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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 편]꽃다발 / 오선덕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4.23|조회수8 목록 댓글 0

꽃다발

오선덕

 

 

드라이플라워가 좋을까 하다

꽃병에 꽂기로 했다

 

맨 먼저 리본을 풀고

코팅된 철사 끈을 풀고

 

튕긴 고무줄에 손가락을 얻어맞고

가위로 자를까 하다가

 

언젠가 묶인 비닐봉지가 쉬이 풀리지 않아 찢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매듭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거라고

인연도 얽히면 단번에 가위로 자를 거냐는 말이 생각났다

 

꽃들이 웃고 있다는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번의 고무줄을 더 푼 후에야 보이는 가지마저 묶여 있다

 

여덟 번이나 묶인 채 긴 시간 숨죽이고 있었다

 

입도 크고 속 넓은 화병에 꽂아주니 그제야 웃는 얼굴이 보였다

 

여태껏 나를 묶고 있는 고무줄과 철사 끈들을 밤새도록 헤아렸다

 

 

 

 

 

 

크루아상

 

집으로 가는 늦은 오후

쇼윈도우에는

몇 개의 크루아상이 쟁반에 담겨 있다

 

찢어진 빵 껍질 사이로 보이는

뭉개진 새하얀 속살

 

고소한 향기가 빠져나간

딱딱할 것 같은

 

멀어진 꿈처럼

 

닳아가는 신발 뒤축의 속도를 비웃듯

더디었던 시간들

 

먼 피라미드 끝 세상을 향해 쉬지 않고

걸었던 날들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는

하루를 낳고 하루를 떠나보낸다

 

등을 말아 올리며 달려올 것만 같은

성난 파도를 닮은

 

크루아상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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