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난호 읽기

[시인특집]물시계와 무희 / 최규리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5.02.06|조회수40 목록 댓글 0

물시계와 무희

최규리

 

 

당신은 참 달죠

거꾸로 흐르는 것을 따라 물방울을 따라 멀리 달아나는 것을 따라 미완의 햇빛 속으로 사뿐히, 그 지독한 저항을

 

그러므로 궁전 앞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것을 삼키며

 

내 몸은 이제 휘어지겠습니다

 

끌어당기는 당신의 손을 잡고 언제까지라도 구부리고 뛰어오르며

위태로운 나무에 올라 푸른 잎사귀들의 사각거리는 노래를 흔들며 파란 기차가 지나가는 터널 속으로 가볍게, 그 천진한 웃음을

 

그리하여 잠시 흩날렸던 꽃잎을 귓가에 꽂아두고

 

이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물방울이 아래로만 흐른다고 말하지 말아요 공중에서 나부끼는 저항은 발끝을 지나 모두가 폐허라고 말했던 당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춤을 출 테니

 

눈물을 흘렸었나요 그럼 시간을 거스르는 일이니 이제 눈동자 사이로 미완의 속삭임이 모습을 드러낼 차례입니다 발끝을 세우고 푸앙트: 포르드브라: 앙트르샤: 애티튜드:

 

한 다리로 당신을 향해 손을 뻗어

아라베스크:

 

그랑 주테: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우리를 아프게 할지라도

 

당신을 위한 춤을 추겠습니다 숨이 차올라 거친 호흡이 천장을 밀어 올리도록 그것마저 도약이라고 믿으며 붉게 번지는 가슴을 믿으며

 

 

 

 

낙화 갈매기

 

무엇이 보입니까

다시 뒤집어 보세요

또 흩어집니다

 

시체는 번개처럼 허공을 가른다

어린 낙엽이 해야 할 일은

그래,

많이 부서져야 해

 

삶은 감자안의 으깨짐을 경청한다

 

시체를 갖는 일은 설레고

시체와 사랑하는 일은 우아하다

그 매력적인 일을

그 완전한 사랑을

 

나의 시체여, 빨리 오세요

 

바다에는 백일홍이 가득했다

붉고 뜨거운 신발로 가득 찼다

몰락하던 햇살에 고스란히 당하며

어서 와서

나의 시체가 되어주세요

무른 흙더미에서

시체여, 멈추지 말아요

 

맨발로 진흙을 맞이한 것처럼

매끄럽게 으깨지는 격정의 밤처럼

 

바삭거리는 마음이 홀로 타오를 때

꽃병에 꽂아둔 몇 번의 바람과

고개를 떨군 맹세들

우아하게 떨어지는 시체들

 

 

 

 

 

자유 낙하

 

천장에 매달린 나를 본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의 시체를 모으기 시작했다. 소파와 창가에 걸어둔 시체들. 나에게서 빠져나오려는 검은 나비. 난 살고 싶어서 매일 죽는다.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죽는다. 죽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서 매일 죽는다. 웃으면서 죽는다. 사랑하면서 죽는다. 이렇게 죽어도 죽어도 다시 태어날 수 없음을 알기에 악착같이 죽는다.

 

꿈과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과거의 기억 속에 있다. 기억 속에서 꽃 피우던 시간, 그것이 이미 미래다. 흔한 결심들과 피고 지는 마음들과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던 구름 사이. 그 사이에 함박웃음이 있다. 갈매기의 꿈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용기를 주지 못한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어떻게 날아오를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떨어질 것인가’이다. 잘 넘어지는 것. 멋지게 패배하는 것. 예전에 스키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제일 먼저 하는 교육은 ‘잘 넘어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다치지 않고 잘 넘어질 수 있을까. 우린 수많은 도전과 맹세를 한다. 자주 무너지는 하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자책을 했던가. 넘어진 나에게 다가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망가지 말자.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넘어진 나를 일으키는 용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바닷가에서 낮은 비행을 하는 갈매기를 보았다. 높은 하늘에서 미끄러지듯 아래로 떨어지며 진흙 위에서 멈추었다. 잠시 날개를 접고 있었지만, 그림자는 날개를 펴고 있었다.

떨어지는 일은 참 상쾌하고 시원해 보였다. 날아오를 때는 푸른 허공이 보이겠지만 아래로 떨어질 때는 세상이 보일 것이다. 넘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어린 나는 성장할 것이다. 난 오늘도 어제의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새로운 나를 장착하고 문을 나선다. 난 참 바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