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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초대시]아픔을 바라보는 방법 / 이승하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4.05.14|조회수15 목록 댓글 0

 

시인, 봄에 무늬를 더하다

 

 

아픔을 바라보는 방법

이승하

 

 

 

그대의 아슬한 길이 막힐 때 기가 막힌다

 

서울지하철 9호선 승강장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 승객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굴러떨어지며 숨졌다

 

4월 7일 낮 12시 55분께

식자들이 살았던 동네의 양천향교역

참 많이 아팠는데 그 아픔 철커덩 끝이 났고

저 구겨진 몸 어디에 가서 펴질 것인지

 

앞이 막힐 때 앞길이 캄캄한 그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눈이 안 보이면 인도견의 눈을 빌리련만

발이 없으니 어딜 가려면 업히거나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실어야 하는데

 

몸은 빛이 아니다

바람이 있어야 펄럭이는 깃발처럼

넋은 창이 아니다

비출 수 없고 비치지 않는

 

죽어야 사는 법의 나라

꼬박꼬박 지키고 살았건만

살아야 죽는 밥의 나라

꼬박꼬박 먹지 못하고 살았건만

 

길이 벌떡 일어설 때 그대 벌러덩 뒤집힌다

 

 

 

 

 

장애인을 대하는 그대의 태도는?

 

간혹 장애인의 시위가 언론에 보도될 때,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출근길에 방해가 되고, 생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경계심을 갖고서 뒷걸음질하곤 했다. 그런데 아주 가까운 일가가 후천적인 이유로 정신신경과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큰 충격을 몇 번 받으면 장애가 없이 살다가도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사 월간지의 청탁을 받고 ‘라파엘 어린이집’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중복장애 아이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시설이었다. 중복장애란 앞을 못 보는데 다리를 전다던가, 지체부자유인데 자폐증이 있다던가, 귀가 안 들리는데 말도 못 하거나 하는 아이들이다. 자원봉사자 젊은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도 시키고 돌보고 있었다. 식사 시간에는 소동이 벌어졌다.

한 아이는 밥맛이 없다고 입을 벌리지 않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국이 맛없다고 맨밥만 먹고 있었다. 숟가락질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도 여러 명 눈에 띄었다. 아주 어릴 때 뇌성소아마비를 앓았었다는 세 아이는 식탁 위로 자꾸만 고꾸라지려고 해 자원봉사자가 부축한 상태에서 간신히 밥을 먹었다. 나는 단지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슴이 너무너무 아팠다. 벽에 적혀 있는 잠언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하느님, 모든 생명에 내리는 당신의 뜻은 정녕 무엇입니까.’

2019년에 아는 교수들과 ‘문학과 장애학회’를 만들었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문학인이 장애인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문학 속에 장애인 차별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의 창작문학은 어떤 내용일까, 드라마와 영화 속에 장애인 차별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이 사회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뭐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단체의 역사가 올해로 6년째로 접어든다.

이 시는 한 장애인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와 지하철공사 책임자에게 집단으로 호소한 일을 목격하고서 쓴 것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이 건물이 세워진 지 40년 만의 일이었다. 장장 40년 동안 지체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누군가에게 업혀서 강의실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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