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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시 두 편]칸나 / 정재원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18|조회수8 목록 댓글 0

칸나

정재원

 

 

#

구름과 구름 사이로 드러낸 갈맷빛

그 사이를

달 깎던 꽃잎 조각칼이

밀고 들어갔습니다

 

태양의 송곳니로

내일은 태어날 수 있을 거야

 

저녁이 칸나처럼 집니다

 

#

당신이 생활 퇴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다 괜찮은 걸로 알았습니다

 

밖이 캄캄해졌습니다

하루 자국도 없이 가방 챙기는데

낙서장에는

칸나 한 방울 번지는 겁니다

 

칸나는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습니다

 

#

노인을 태운

유령선처럼

중년 넘긴 여인이

칸나 속으로 걷습니다

 

엄마, 엄마,

응, 응,

 

 

 

 

 

 

바람은 열두 시에 분다

 

외계를 찾아온 여행자인지

없는 나비가

눈꼬리 주름에 팔랑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 길가에서 본 꽃범의꼬리가

둥근 밤하늘 북극을 돌고 있다

 

너무 아득하여 잠근 고요, 균형이 깨진다

보이지 않을 만큼씩 그림자가 깎여 나간다

 

백지 네 귀퉁이를 돌로 눌러놓고

겨울 들판에 눈 하얗게 굴리던 일

초가 처마에 손 집어넣고

참새 알 꺼내 오던 일

 

별박이세줄나비는 찾아가서 만나는 걸까

날아와서 만나지는 걸까

 

빛이 된 그림자들이 외따로이 모여

오후에 필 꽃가지

이백 년 된 책꽂이에 순서대로 꽂는 것도 같고

 

간이역 나무 의자에 세 남자가 앉아있다

 

모자는 지팡이를 다리 사이에 끼운 채

무릎 위 가방끈을 계속 만진다

인중은 팔짱 끼고 상가 쪽 바라보다

머리 긁적이고

젊은 허름은 손톱만 물어뜯는다

 

시선 주는 일이 졸음 같고 하품 같다

어디서 졸음은 수선되는지

 

미상영 영화 주인공 같은 얼굴

시계탑을 보면

또 한 사람이 시계탑을 올려다보고

각각이 된 듯, 한 표정인 다른 시선들

 

탈선 결심한 철로 감정 뒤집어쓴 공기 표정

저 시계 초침은 불쌍해 도착이 아니라 자꾸만 떠나야 하니까

 

시간을 토막 내 바닥에 떨어뜨리고

건물 뒤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새

 

광장에 걸린 시계는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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