 튀어나온 애착이 두드러졌어도

붉게 핏기선 붉은 자국이 비닐봉지 속에 얼려있는

이름 짓는 것조차 사치였던

작은 세포의 근심덩어리

 

주방에 우두커니 서 있는 양문형 냉장고

뒤죽박죽 어지러운 세상이라도

발버둥 쳐서라도 이어가고픈 목숨줄 앞에

마음도 빙하에 꽁꽁 얼리고 싶은

대형 棺

 

 

 

 

 

 

 

사라지는 것들은 약속을 잊는다.

 

 

그대 두고 떠나왔던, 잊고 지낸 이곳

 

온몸 은밀히 흩뿌려져 바람결에 녹아내렸던

 

그림자조차 없는 곳에 품은 안식처

 

한없이 바라보았던 안개 뿌연 서늘한 눈길

 

자꾸만 허연 이를 드러내던 사나운 물거품

 

사라지는 것들은 추억조차 잊고 지낸다.

 

우두커니 넋 놓고 서 있는 발아래

 

멍한 우울의 깨어짐과 철썩거리는 맞부딪침

 

가슴속 적셨다 시리도록 사라지는

 

몽환 속 잠재되어 퍼지는 아련한 기억

차갑게 식은 몸 위로 구석구석 더듬는

 

서로 엉기는 죽은 세포들이

 

시퍼런 물결 위에 펼쳐지는

 

퇴색되어가는 망각들

 

사라지는 것들은 약속을 잊는다.

 

거센 바람 실어 힘껏 날려 버리는 겹물결의 가닥처럼

 

알 수 없는 깊은 수심만큼이나 웅크린 생각들

 

마음의 변화는 때때로 상처의 위로가 된다.

 

떨구지 못하고 끝내 스며들어 쪼개지는

 

속내조차 짐작할 수 없는 깊은 바다

잊은 듯 선 드리운

 

수평의 경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