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____김범선
디딜방아
김범선
번개시장에서 떡국 1봉지에 5,000원을 주고 샀더니 세 끼를 끓여 먹을 수가 있었다. 옛날에 떡국은 1년에 한 번 설날에만 맛볼 수가 있는 귀중한 음식이었다. 지금은 떡국이 집이나 음식점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흔한 음식이지만 옛날에는 떡국 만드는 공정이 아주 힘이 들어 1년에 한 번 밖에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떡국을 만들려면 먼저 정미가 안된 벼(나락)를 디딜방아의 확 속에 넣고 찧어서 쌀을 만들어야 한다. 디딜방아는 영어 알파벳의 ‘Y’자처럼 생겼는데 다리가 벌어진 나무 양쪽 끝을 사람이 밟으면 ‘ㅣ’자처럼 생긴 방아공이가 들렸다가 내려가며 나무 끝에 박아놓은 공이가 확에 든 곡식을 빻아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다. 확은 방아공이가 내려오는 지점의 바닥을 파고 작은 돌절구를 묻어 놓았다.
디딜방아는 외다리방아와 양다리방아가 있다. 외다리방아는 ‘ㅣ’자형을 하고 있는데 1인용 방아로 아주 원시적이다. 디딜방아는 동남아에서 주로 쓰는 생활도구인데 두 사람이 밟는 양다리 방아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경북 북부지방에는 아직도 양다리 방아를 쓰는 집이 있다.
디딜방아는 곡식의 껍질을 벗기거나 알맹이를 가루로 만들 때 몸의 체중을 이용하여 방아공이를 들었다가 놓아 확 속에 들어있는 곡식의 껍질을 벗기거나 알맹이를 가루로 만드는 생활 도구이다. 잘 사는 농가는 자기 집에 디딜방아를 가지고 있어 수시로 곡식을 정미하여 밥을 해먹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웃집의 디딜방아를 빌려 벼나 보리, 조를 정미하여 알곡으로 만들어 밥을 해 먹었다. 디딜방아는 삼국시대 초창기 고분군의 그림 속에 보이는 아주 오래된 생활 도구이다.
원동기를 이용하여 피댓줄을 돌려 곡식을 정미하는 기계식 정미소가 나오기 이전에는, 모든 집이 벼, 보리, 조를 디딜방아로 찧어 쌀, 보리쌀, 좁쌀로 만들어 밥을 해먹었다. 디딜방아로 찧은 쌀이나 보리쌀, 좁쌀은 뒤주나 옹기단지 속에 넣어두고 끼니 때마다 알곡을 조금씩 꺼내 밥을 해먹었다.
그래서 정미소가 나오기 이전에 디딜방아는 농가에서 사용하는 소중한 살림도구였다. 디딜방아가 없는 집에서는 돌절구나 나무절구로 곡식을 빻아 밥을 해먹어야 했다. 여자들이 디딜방아의 다리를 밟아 나무공이로 확에 곡식을 찧어 정미하는 일은 아주 힘든 노동이었다. 그래서 가을철이면 서로 품앗이로 이웃 집 디딜방아를 빌려서 한꺼번에 곡식을 정미하여 알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벼나 보리, 조를 빻기 전에는 가마니 속에 넣어 곡간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수시로 꺼내 절구나 디딜방아를 이용해 정미를 하여 쌀이나 보리쌀, 좁쌀로 만들었다. 따라서 디딜방앗간은 여자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며 마을정보 유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마을의 루머나 소문은 모두 빨랫터나 방앗간에서 나왔다. 오뉴월에 저녁 땟거리가 떨어지면 하루 내 불볕이 내리 쪼이는 밭에서 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남편은 디딜방아의 다리를 밟고 아내는 확에 보리를 우겨 넣고 찧어 보리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보리쌀로 저녁밥을 해먹었다.
방아다리를 밟는 사람은 머리 위에 줄을 걸어놓고 한 손으로 그걸 잡고 몸의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나무 끝을 밟고 체중을 실으면 나무공이가 번쩍 들렸다가 확에 “쿵” 하고 찧으며 곡식을 빻게 된다. 하루종일 두 사람이 양다리 디딜방아를 찧는 날에는 다리가 아플 때면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방아다리를 밟았다. 그래야 다리가 덜 아프다. 여자들은 체중이 가벼워 양다리 방아를 찧을 때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바쁜 농사철에는 남편 혼자서 방아다리를 밟고 확 가에는 아내가 주저앉아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을 확 안으로 쓸어 넣거나 그 속에 곡식이 골고루 잘 찧을 수 있도록 손으로 고르게 뒤집어 주어야 한다. 남편이 방아다리를 밟으면 “삐꺽” 하고 방아가 올라간다. 그때 확 가에 앉아있던 아내는 잽싸게 곡식을 손으로 우겨서 확 안으로 모아 넣는다. 이 동작이 기계처럼 잽싸고 빨라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이 확 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손을 찧게 되거나 방아머리에 아내의 머리가 부딪혀 깨질 수가 있었다. 그래서 디딜방아를 찧을 때는 부부가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아를 찧어 벼의 껍질이 어느 정도 벗겨지면 확 가에 앉아 곡식을 우겨넣던 아내는 알곡을 키에 담아서 체질을 하여 까분다. 그렇게 하면 쭉정이와 왕겨가 날아가고 하얀 쌀알만 키에 남는다. 벼의 껍질이 벗겨지고 한 톨의 쌀알이 만들어지기까지에는 디딜방앗간에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오전에 디딜방아로 벼를 찧어 쌀을 만들면 오후에는 쌀을 확 안에 넣고 쌀가루로 만든다. 역시 디딜방아로 쌀을 빻아 가루로 만들고 확 가에 앉아있는 아내는 올이 가는 체로 처서 쌀가루를 걸러낸다. 이렇게 방아로 빻은 쌀을 체로 처서 가루가 되면 가마솥에 놓고 쪄서 백설기를 만들어 나무 안반 위에 놓고 떡메로 처서 가래떡으로 만든다. 이 가래떡을 굳힌 다음 부엌칼로 잘게 썬 것이 떡국이다. 떡국을 먹기 위해서는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처야 했다.
디딜방아에 곡식을 넣고 찧는 부부는 서로 손과 발이 기계처럼 정확하게 잘 맞아야 한다. 방아다리를 수천 번 밟는 남편의 발과 확 속에 곡식을 우겨넣는 아내의 손은 정확하게 서로 일치해야 한다.
“삐걱, 삐걱” 하고 디딜방아 소리와 함께 확 속에 곡식을 우겨넣는 아내가
“여보.” 하면
“응.”
하고 남편이 대답을 한다.
그 짧은 대화 속에 좀 쉬었다 하자, 물 좀 먹고 하자, 부부의 의사전달 방법이 들어있다. 디딜방아 속에는 부부의 사랑이 들어있다. 방아를 찧는 부부는 힘든 노동 속에서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움직이는 동작 모두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있어야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김범선 /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으며 장편 『개미허리의 추억』 외 2권 중편 『비단개구리』 외 2권이 있다. 에세이 『니가 있어 행복하다』 『 남자로 사는 법』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