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
정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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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구름 사이로 드러낸 갈맷빛
그 사이를
달 깎던 꽃잎 조각칼이
밀고 들어갔습니다
태양의 송곳니로
내일은 태어날 수 있을 거야
저녁이 칸나처럼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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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활 퇴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다 괜찮은 걸로 알았습니다
밖이 캄캄해졌습니다
하루 자국도 없이 가방 챙기는데
낙서장에는
칸나 한 방울 번지는 겁니다
칸나는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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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태운
유령선처럼
중년 넘긴 여인이
칸나 속으로 걷습니다
엄마, 엄마,
응, 응,
바람은 열두 시에 분다
외계를 찾아온 여행자인지
없는 나비가
눈꼬리 주름에 팔랑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 길가에서 본 꽃범의꼬리가
둥근 밤하늘 북극을 돌고 있다
너무 아득하여 잠근 고요, 균형이 깨진다
보이지 않을 만큼씩 그림자가 깎여 나간다
백지 네 귀퉁이를 돌로 눌러놓고
겨울 들판에 눈 하얗게 굴리던 일
초가 처마에 손 집어넣고
참새 알 꺼내 오던 일
별박이세줄나비는 찾아가서 만나는 걸까
날아와서 만나지는 걸까
빛이 된 그림자들이 외따로이 모여
오후에 필 꽃가지
이백 년 된 책꽂이에 순서대로 꽂는 것도 같고
간이역 나무 의자에 세 남자가 앉아있다
모자는 지팡이를 다리 사이에 끼운 채
무릎 위 가방끈을 계속 만진다
인중은 팔짱 끼고 상가 쪽 바라보다
머리 긁적이고
젊은 허름은 손톱만 물어뜯는다
시선 주는 일이 졸음 같고 하품 같다
어디서 졸음은 수선되는지
미상영 영화 주인공 같은 얼굴
시계탑을 보면
또 한 사람이 시계탑을 올려다보고
각각이 된 듯, 한 표정인 다른 시선들
탈선 결심한 철로 감정 뒤집어쓴 공기 표정
저 시계 초침은 불쌍해 도착이 아니라 자꾸만 떠나야 하니까
시간을 토막 내 바닥에 떨어뜨리고
건물 뒤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새
광장에 걸린 시계는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