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난호 읽기

[시 두 편]아바타 사랑법 / 강신명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23|조회수6 목록 댓글 0

아바타 사랑법

강신명

 

 

산 위에서 불던 바람은 산 밑에서 소멸 심장에서 불던 바람은 머리에서 소멸 계단 올라가던 약속은 계단 내려오며 소멸 소리 없이 투쟁하던 환절은 소리 없이 소멸 내가 그대보다 더 많이 산 시간은 눈썹에서 멀어져 땅끝으로 소멸

 

악수 나누던 마지막 인사는 거리에서 죽고 그림자 지워진 빈 의자는 해체되어 죽고 병든 노래는 불 꺼진 찻집에서 춤추다 죽고 세월 파먹은 뒷골목은 낡은 지도에서 죽고 가면 쓴 장미로 유혹하던 내 절망은 사진 속 하얀 셔츠 위에 죽어 있다

 

접속을 시도하던 길은 물에 잠기고 새들은 비애를 물고 날아갔다 밤은 다시 보폭을 줄이고 행성은 예정대로 비껴갔으며 당분간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겠지만 태풍은 항로를 북쪽으로 옮겼다

 

습기 걷힌 다락방에 가장 먼 은하계에서 날아온 별자리가 떴다 별빛 고인 천창은 파릇하게 돋은 문장이 빼곡했다 나는 먼지 앉은 시집에서 나온 양의 털을 마저 깎았다

 

해마로 입력된 감정 수치가 가슴에서 정점을 찍었다

 

완전체가 된 나는 그대의 양털을 두르고 겨울을 맞이했다

 

 

 

 

 

 

 

꽃게의 감정

 

가끔은 옆으로 걷는 거야

어디든 부딪혀 보는 거야

허방에도 풍덩 빠져 보는 거야

누구나 결정적 한 방은 있는 거니까

좌충우돌 기다 걷다 뛰다 보면

훌쩍 비상할 때가 있을 거야

하루가 백날 같이 지난다 해도

차근차근 밟아가는 거야

상처 난 집게발이 아물 때쯤

미완의 아픈 숨이 훑고 간 등 위로

견고한 요새가 자리 잡는 거야

금채기*를 지나는 너처럼

이유 있는 시작은 언제든 움트는 거야

모래알 사이사이 느린 걸음 따라

왼쪽 오른쪽 돌다 보면

길잡이가 된 바다의 말이 들려와

한낮의 별은 멈춰야 보이는 것

배경이 사라진 기억은

정체 모를 한밤의 층간소음 같아서

먹이사슬이 만든 꼭짓점은

느리게 쌓아야 무너지지 않는 거야

심해를 건너온 단단한 다리로

마르지 않는 물의 노래를 들려줄래

바람과 파도 소리로 익은 연민은

영원으로 돌아갈 슬픔의 기원인 거야

 

게딱지에 비벼 샤르르 한입 가득

당신의 황홀로 접히는,

 

 

 

* 바닷속 생물들이 산란하는 시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