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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활겨레" 궁예 도살장의 시간 / 주채혁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11.03.07|조회수209 목록 댓글 0


�잊혀진 땅, 몽골을 찾아서-�

   ‘활겨레’의 궁예 도살장의 시간_주채혁


‘활겨레’ 궁예 도살장의 시간

주채혁

 

‘성형 만능시대 한민족사, 콩 심은 데서 팥이 났다!’가 애당초에 4회에 걸쳐 내가 연재하려던 글의 제목이었다. 너무나도 엉뚱하게 뒤바뀐 조선-한겨레 태반사여서다. 그걸 2회와 3회에서 변화를 주려거든 또는 특정 내용을 강조하고 싶어서든 편집자가 자의적으로 바꿔 나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냥 심심풀이로 붙여본 제목이 결코 아니어서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쓸 기운을 차리는 데 근 70평생에 이렇게 힘이 든 적이 없었다. 유목민처럼 물과 풀을 찾아 모든 걸 걸고 옮겨 다니는 생존생태속에서였다. 그 과정에서 조선이 아침의 나라가 아니고 ‘순록치기의 누리’라는 이 지극히 평범한 진실과 진리가, 때로는 갈릴레오의 처세로 더러는 코페르니크스의 숨결로 천동설이라는 영구불변의 압도적인 당시 인식관행을 지동설의 과학적 그것으로 바로잡는 인식혁명을 이루는 것만큼이나 어렵사리 제대로 우리에게 자각되리라는 무서운 절망을 체험했다. 북도 남도 몽골도 일본과 미국도 모두 전거 없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주문만 계속 외워대고 있기 때문이다. 연변대 두만강포럼에서 「활겨레-코리안」 논문을 발표하고 귀환하는 KAL기 안에서 ‘모닝캄’이라는 기내 월간소식지(10월호)를 손에 들고는 그 절망은 극에 달했다. 그래도 그건 고조선사를 연구하는 어떤 조선겨레 동료 학자의 일침 같은, 그토록 치명적인 독성에야 못 미치겠지만.

 

실로 첩첩의 흑암중에 실낱같은 빛이 동북공정으로 활겨레 코리안에게 가장 매섭게 지탄을 받고 있는 중국인이 쓴 사서 ‘사기’의 관계기록과 그것을 읽는 그 후대들의 독법(讀法)-‘차오시엔’에서만 도리어 가까스로 빛을 발하고 있을 따름이다. 2001년 2월 22일 한국의 어느 중앙일간지 「학술」난에 특종으로 「조선은 순록치기」 운운한 표제의 기사가 실린 직후부터 지금은 타계한 어느 대통령이 아침햇살에 눈부셔하는 그분의 얼굴화면을 오륜기의 화려한 배경을 깔고 텔레비전 화면에 쏘아대던 홍보동영상을 거두는 것을 보고, 지도자의 슬기롭고 사심 없는 과감한 결단이 꽉 막힌 자기인식의 숨통을 터 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천동설 관행은 그 후로도 여전했다. 깎고 더 보태도 되는 시장의 흥정판과 엄정하고 치밀한 탐구만을 목숨으로 삼는 연구실험실은 아주 다른 차원의 세계임에도 “그게 그거지 뭐(差不多 一樣; 노신)! 나 한 목숨 살아남기도 숨 가쁜 세상에… 따지긴 뭘 따져? 젠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이런 압도적인 여론의 여파에 하나 밖에 있을 수 없는 사실(史實)과 진실은 또다시 맥없이 휩쓸려 사라져갔다.

 

활겨레 궁예 도살장의 시간이라는 표제는 한태숙 연출 ‘도살장의 시간’을 본뜬 것이다. ‘활겨레’ 궁예가 ‘무지개(Solongos?!)족’ 왕건에게 도살당한 이래 우리의 인식관행중에서 계속 지금 이 순간까지도 도살당해오고 있는 활겨레 자신의 자기인식생태를 직시해보려는 구급경보를 울리려 함에서다. 궁예(弓裔)는 ‘고(구)려’의 후예를 자칭하며 이름을 궁예라 했다. 그러니까 고구려-자칭 고려(高麗: Qori)는 자연스럽게 궁(弓) 곧 ‘활’이된다. 주몽이 고구려-고려를 창업한 곳이 할힌골(忽本江)이다. 그래서 고리-고려=Qor(高)씨가 됐다. 몽골은 할하(활)족 몽골이고 고구려는 Qor(高)씨이며 그 후예를 자칭한 궁예는 철원 궁씨의 시조가 됐다.

 

더러는 몽골어로 ‘후릴’이 구리여서 청동기문화를 토대로 고구려가 창업됐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역사의 실제가 아니다. 역시 철기문화에 기반을 둔 스키타이 제철기술과 결합된 철제 화살촉과 말등자를 확보하고 나서 고대제국 고구려가 창업됐다. 그래서 고구려-고려-고리는 활겨레의 활제국이다. 고려족-궁씨의 제국이다. 이런 내용으로 올 10월 18일에 연변대학교의 제2차 두만강포럼에서 내 논문 「몽골과 고려의 할하-궁족 분족고」가 발표됐다. 이미 5월 28일에 국립몽골대학교 몽골연구센터에서 구두로 발표돼 시월 현재 ‘악타 몽골리카’─2009에 투고돼 인쇄중이며 본지 여름호에 기왕에 그 내용이 축약돼 연재됐다. 조선-순록유목제국에서 기원(起源)된 고구려-활겨레제국 전통은 추정컨대 서해 대당(對唐) 해상무장무역세력을 기반으로 한 왕건이 궁예의 휘하로 세력을 키운 후 궁예를 뒤엎어 제거하는 기막힌 918년 궁예 도살장의 시간을 겪고 그를 계승 발전시키는 일천여년 역사가 이어지면서 활겨레-궁씨 제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궁예와 함께 송두리째 생매장돼온 것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그 당시까지는 고(구)려족-궁씨를 자칭하고 활겨레제국 재창업을 기도하는 군웅이 웅비할 수 있는 역사판도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중국 입국 비자관계로 몽골 울란바아타르-한국-연변-한국을 오가는 가운데 토론과 사색을 두루 하며 구상해 쓰고 있다. 10월 15일 두만강포럼 만찬시부터 뜻밖의 체험도 했다. 넓은 만찬장 맨 구석에 자리 잡고 오랜만에 만난 고고학자 이형구 교수와 담소나 하려다가 비슷한 또래의 허름한 군관복을 입은 이가 옆에 앉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양으로 가까이 앉기를 이교수가 권했는데, 조금 있더니 곁에 있던 젊은이가 총장님이 다른 일이 있어서 모시고 나가야 한다며 양해를 구하고 나갔다. 이어서 주최 측 임원이 비서인 듯 한 젊은이를 대동하고 황급히 달려와서 나를 보고 “총장님…!” 하면서 다가와 놀라서 손사래를 쳤더니, 이내 급히 돌아서 나갔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저이들이 김일성대학교 총장님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귀띔해 주었다.

 

다음 다음날 아담한 발표 토론장에 들어 오전에 발표차례대로 발표 석에 앉으려는데 이에 앞서 태형철 북한사회과학원장을 비롯한 북한 학계 핵심인사 10여 명이 인사말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변대학교는 1950~1960년대에 북한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발전해왔다고는 하지만, 언제 어디의 어느 국제학술대회에도 북한학계 중진이 이렇게 대거 참여하기는 처음이란다. 좌석을 고쳐 앉으며 사회의 요청에 따라 초대한국몽골학회장이고 현재는 근 20년째 국제몽골연구협회 한국 측 집행위원직을 맡아오고 있는 아무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낯설고 무거운 분위기를 가다듬기 위해 플래카드에 영문으로 쓴 Tumen(圖們)이 바로 몽골어로 만(萬)이라는 뜻이고 ‘백밸백중의 명사수’라는 뜻을 가져 흉노 칸의 이름에도 투멘이 있고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는 고구려 시조 주몽이 바로 Tumen이라고 본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때마침 동참한 내몽골대의 나란 여교수와 아오런치 교수가 이에 호응해 주었다. 이어서 1993년 봄, 우도, 베, 바르크만 베를린대학교 교수가 울란바아타르 내 숙소였던 D. 게렐 현 주한몽골대사의 아파트에 찾아와 “유목사안(遊牧史眼)만 뜨고 보면 한국 사서야말로 아주 질이 높은 세계 최고의 유목관계사료의 보고!”라고 기염을 토해 농경지대 출신 유목사 문헌연구자인 당시의 나를 난감케 했던 일을 회상하면서, 조선-순록치기겨레와 고(구)려-활겨레 관계 논문을 축약해 발표했다.

 

물론 참가자들 대부분에게 생소한 내용이고, 남북 학계가 자리를 함께 해 연구 발표를 하는 경우도 공식적으로는 내게 처음이어서, 개막식에 옆에 앉은 북한사회과학원 정순기 교수가 바로 이 문제를 제기한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와 1956~61년 김일성종합대학교 조선어문학과 동기생인 점을 상기시키고, 나는 그분이 제기한 문제를 근 20년 목초(牧草)를 따라 유목민처럼 현지 답사해 고증 내지 논증해온 연구자임을 밝히기도 했다. 발표 후, 뒤풀이하는 시간에 잠시 얘기들을 나누기도 했으나 시간에 쫓겨 깊은 얘기는 나누지 못한 채 박영재 교수를 비롯한 연변대 교수들 및 다른 중국대학교 교수들과 일본인 교수들, 그리고 김재열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팀이 어울려 두만강유역 훈춘유적 답사 길에 올랐다. 특별히 이 지대를 15년간이나 일부러 샅샅이 누비며 답사해온 연변대 김관웅 교수와 함께 한 답사라서 2000년 여름에 훌쩍 지나치며 했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구체적이고 새로운 사실들을 깨달아볼 수 있었다. 

 

특히 훈춘일대가 역사상 천자-칸들이 태어나는 전설적인 명당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예컨대 이성계의 조선왕조 창업태반도 여기고 누르하치의 그것도 그러한데 그이들이 모두 명사수-활의 영웅 ‘놈인 바아타르’, 고올리(槁離)칸, 투멘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러냐?”고 추궁하는 질문을 계속하며 답사를 독촉했다. 마침내 두만강 일대가 황하유역-베이징이라는 중앙권력권 서해지대가 아니라 그 자장에서 멀리 벗어난 동해지대라서 독자적인 생태환경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가 이 지대와 직통하는 몽골리안루트로 유라시아문명권을 재빨리 함께 향유할 수 있어서 새로운 왕조의 창업에 유리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당으로부터 발해국을 봉(封)받아 압록강권에서는 대당(對唐)외교문서에서 발해국을 자칭할 적에도 두만강권에서는 대일본외교문서에서 늘 그대로 고(구)려를 자칭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됐다. 발해국이 아니라 주몽의 고구려-고려제국이 그대로 맥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동해안으로 뻗은 두만강은 Tumen강-주몽강(朱蒙江)이 된 터라는 말이다. 발해시대 축성된 두만강유역 훈춘지대 고성촌의 본래 명칭이 ‘자매성’으로 고려성이라고도 한 사실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명궁수의 강으로 고올리칸-활의 영웅이 숨 쉬는 훌룬부이로호 일대의 활의 강-할힌골(弓江), 고구려창업 성지가 유목민 식으로 여기서 재연된 셈이다. 그래서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도 명사수 투멘이고 청태조 누르하치도 투멘으로 투멘강 태반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강으로 흘러드는 부르하툰하(柳條河)가 버들강의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주몽-투멘의 어머니 유화-버들꽃(柳花) 성모전설을 피어내게 했다. 그 활겨레의 맥박을 한반도에서 이어 뛰게 한 이가 활겨레의 후예 철원 궁씨의 시조 궁예다.

 

그는 활겨레제국 -고구려의 부활을 표방하고 신라가 멸망해가는 판국에서 최강자로 군림했지만, 918년에 그가 포용해 키운 수하 무지개(Solongos?!)족 왕건의 쿠데타로 활겨레 궁예 도살장의 시간을 참담하게 겪으며 철원 궁씨의 시조로 불씨를 뿌리고 환원하고 말았다. 왜 하필 동해권 철원인가? 왕건이 발해류의 압록강권 당나라 봉후(封侯)격 궁예 휘하 세력으로 대당무역에서 부를 축적하며 그런 자금력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당시의 기민(饑民) 군중들을 선동, 반(反)궁예세력으로 묶어 세워 활의 영웅 궁예를 동해쪽으로 몰아붙여 그 막다른 골목에서 난도질당하게 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투멘강-주몽강의 힘찬 동류물굽이를 환각으로까지 그렸을 그를.

 

정녕, 연어들이 평생 거센 무한경쟁의 대양에서 살다가 돌아와 수정해 알을 까고 환원하는 주류 모천(母川) 두만강이다. 어린 연어는 이 모천에서만 천자로, 투멘칸으로 한껏 자라나 세상의 중심으로 우뚝 솟는 ‘변연적(邊緣的) 주체성’을 견지할 수 있게 마련이다. 해양대국의 중심 뉴욕에 대한 변연적 주체성을 견지해내 지금 지구의 한 중심으로 마냥 치솟고 있는 중국처럼. 태평양은 드넓지만 어린 연어를 한껏 자라게 하는 모태태반 부르칸(不咸)일 수는 없다. 대양을 누비던 연어들이 동해권의 두만강 부르하툰하에 모태 회귀할 때만 이런 성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 표상 궁예를 그의 심복인 무지개족 왕건이 싹둑 자르고, 그 후 천년세월을 무지개족 계승세력이 연이어 자르고 또 잘라왔다. 활겨레 궁예는 산화해 철원 궁씨 꺼져가는 불씨로 지금도 천길만길 깊은 잿더미 속에 불꽃 꿈을 묻어오고 있다. 양궁사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양산하는 놀라운 잠재 화력을 이따금 선보이면서.

 

정녕코 활겨레는 아주 숨통이 끊이지는 않았다. 고조선-고구려-발해-솔롱고스가 무지개족 왕건이 천년세월에 천만길 깊이로 활겨레 목숨불씨를 파묻어온 한반도의 잿더미를 시베리아-몽골벌판의 광풍에 휘날려 버리는 날, 거짓 탈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세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나라-빛의 바다-무지개겨레라는 헛되고 헛된 허상을 벗고 이내 순록치기의 나라[조선]-‘활겨레 제국’[고구려]-늑대왕국[발해]-누렁족제비족[솔롱고스겨레]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날엔 제아무리 성형만능시대의 이시대 한국이라 해도 마침내는 콩 심은 데에 팥 아닌 콩이 되살아나고야 말 터이다. 누르하치, 세종대왕, 칭기스칸, 주몽-tumen 칸이 해원(解寃)된 활겨레의 성웅, 돌아올 그리운 그 옛님 ‘참 궁예’로 꼭 다시 태여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궁을기(弓乙旗)가 몽골초원의 거세찬 바람결에 용솟음치며 한껏 흩날리리라! 그 작은 등대가 몽골 수도 후레 자이승 이태준 기념공원에, ‘솔롱고스’-「무지개족」 석공이 잘못 새긴 몇 글자를 반면교사 등대불로 켜고는 먼 빛을 아주 오래오래 비출 것이다.

 

 


  주채혁 / 1942년 충남 목천에서 태어났으며 저서 『원조 관인층연구』, 『순록유목제국론-고조선·고구려·몽골제국의 기원 연구』가 있다. 초대 몽골학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교 몽골연구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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