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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30주년 기념사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5.09|조회수15 목록 댓글 0

 

『시와산문』 30주년 기념 기획특집

 

 

이 순간 깨어있기를

 

장병환 시와산문 발행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기 위하여 사는 사람이 있고 당장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남겨질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은 그 생이 자신의 잇利속에 밝지 않으나 살아 있는 동안에도,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외롭지 않으며 풍요롭다. 나의 스승이신 이충이 시인은 그야말로 누군가에게 남겨질 것을 위해 사셨던 분이다.

 

“그러므로 나는 바란다. 그대들이 나를 하나의 시작으로 기억하기를.

생명, 그리고 살아 있는 것들은 결정체가 아니라 안개 속에서 잉태되는 것.

나를 기억할 때 또한 이것을 기억하라.

그대 안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흔들리는 듯 보이는 것이

가장 강하고 확실한 것이다.

칼릴 지브란_『예언자』

 

이충이 시인과의 만남은 ‘하나의 시작’이었고, 지브란이 꿈꾸었던 ‘생명의 잉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스승의 뒤를 이어 계간 『시와산문』을 이끌어 가게 된 결정적 계기와 새로운 목적이 되었다. 그가 남기신 것이 더 많은 이들에게 ‘시작’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 안에 ‘가장 약하고 가장 흔들리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가장 강하고 확실한’ 의미로 만들어 가기 위해, 나는 기꺼이 앞으로도 과감하게 전진하며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스승의 유산인 계간 『시와산문』으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해 온 문인들과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예비 문인들 역시, 우리의 ‘가장 약하고 흔들리는 것’들을 통해 표면적으로 세상에서 강한 듯 보이는 것들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 삼고, 함께 ‘오늘의 시작’ 그리고 ‘오늘의 시작詩作’에 동참했으면 한다.

30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과 같이 30년은 길고 길었던 여정과 같다. 그 길을 회상해 보면, 이충이 시인은 1994년 봄, 『시와산문』을 창간하셔서 2020년 6월 29일 지병으로 소천召天하실 때까지 한 번의 결호 없이 『시와산문』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충실히 살다 가셨다. 한국문학의 질적 향상을 위해 삶을 다 바쳐 애쓰신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3년의 길을 걷다 보니 30주년의 문에 도달했고, 이번 121호, 30주년 기념호를 발간하며 그 영예를 가장 먼저 이충이 시인께 돌리고 싶다.

 

이제는 또 다른 30년을 내다보며 『시와산문』이 나아갈 방향과 이루어 나갈 일들을 생각해 본다.

『시와산문』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는 이충이 시인의 설립 정신을 토대로 대한민국 문단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문예지로 우뚝 서는 것이다. 지난 3년은 다소 부족했던 시스템과 구조를 견고하게 하도록 하는 데
시간과 재정을 할애했다. 30살 청년의 길을 걷게 된 『시와산문』은 이제 다져진 기반 위에 『시와산문』의 색色을 확고하게 하며, 시류에 영합하기보다 또 하나의 문학적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시와산문』이 되고자 한다. 물론 출판업계는 재정적 어려움과 웹과 AI에 문학의 근본 존재가치부터 위협받는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100년이 넘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조차 지면 인쇄를 포기하고 웹으로 옮겨갔다. 단적인 예이지만 앞으로의 30년은 분명 지난 30년과는 확연히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시와산문』도 지난 30년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지켜온 소중한 가치와 방향성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비전과 세계 문학의 흐름에 한국문학의 색을 첨가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그 나라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듯이 한 출판사와 문학회의 역량도 비단 그 유명세와 출판량에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신과 추구하는 비전이 진정 문학 생태계에 한 줄기 생명줄을 드리울 수 있다면 이충이 선생님이 시작하셨고 우리가 발전시켜 나가야 할 우리 『시와 산문』의 정신은 반드시 빛을 보리라고 확신한다.

 

기념사를 마무리하며 『시와산문』이 앞으로 10년 동안 추구해야 할 목표들을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1.
경험이 풍부한 회원들과 역동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신규 회원들과의 화합과 협업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와산문』의 역량을 최대화한다.

2.
‘시와산문 신인문학상’을 통하여 참신한 신인들을 발굴해 문단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3.
초·중·고 대상 전국 규모 백일장을 개최하여 자라나는 꿈나무들의 문학정신을 고취한다.

4.
국내 우수작품과 해외의 번역물을 출판하여 출판사의 면모를 갖추도록 한다.

5.
광화문 또는 인근지역에 사옥 건물을 매입해 북카페와 기념관 및 사무실로 운영한다.

 

2024년 2월

계간 『시와산문』 발행인 및 이사장 장 병 환

 

 

 

 

 

 

 

 

 

 

 

문학의 위의威儀를 위한,

지나온 30년 앞으로의 30년

 

허형만 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계간 『시와산문』이 창간 30주년을 맞이했다. ‘창간 30주년’ 앞에 ‘어느덧’이라는 부사를 붙여 ‘어느덧 창간 30주년’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시와산문』이 30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한 호도 거르지 않고 120호를 발간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한국 문단의 중심을 관통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리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시와산문』은 1994년 봄에 이충이 시인이 창간하여 2020년 6월 소천하실 때까지 애지중지 가꾸고 키워 온 한국의 대표적 문예지 중 하나다. 대부분 문예지를 발간하던 발행인이 경제적인 이유 또는 작고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 휴간 또는 폐간이라는 비보를 듣지만, 『시와산문』은 발행인인 이충이 시인이 떠난 뒤에 곧바로 이충이 시인의 제자이면서 사단법인 시와산문문학회 이사장인 장병환 시인이 혼신의 열정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어 30년이란 세월의 강물이 흐르고 있음은 한국 문학사에서 참으로 경하해야 할 일이다.

1980년대 초, 나는 국립목포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충이 시인과 함께 『월간문학』 등단 시인 모임인 <미래시未來詩> 동인 활동을 함께 하면서 종종 서울에 올라올 때면 꼭 이충이 시인과 함께 자리했고, 그때마다 이충이 시인은 친분이 깊은 박태진, 조병화, 성춘복 등 문단 어른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녹색시인협회, 모양촌동인회의 활동을 통해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한 모색을 꿈꿔왔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결단이 바로 『시와산문』이었음을 나는 잘 안다.

말이 30년이지 30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동안 창간 발행인 이충이 시인과 그의 유업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문학의 위의威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장병환 시인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이충이 시인은 자신의 ‘시인 수첩’에서 “언제나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통증을 전해주는 시를 만나려고 했다”. “항상 무엇보다도 내면을 돌보려 노력했다. 시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시와의 공명共鳴이 절실했다. 한번 공명을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결코 끊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시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시와산문』의 생명력을 이끌었고 그 정신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시와산문』 창간 30주년을 맞아 문학의 위의威儀를 위한 지난 30년이 그랬듯 앞으로의 30년도 희망에 넘치는 빛을 상상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않고 솟아나 내가 되어 바다에 이르니"라는 용비어천가를 읊으며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늘나라에서 충이 형도 기뻐하실 줄 믿는다.

 

 

 

 

 

 

 

서른 번의 진실을 축하한다

 

최문자 시인. 제6대 협성대학교 총장

 

 

생각해 보면 시란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 진실의 작고 구체적인 조각만을 갈망한다. 시는 우리 삶에서 주린 배를 채워주거나 눈물도 닦아주지 못하고 어떤 문제 앞에서도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진실의 작은 부분에서 쏟아지는 흰 점들, 그 한 점의 진실을 바라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아직도 수많은 시인은 시를 쓰고 있다. 실제로 미약하지만, 이러한 진실의 작고 하얀 점들은 일정 부분 모든 시인들의 기쁨이 될 수 있다.

이 기쁨 때문에 『시와산문』은 서른 살이란 나이를 먹었고 이충이 시인은 1994년 봄 『시와산문』이란 문예지 창간호 제1호(208페이지)를 시작으로 경제적 압박과 여러 난관을 무릅쓰고 온 힘을 다해 2020년까지 『시와산문』을 출간했다. 한 생을 여기에 다 받친 셈이다. 발행인 이충이 시인은 그해 6월 29일 소천하였다.

『시와산문』은 2021년 이충이 시인의 제자였던 장병환 이사장이 이를 이어받아 2023년 겨울호 382페이지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쉬지 않고 약진하고 있다. 장병환 이사장은 2016부터 신인문학상을 위한 기금을 기탁 했고 8회나 유망한 신인을 배출했다. 『시와산문』은 시를 사랑하는 두 지도자를 만나 앞으로도 문단에 이바지하며 많은 문학적 업적을 거둘 줄 기대된다.

시를 쓰는 일은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어떤 내용을 차용하건, 그 기저에는 반드시 나의 이야기, 나의 사유, 나의 경험이 서정을 통과하며 차올라온다. 그러나 시가 화자인 나를 중심으로 발화되거나 서술된다면 새로움은 삭제되고 정지되고 만다.

시 몇 편이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나이에서 쉽게 가질 수 없는 새로움 때문이다. 한 시인의 파편화된 알몸이 예술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끈질긴 노력과 남다른 시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인이 문제 삼는 관심사의 문제들은 외부의 관심사들과 투구할 수밖에 없다. 투구의 끝에서 시는 남고 다음 시에서 어떤 새로움으로 우리를 이끌지 그것은 시가 답을 내놓을 것이다.

시인들에게는 가고 싶지만 두려워하는 세계가 있다. 그러나 시인은 거침없이 그 길로 들어선다. 삶, 사랑, 이념 모두를 데리고 성실함과 치열함까지 데리고 가끔 온기 어린 눈물도 보여주며 성글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암시의 수단도 영민하게 사용한다.

이런 시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온 힘이 난간이다. 그러나 결코 추락하지 않는다. 이런 시인들이야말로 욕망을 굽히지 않고 문학이라는 들판을 지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 미래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시와산문』이 이번 121호를 발간하며 30주년을 맞이한다. 먼저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내가 『시와산문』을 만난 것은 8년 전이다. 심사위원으로 초대되어 신인상을 심사했다. 그때 돌아가신 이충이 시인을 처음 뵈었고, 『시와산문』이라는 계간지가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여기저기 문단 모임에 자주 다녔던 나로서는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도 몰랐던 문예지가 오랜 시간 동안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발간되어 왔다니 놀라웠다. 이충이 시인은 은자처럼 광화문에 자리잡고 이 문예지를 조용히 혼자 이끌어 온 것이다. 그 만남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시 『시와산문』에 내 미력을 보태고 있다.

처음 『시와산문』의 분위기를 접하고는 이곳이 문단의 갈라파고스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곳 문학회 회원들이 이충이 시인을 중심으로 모여 중앙 문단과는 교류 없이 자기들만의 문학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유행하는 새로운 담론이나 대세를 점하는 문학적 조류는 여기서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하지만 점점 접할수록 갈라파고스가 아니라 라다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단의 중심에서는 멀어져 있지만, 그렇기에 문단의 온갖 오염으로부터 벗어나 있었고 이제는 거의 보기 드문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살아남아 있었다. 우리 문학의 미래가 있다면, 바로 여기 『시와산문』에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시인, 수필가들이 있어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시와산문』이 아주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루거나 새로움을 선도하는 문예지도 또한 세칭 일컫는 유명 문예지도 아니다. 조금은 소박하고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편집과 내용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의 순도만큼은 어느 문예지에 뒤지지 않는다 생각한다. 그 열정이 한 문예지의 30년을 이끌어 온 것이고, 또 어찌 생각하면 그 열정이 있어 우리 문학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학을 빙자한 뻔뻔한 이윤추구와는 전혀 다른 방식과 자세로 순수한 문학적 열정을 지키며 세상의 홍진을 비껴가는 『시와산문』의 행보는 우리 문학이 지향해야 할 미래가 아닌가 한다. 이 오래된 미래가 30주년을 기회로 큰 변화와 발전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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