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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 편]나의 작은 세월 / 박은형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16|조회수17 목록 댓글 0

나의 작은 세월

박은형

 

 

밤의 모퉁이에 몸 내음이 부딪친다

아뜩하게,

광장 너머 종소리 맨 끝음 같이, 목서 향

 

좁다란 현실로 다시 딸아이를 배웅하고

물 빠지는 저녁 해를 혼자 보았다

 

부모가 꽂아 준 3센티 천형의 직선

사인死因 없이 천천히 잘 죽으라 했다는데

갓난쟁이 뇌 속 바늘은 기근처럼 모질게 살아남아

여든이 될 때까지 몰랐던 노파의 비밀을 사수해 낸다

 

향기도 악취도 한 번의 죽음 양식樣式

 

짓이겨진 은행 알이 길바닥에 주검의 전형을 새로 쓰고

 

외로움의 수작秀作 돌올하게 가르치는 바람은

종소리 끝음 더 먼 데로 피우는데

 

나의 작은 세월은 시방

시월 어느 담장 모퉁이를 또 한 번 돌아가는 중이다

 

 

 

 

 

 

 

 

캔디 주먹

 

 

주사 바늘 앞에선 별 수 없이 만성 얼음

문진과 촉진의 답은 변함없이 권력 아닌 근력 부재

병원 마당에 작은 꽃 블루데이지

블루의 근력은 채도 몇 그램일까

반복되는 주사에도 마음 증식은 아직 실패

친친 감은 붕대에 한층 두툼해진 블루는 퇴행성

잘 참아내지 못했어요 오늘은

주사약이 멋대로 눈물의 질료처럼 굴어

간호사가 건넨 티슈에 그만 팽 얼굴을 풀어야 했죠

며칠 밤을 쐬었건만 꽃치잣내, 콧물은 맹탕

남은 얼굴 다 풀어낸 뒤 나갈게요 쯧쯧

주사실 남쪽 창에 잠시 혼자 켜진 스카이 블루

처방전 한 장이면 가을약국 비타천플러스 덤인데

부시럭부시럭 낯선 주먹을 쥐어주는 옆자리 할머니

꼭 교회 가세요 천국 가게 해 줍니다

너덜너덜 시간 퇴행 중증인 걸 어찌 아시고, 탐나는 천국

건너 여자도 두 손에 주먹 받으며 아이구 예예

 

동무처럼 여기저기 굴신하는 캔디 주먹들

퇴행 없는 눈물에 얹히는 달콤 주먹은 뜻밖의 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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