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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세월
박은형
밤의 모퉁이에 몸 내음이 부딪친다
아뜩하게,
광장 너머 종소리 맨 끝음 같이, 목서 향
좁다란 현실로 다시 딸아이를 배웅하고
물 빠지는 저녁 해를 혼자 보았다
부모가 꽂아 준 3센티 천형의 직선
사인死因 없이 천천히 잘 죽으라 했다는데
갓난쟁이 뇌 속 바늘은 기근처럼 모질게 살아남아
여든이 될 때까지 몰랐던 노파의 비밀을 사수해 낸다
향기도 악취도 한 번의 죽음 양식樣式
짓이겨진 은행 알이 길바닥에 주검의 전형을 새로 쓰고
외로움의 수작秀作 돌올하게 가르치는 바람은
종소리 끝음 더 먼 데로 피우는데
나의 작은 세월은 시방
시월 어느 담장 모퉁이를 또 한 번 돌아가는 중이다
캔디 주먹
주사 바늘 앞에선 별 수 없이 만성 얼음
문진과 촉진의 답은 변함없이 권력 아닌 근력 부재
병원 마당에 작은 꽃 블루데이지
블루의 근력은 채도 몇 그램일까
반복되는 주사에도 마음 증식은 아직 실패
친친 감은 붕대에 한층 두툼해진 블루는 퇴행성
잘 참아내지 못했어요 오늘은
주사약이 멋대로 눈물의 질료처럼 굴어
간호사가 건넨 티슈에 그만 팽 얼굴을 풀어야 했죠
며칠 밤을 쐬었건만 꽃치잣내, 콧물은 맹탕
남은 얼굴 다 풀어낸 뒤 나갈게요 쯧쯧
주사실 남쪽 창에 잠시 혼자 켜진 스카이 블루
처방전 한 장이면 가을약국 비타천플러스 덤인데
부시럭부시럭 낯선 주먹을 쥐어주는 옆자리 할머니
꼭 교회 가세요 천국 가게 해 줍니다
너덜너덜 시간 퇴행 중증인 걸 어찌 아시고, 탐나는 천국
건너 여자도 두 손에 주먹 받으며 아이구 예예
동무처럼 여기저기 굴신하는 캔디 주먹들
퇴행 없는 눈물에 얹히는 달콤 주먹은 뜻밖의 증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