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난호 읽기

[시 두 편]젊은 사람이 / 선종구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18|조회수12 목록 댓글 0

젊은 사람이

선종구

 

 

농번기 끝나고 빈 몸으로 훌쩍 떠나 닿은 밤은

진도 어느 바닷가의 포장마차, 여행자의 객수에 젖어

밤바다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여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디,어디서 오셨스까?”

옆 테이블의 늙수그레한 여인네 셋이 말을 붙여왔다

“가까운 전라도에서 왔습니다” 우아하게 폼 잡은

내 고독이 방해받기 싫어 짧게 끊고 다시 술잔을

막 들려는데

 

“젊은 사람이 살아야제!”

“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여

딱 본께 기구마, 잔 들고 이리 와보씨요”

 

“살다 보먼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는 것이제

항시 좋타요, 그런 맴으로 더 독하게 살아야제

젊디나 젊은 사람이!”

 

술잔은 연거푸 쏟아지고, 구절양장 같은 여인네들의

인생사가 펼쳐지고, 늦게 합석한 두 남정네의 파란만장

까지가 진도의 겨울 밤바다에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공짜 술에 취한 나에게, 이담에 꼭 다시보자는 말과

함께 택시비까지 쥐어주며 그들은 떠났다

 

나는 그곳에 죽으러 가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 돌아왔다

 

 

 

 

 

 

욕의 기원

 

싹아지 없는 새끼

싹수가 노란 놈

 

가장 대중적인 이 욕을 들을 때마다

농사꾼인 나는 씁쓸히

이 욕의 기원을 생각한다

 

싹아지는 벼의 이삭 목아지를 말하는 것이고,

싹수가 노란 것은 알맹이 없는

쭉정이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싹아지가 없거나, 싹수가 노란 해는

배를 곯아야 하는 흉년인지라,

옛 사람들에게 이 욕은

욕 중에서도 큰 욕이었는데

 

이젠 욕하는 이도 뜻을 모르고

욕먹는 사람도 부끄럼을 모르니

 

들판의 죄 없는 나락들 보기에도

영 거시기한 일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