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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 편]안녕, 나의 길고양이들 / 최지온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18|조회수9 목록 댓글 0

 

 

안녕, 나의 길고양이들

최지온

 

 

밤이라서 그럴 거야

위로하는 말이 밤눈을 어둡게 한다

 

그대로 지나치기 일쑤여서

 

두 눈만 끔뻑이는데

빤히 쳐다만 보고 있는데

 

내 안에는 내가 없고

 

물이 되어 흘러가는 고양이가 있고 입속에 불을 머금은 고양이가 있고 진흙을 핥아 먹는 고양이가 있고 앞발을 들고 벌서는 고양이가 있어서

 

언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가 버렸는지

 

돌아보지 않겠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어디든 뛰어들 태세다

범람하는 바깥이 되어 밤눈을 뜨면

 

눈에 힘을 줄 수 있고 알맞게 풀 수 있고

눈 감으면 세상 보이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고양이들이 있고 고양이들이 되어 간다는 것

 

꼬리를 높이 세우고

꼬리를 휘휘 흔들고

 

고양이를 짊어지고 떠나는 기꺼운 고양이들이라서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 본다

 

 

 

 

 

브로콜리 장마

 

장마가 나를 지나간다 나는 브로콜리를 지나간다

 

후후 저을 때마다

새로운 브로콜리가 생겨난다

 

맴돌다 왔다 갔다 고개를 내밀다 쑥 들이밀다 뒤집히다 비틀다

 

끓기 시작하면 꼼짝 없이 끓어오르고

몇 번이고 끓는다 이대로 끝낼 수 있게 해 주세요

 

발톱을 세우는 브로콜리의 힘으로

 

장마를 지나간다 흥얼거리는 노래들

툭 던져 넣고 휘젓는다 달리는 지렁이처럼 달팽이처럼

 

마구 날뛸 수 있도록

 

막무가내로 끓어오르고 싶다 진짜 못 견디겠어 말할 때처럼

솟구쳐 오른 마음이 목을 맨 것처럼

브로콜리 때문에 생기가 돈다 새롭게 태어난다

새것이 아니어도 새것인 것처럼

 

브로콜리 같은 장마이기를

끓는 브로콜리가 되어 계속 깨어나기를

 

이제 그만 끓어도 돼 말하면 말을 끊고

음악이 된다 춤이 된다 넘치는 흥이다 흥흥이다

 

장마가 장마를 젖히고 간다 이리 저리 굴리며

 

나를 끌고 간다 나를 굴리고 간다

그럴 때에는 잠깐

 

브로콜리가 나를 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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