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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겨울, 어느 날 / 김성달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14.01.18|조회수98 목록 댓글 0

단편소설____김성달

 

겨울, 어느 날

김성달

 

겨울, 어느 날이었다.

성우가 전화를 끊고 신문사 밖으로 나오자 아침 출근길부터 슬금슬금 내리던 눈이 함박눈이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미술관을 향해 달리는 동안 눈발은 다시 약해지는가 싶다가도 금방 자동차를 세워버릴 만큼 폭설로 바뀌곤 했다. 미술관 관장을 취재하기로 한 강연장에는 예상보다 사람이 적었다. 성우는 카메라를 들고 미술관 관장이 강연하는 장면을 찍고 쉬는 시간에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장의 얼굴에 검은 피곤이 덕지덕지 앉아있었다. 오전 강의를 끝내고 우르르 몰려가는 일행 뒤를 따라 들어 간 식당에서 성우는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오후에는 불란서 유학을 한 설치미술가가 강사였다. 그의 주위를 오가며 사진을 찍고 출입구 앞에 앉아 잠깐 강의를 듣던 성우는 슬그머니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먼저 자리를 비운 미술관 관장은 성우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동차 시동을 걸자 뜸하던 눈발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 신문사에 도착하려면 삼십 분이면 충분했다. 미술관을 빠져나오는 순간 성우는 갑자기 화가 생각이 났다. 그동안 몇 번 화실로 찾아간다고 했으면서도 지키지 못한 약속이 검은 머리카락 속에서 흰 머리카락을 뽑아내듯이 쏘옥 떠올랐다. 성우는 갑자기 화가가 보고 싶은 것이 아침에 받은 전화 때문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연화가 마지막으로 당신을 보고 싶어 합니다.”

전화 저편에서 아득하게 들리는 연화라는 이름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나사못처럼 귓속을 파고들었다. 요양원 위치를 알려준 연화 선배라는 여자가 잠시 머뭇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그냥 전화를 끊었다. 암 덩어리의 연화가 마지막으로 성우를 기다리는 곳은 포천이었다. 성우는 심하게 요동치는 가슴 때문에 자리에서 쉽게 일어설 수 없으면서도 포천 요양원 위치를 검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성우는 화가의 화실로 핸들을 꺾었다. 화실은 문이 잠겨 있었다. 전화를 하니 화가는 집에 있었다. 저녁에 만나 소주 한잔 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 사이 눈발은 그쳤지만 먼 서쪽에서 또다시 커다란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신문사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기사를 쓰기도 그렇고 취재를 나가기도 어정쩡한 시간이었다. 차를 한잔 우려놓고 앉아 선배가 쓴 장편소설 원고를 펼쳤다. 성우가 근무하는 지방 신문사 주인 선배는 오래 전부터 소설가였고 지금도 소설가였다. 원고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간마다, 행간마다 연화 얼굴이 어른어른 따라다녔다. 창 밖을 보니 그 사이 또 눈이 날리고 있었다. 차를 마셨다.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예전에도 성우에게 오늘과 흡사한 이런 시간과 공간이 있었다. 오늘이 마치 그날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서울 극장과 청계천 수표교 사이에 있던 6층 건물의 6층, 그 사무실이었다. 그 날도 겨울이었고 성우는 지금처럼 창문 곁에 놓인 책상에 앉아 원고를 읽고 있었다. 망하기 직전의 출판사 집기와 책을 끌고 오가도 못 하는 꼴을 본 선배가 내어준 사무실이었다. 성우는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사무실에 나와 앉아 원고를 읽었다.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처지는 더욱 아니었지만 먼지 속에 방치해둔 원고꾸러미가 자꾸 눈에 밟혀 들춰보곤 했다. 그 당시 읽고 있던 원고가 아마 ‘오페라의 역사’라는 번역원고였을 것이다. 성우는 그 원고를 읽으며 6층 사무실 창문 눈높이와 나란히 걸려있던 청계고가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페라의 역사’ 번역원고를 절반도 읽기 전에 청계고가는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청계고가의 흔적 대신 흰 눈이 허공을 가득 메운 그 겨울 오후에도 성우는 오늘처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온기 없는 석유난로 위에 놓인 싸늘하게 식은 주전자의 싸늘한 차를 마셨다. 갈증이 자꾸 나고 흔적 없이 사라진 청계고가가 이유없이 보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렸다.

출판사를 옮긴 후 찾아오는 손님이라고는 사무실을 내어준 선배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일주일에 두어 번 고개를 들이밀까 하는 선배는 노크 없이 문을 불쑥 열곤 했다. 몇 번 망설이다 문을 열자 머리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여자가 서 있었다.

“남편 원고를 찾으러 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서 대뜸 용건을 말하는 여자는 적지 않은 키에 마른 체격이지만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외투를 걸치지 않은 여자는 브라운 빛깔의 가을 재킷차림이라 그런지 파랗게 추운 모습이었다. 사무실 안의 냉기나 밖의 냉기나 거기서 거기였지만 성우는 여자를 사무실 안으로 들였다. 여자의 몸을 감싼 시퍼런 추위도 추위였지만 뒤에 장승처럼 붙어서 있는 죽은 남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죽은 남자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는 여자, 그녀가 연화였다.

오후 6시가 될 무렵 성우는 서둘러 일어나 신문사 문을 잠그고 차에 올랐다. 그 사이 눈은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같이 어설프게 언뜻언뜻 흔적을 남길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화실엔 불이 환했다. 화가는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구부정한 등이 육십 평생 그림 앞에 쏟은 열정과 정성을 대변하는 듯했다. 화가는 여자를 그리고 있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선술집 나무탁자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아 왼쪽 턱을 괴고 있는 여자 앞에 빈 소주병과 소주가 반쯤 들어있는 잔이 놓여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화가는 안경 속의 작은 눈에 웃음을 머금고 일어섰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묻은 노란색 물감이 추워보였다. 손을 씻고 커피를 타려는 화가를 차에 태워 신문사 근처로 왔다.

사무실 근처의 다슬기 해장국집이 언제부턴가 뒷고기를 전문으로 파는 술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앞을 지나다니며 뒷고기가 무엇일까 혼자서 궁금해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내부는 손님이 없어 썰렁했다. 화가는 성우가 가리키는 안쪽 탁자에 앉으며 실내를 살폈다. 처음 온 손님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뒷고기의 내력을 쓴 현수막이 벽의 반을 차지할 만큼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성우가 그 내력을 읽는 동안 화가는 커다한 현수막이 밖에 있어야지 안에 있어 자연스럽지 않다고 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가의 말에 동의하고 뒷고기 2인 분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뒷고기라는 게 쓸 만한 것은 모두 빼내고 남은 부위인데 고깃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즐겨먹는 고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무슨 맛인가 한번 드셔 보시지요.”

“그럽시다.”

화로불이 둥근 탁자 가운데로 들어가자 화가가 갑자기 생각난 듯 등 뒤의 창 밖을 흘끔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날 소주 한 잔 참 멋지지 않아요?”

성우는 대답대신 화가 앞에 놓인 소주잔에 소주를 채웠다. 식당 남자가 가져온 가늘게 쓴 뒷고기를 화로 불 위에 올렸다. 뒷고기가 채 익기도 전에 화가가 소주잔을 들어 보였다.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에 창밖의 눈이 펄쩍 튕기는 것 같았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소주가 시원하고 알싸했다. 화가는 반쯤 비운 잔을 앞에 내려놓았다. 뒷고기는 생각보다 씹히는 맛이 고소했다. 성우는 소주 석 잔을 거푸 마셨다. 그 사이 화가는 한 잔을 비우며 자꾸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즘 작업은 어떠세요?”

“뭐, 그냥 저냥 그렇습니다.”

화가는 특유의 입속에 웅얼거리는 말투로 대꾸하며 성우 앞에 놓인 빈 잔을 채웠다. 화가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이었지만 둘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은 처음이었다. 신문에 연재하는 우리 동네 예술가 첫 번째 인물로 화가를 만나기 전까지 성우는 화가를 몰랐다. 선배를 따라 우연히 들른 화가의 화실에서 본 그림 하나가 성우의 가슴 한쪽을 덜컥 움켜잡았다. 오래 된 성 앞에 희미한 실루엣의 여자가 서 있는 어두운 색상의 유화 한 점이었다. 성우는 유독 그 그림만 눈에 들어왔다. 그림의 제목을 보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 후 신문이 창간되고 예술가 인터뷰 연재를 맡은 성우의 머릿속에 화가보다 그 그림이 먼저 떠올랐다. 성우가 인터뷰 요청을 하자 화가는 썩 반갑지 않은 목소리로 응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신문이 나온 후 화가에게서 그림을 배우는 사람들과 함께 두어 번 술을 마신 게 전부였다. 언젠가 화가 쪽에서 늦은 밤에 술 한잔 하자고 전화를 했지만 그때 성우는 이미 다른 곳에서 취해 있었다.

창밖 어둠 속에서 눈발은 여전히 줄기차게 희끗희끗 허공을 떠돌았다.

“이런 날이면 바다가 보고 싶습니다.”

성우는 소주잔을 단숨에 비우며 말했다.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화가의 쌍꺼풀 없는 조그마한 눈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화가가 침묵에 깨어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 고향으로 가는 해변도로가 아름답지요? 젊어서 스케치 여행을 두어 번 다녀온 적이 있어요.”

“예, 아름다운 길입니다.”

성우는 화가에게 고향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지만 그 길을 알고 있다고 하니 무턱대고 반가웠다. 동해의 깊고 넓은 바다가 끊일 듯 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그 국도길은 사계절 언제나 아름다웠다. 성우는 언제부터인가 그 국도길이 ‘좋다’라는 말 대신 ‘아름답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여행길에서 우연히 어떤 아가씨를 만나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60대 중반의 화가 입에서 이야기가 조용조용 흘러나왔다.

“소읍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고 마땅히 갈 곳을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여행객이 물을 수 있는 이것저것 잡다한 몇 마디에 대답을 해주었던 아가씨가 겁도 없이 이런 때에 맞춤한 술집이 있다며 나를 인도하는 겁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더듬 들어가니 거짓말처럼 막걸리집이 있어요. 밝은 대낮에 봐도 그냥 여염집 같은데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이 두엇 앉아 있어요. 그때 마신 막걸리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나니 아가씨가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가라는 겁니다. 아마도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에요. 그러면 그렇게 하자고 여자 뒤를 천연덕스럽게 따라가니 꽤 반듯한 집으로 들어가요. 집안에서는 뜻밖에도 여자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고 인사가 끝나자 곧 술상이 나와 밤늦도록 술을 마셨어요. 뒤에 알고 보니 여자의 아버지는 시인이었어요.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여자의 아버지가 보낸 시집 속에 짧은 내용의 편지가 들어 있었어요, 지금은 그 편지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자신의 딸에 관해 몇 마디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여자가 두어 번 서울로 나를 찾아오고 뭐 그러다 어떻게 연락이 끊어졌어요. 솔직히 지금은 여자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화가는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그 형상이 무엇보다도 또렷한 이야기를 아주 느리고 길게 했다. 성우는 어쩐지 마치 눈 속에 갇혀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런 밤이면 그 막걸리집의 촉수 낮은 불빛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가 생각납니다.”

화가는 아주 조금 남은 소주를 말끔히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슬며시 웃었다. 입꼬리에 먼저 걸리는 화가의 웃음은 묘하게 기분 좋았다. 어떤 순수한 결정체를 보는 것 같은 기분 좋음이었다.

화가는 오늘 할 이야기를 모두 끝낸 사람처럼 앉아 소주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성우는 화가의 침묵이 길어지자 불안했다. 창 밖을 자꾸 쳐다보았다. 손님이 없는 뒷고기 술집은 겨울의 한적함과 고독을 몽땅 안고 있는 것처럼 적막했다.

“선생님 사실 벌써부터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던 화가가 의외라는 듯 성우를 바라보았다. 성우는 느닷없이 조급해져 소주잔을 들었지만 말끔하게 비어 있었다. 소주병도 마찬가지였다. 술집 주인 내외도 조금 전에 약속이나 한 듯이 나란히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화가가 슬그머니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들고 와 뚜껑을 열었다.

“화실에서 오래된 성 앞에 서 있는 여자 그림을 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그린 그림입니다.”

화가는 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는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성우는 놓치지 않았다.

“그 여자가 누구입니까?”

화가는 잠깐 고개를 들어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눈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었다.

“죽은 여자입니다.”

“사자死者라는 겁니까?”

“예, 죽은 여자를 그렸습니다.”

성우는 갑자기 이제껏 머릿속을 맴돌던 어떤 의문이 풀리는 것처럼 눈앞이 환해졌지만 동시에 등을 서늘하게 하는 한기를 느꼈다. 화가의 등 뒤에 서 있는 그림 속의 여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연화는 남편이 죽기 전에 탱화에 대한 책을 내기위해 원고를 보낸 출판사가 이곳이라며 원고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성우는 그런 원고를 받은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비슷한 이름의 출판사를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성우는 연화에게 비슷한 이름의 출판사 서너 곳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주었다. 쪽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앉았던 연화가 깊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원고를 꼭 찾아서 태워버리라고 했는데…….”

순간, 감전이라도 된 듯 벌떡 일어난 성우는 연화의 몸에 자신의 외투를 걸쳐주고 쪽지를 들고 앞장섰다. 연화는 다소곳하게 성우의 뒤를 따랐다. 연화 등 뒤의 죽은 남자 역시 묵묵히 뒤를 따라왔다.

발목이 잠길 정도로 쌓인 눈을 헤치고 서너 군데 출판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행방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원고는 없었다. 출판사를 찾아다니면서 띄엄띄엄 뱉은 말을 유추해보면 연화 남편은 탱화, 그것도 지옥도 탱화만 그리는 사람이었고, 연화는 그런 남편의 아내, 조수, 학생으로 지난 10여 년을 함께 살았다. 연화는 보름 전에 간암으로 남편을 먼저 보내고 지금은 혼자였다. 성우는 갑자기 그런 연화를 놓치기 싫었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을 미망인의 입장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벼락처럼 내리꽂힌 감정이었다. 그것은 죽은 남자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는 여자에 대한 사랑이었다. 성우는 갑작스럽게 온몸을 친친 휘감은 사랑의 뜨거움 때문에 다리가 자꾸 휘청거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짧은 겨울 해는 금방 자취를 감추었고 어둠 속 눈길을 걷던 연화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겠노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성우는 폭포 같은 절망에 갇힌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바짝 마른 입안을 겨우겨우 짜내 외투를 돌려받아야 하니 집까지 가야겠다는 핑계를 만들어 연화와 동행했다. 연화의 집은 의외로 출판사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그 형체를 잃어버린 퇴락한 아파트, 몇 수십 년 동안 우중충한 회색으로 도심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는 그곳이 연화의 집이었다. 불빛 한 점 없는 아파트 입구는 스산했고 이따금 들려오는 도둑고양이의 낮게 깔리는 울음소리가 주위를 음울하게 감쌌다. 성우는 저도 모르게 자꾸 들썩이는 팔을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연화의 손목을 움켜잡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팔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지척에 연화는 서 있었다. 움켜잡고 뛰면 그만이었다. 달리고 싶었다. 미치도록 달리고 싶었다. 가슴에는 폭풍이 일고 해일이 몰아쳤지만 두 팔은 그런 가슴속의 소용돌이와는 달리 연화가 내미는 외투를 공손하게 받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곧 외투를 던져버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연화를 향해 두 손을 뻗었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무릎까지 눈이 쌓였다.

“혹시 안톤 체홉을 아십니까?”

성우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르고 난 화가가 조용히 물었다.

“예?”

뜻밖의 이름에 성우는 숨을 들이켰다. 한때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던 러시아의 옛 소설가였다.

“제게 안톤 체홉을 읽으라고 하신 분이 있습니다.”

화가는 갑자기 목이 마른 듯 소주를 급히 입속으로 털어 넣고 술맛을 음미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성우는 묵묵히 화가의 말을 기다렸다.

“제게 그림을 가르쳐주신 선생입니다. 그 분은 술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그림보다 술을 더 좋아한 듯 합니다. 그래도 화가니까 겉으로는 그림을 더 사랑한다고 해야 하는데 그 분은 술을 더 사랑한다고 대놓고 말을 해요. 그래서 영원한 비주류로 살다가 가셨어요. 무엇보다도 술을 사랑했는데 주류酒類가 아닌 비주류라니 좀 우습지요.”

화가는 농담을 진담처럼 말하고 짧게 웃었다. 겨울 날 고드름의 송곳 같은 짧음이었다.

“20대 때 전 항상 선생의 그림자 속에 있었습니다. 술에 취하면 절 불러 앞에 앉혀놓고 안톤 체홉 소설 이야기를 하시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술집에서 일어나시는 겁니다. 그 때마다 취하신 선생님을 댁까지 모시고 갔어요. 선생의 집은 굉장히 멀었어요. 수유리에서도 논길을 걸어 한참동안 걸어가야 하는데 선생은 그냥 집으로 가시지 않고 가게에 들려 소주 한 병을 얻어 마시며 걸었습니다. 돈이 없는 선생은 소주를 구걸했어요.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선생은 늘 대취했어요. 선생은 단칸방에서 사모님과 살고 있어 제가 누울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걸음에 다시 돌아섰고 그 때마다 갸름한 얼굴에 지적인 매력을 가진 사모님은 늘 미안해 했습니다. 나를 배웅하기 위해 마당까지 나온 나이어린 사모님은 난감한 얼굴로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논길과 내 얼굴을 잠깐 쳐다보다가 ‘조심히 가세요’하고는 단칸방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항상 멀고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혼자 돌아오는 밤이면 전 안톤 체홉 소설에 나오는 알료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기차간에 혼자 앉아 울다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알료힌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걷다보면 통행금지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기 마련이었지요.”

이야기를 끝낸 화가는 마치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듯이 큰 한숨을 내쉬며 소주를 마셨다.

“알료힌의 사랑은 유부녀인 알렉세예브나였지요?”

성우는 가슴 한편에서 밀려오는 알싸한 아픔의 진동에 몸을 맡긴 채 물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화가는 창 밖을 흘낏 돌아보며 대답했다. 눈은 그치지 않고 여전히 산발적으로 날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부인과 이별의 키스를 하고 기차 다른 칸에 가 앉아 다음 정거장에 도착할 때까지 알료힌 혼자 앉아 우는 그 모습이 평생 잊히지 않아요. 다른 것은 모두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장면만은 현재형처럼 살아남아 가슴 속에서 펄떡펄떡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우도 알료힌의 그 가슴 저린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연화를 만난 후의 성우 마음이 그러 했으리라. 연화의 깊고 큰 눈이 쉴 새 없이 눈앞에서 어른거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의 전부가 마음에 걸려있어 숨쉬기조차 거북했다. 연화의 눈길, 머리 모양, 음성, 외투를 건네던 손길, 발걸음, 그녀의 모든 것이 성우에게는 희귀하고 중대한 떨림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연화는 몇 번 더 성우와 함께 남편의 원고를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연화는 봄이 오면 남편이 못다 끝낸 탱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남쪽으로 떠날 작정이었다. 그 계획을 알고 나서 더욱 조급해진 성우는 연화의 아파트를 맴돌다 불쑥불쑥 초인종을 누르곤 했다. 그 때마다 연화는 지극히 담담한 태도로 커피를 끓여 내왔다. 꽤 오랜 시간을 아파트에서 머물러도 연화는 별다른 말 없이 혼자만의 생각에 골똘히 잠겨있다 아주 가끔 ‘좀 여윈 것 같아요’와 같은 한두 마디 말로 성우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 때마다 성우는 연화의 새카만 머리에 얹힌 흰 상장이 못마땅 했고, 등뒤에 떨어질 줄 모르고 끈질기게 붙어있는 죽은 남자가 또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러면서 이따금 스스로에게 화들짝 놀라 지금 무슨 무서운 착오가 생긴 것이 아닐까? 묻고는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 연화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 감추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가슴 속의 불타는 비밀이 그대로 드러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 하면서도 한시라도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 깊은 밤 혼자 있으면 이것이 과연 떳떳한 사랑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연화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 하는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깜짝 놀랐다. 또한 이런 감정이 과연 언제까지 오래 지속될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렇잖아도 죽은 남자를 달고 다니는 불행한 연화의 인생을 자신이 더욱 혼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런 성우와 달리 연화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시종 침묵을 지켰다. 성우에게 겨울은 유난히 짧고 봄은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 남쪽에서 매화꽃 소식이 들리고 얼마 있지 않아 마침내 연화는 짐을 꾸렸다. 워낙 가진 게 없던 터라 가방을 꾸리고 나니 11평 아파트가 텅 비었다. 성우는 가방을 들고 버스터미널까지 연화를 배웅했다. 터미널을 빠져나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던 성우는 화장실에 들어가 잠깐 운 기억이 났다.

“제가 스승의 집에서 돌아올 때 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길을 걸었는지 아십니까?”

잔뜩 굳은 얼굴로 담배 연기를 내뿜던 화가가 불쑥 물었다.

“……….”

“어째서 젊고 이지적인 사모님이 나 같은 남자가 아니고 하필이면 늙고 병들고 능력 없는 스승 같은 남자와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이런 착오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분개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극진한 사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줄곧 이 사랑을 쟁취할 만한 사랑의 힘이 내게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런데 그 힘이 부족하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수백 번도 더 묻고 물으면서 그 밤길을 혼자서 걸었습니다…….”

화가는 갑자기 목이 마른지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다시 잔을 채운 화가는 성우의 소주잔에 잔을 부딪쳤다. 잔 부딪치는 소리가 너무 맑고 명쾌해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자리를 비웠던 술집 주인내외가 신발에 묻은 눈을 탁탁 털며 문을 밀고 들어왔다. 화가는 평소와 달리 술을 많이 마시지 않고 뭔가 아쉬운 듯이 자꾸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약속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럼, 한 잔 더 하시죠?”

화가는 말없이 성우가 내민 술병 앞에 잔을 내밀었다.

“하지만 제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그녀가 갑자기 죽었기 때문입니다. 밤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는 스승님을 마중하기 위해 논길까지 나갔다가 술 취한 운전사가 운전한 트럭 뒷바퀴에 깔려 죽었습니다. 불과 두 달이 안 되어 스승님 역시 간경화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럼, 그 그림 속의 여자가?”

“그렇습니다. 스승의 여자, 아니 제가 죽도록 사랑했던 그녀였습니다. 그녀가 죽은 다음에야 전 그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를 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얼굴을 환하게 드러낼 용기가 없어 어두운 실루엣 속에 가두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저는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내 가슴에 뜨거운 아픔을 주며 내 사랑을 방해하고 있던 모든 것이 실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고 일고의 가치조차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말입니다.”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만지작거리던 소주잔을 어느새 꽉 움켜쥔 화가는 마치 화난 사람처럼 잔뜩 일그러뜨린 얼굴 위에 심술궂은 혐오감과 허탈감이 동시에 떠오르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괴롭던 문제에 끝장을 내버린 뒤의 안온함을 느끼듯 예의 편안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성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화가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연화가 떠난 후 성우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짧은 시간 그를 괴롭힌 그 감정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다. 얼핏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죄스럽고 비도적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이상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되풀이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우는 싸웠다. 고통스럽게 싸웠다. 그러나 마음속을 점령한 그 사랑 앞에서는 항거할 수 없었다. 그 앞에서 자신의 이성은 정말 저속하고 무력한 존재였다. 연화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있었고 솔직히 그런 광증이 두려웠다. 온 몸을 점령해 밤이고 낮이고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 그녀를 지우기 위해 밤낮으로 술을 마셨다. 그러면 초반에 두 무릎이 따스한 목욕물에 잠기듯이 좋게 죄어드는 기분이 들다가도 갑자기 사악한 잔인성을 느끼며 화들짝 놀라 고개를 마구 흔들기도 했다. 성우는 자신의 감정 속에 나타나는 이상한 충동을 해명하려고 애썼지만 무력과 나태와 공허로 충만해있을 뿐이었다.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이 헝클어져버린 혼란 속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확실한 것은 연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한 가지뿐이었다. 남쪽으로 떠난 연화는 얼마 후 매화꽃 사진 한 장을 메일로 보내왔다. 아무런 사연도 없이 비에 젖은 홍매화 사진 한 장만 덩그러니 보내오고 끝이었다. 휴대폰은 늘 꺼져 있었고 메일을 보내도 몇 개월이 지나도 열어보지 않았다. 감정의 혼란 못지 않게 이성의 혼란을 느낀 성우는 그럴 때 흔히 그러듯이 있는 힘을 다해 연화를 잊으려 애썼다. 하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연화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성우는 사무실 안에 죽은 듯이 처박혀 봄, 여름, 가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성우는 그렇게 연화를 갈망하면서도 한 번도 그녀를 찾아나서지 않았다. 그 사실이 일견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그것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 사랑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다만 문제제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자책감이었다. 고통스러운 투쟁에 완전히 지쳐 마치 중환자처럼 엎어져 있을 때 지방에서 신문을 창간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성우는 도망치듯이 6층 사무실 계단을 뛰어내려와 지방으로 왔다. 그렇게 아직도 꺼지지 않은 화인 자국을 가슴에 묻은 채 하루하루를 위태위태하게 살고 있는데 아침에 뜻밖의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문제 자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선생님 사랑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겁니까?”

다소 뚱딴지같은, 엉뚱한 성우의 질문에 화가는 대답대신 희미하게 웃기만 하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사랑이 어떻게 생기는지 전들 알 수가 있나요? 다만,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통념에서의 행복이니 불행이니 죄악이니 미덕이니 하는 것보다 좀 더 높고, 좀 더 중요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되면 차라리 전혀 생각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뒤늦은 그 절실한 자책 때문에 알료힌이 기차 안에 혼자 앉아 그렇게 서럽게 울었고, 저 역시 죽은 그녀를 그리면서 그랬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술병이 비었지만 성우도 화가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주인 여자가 빈 그릇을 챙기자 화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눈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야겠군요.”

밖으로 나온 화가는 마치 자신 그림 속의 오래된 성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두운 거리 저편으로 쑤욱 사라졌다. 성우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잠시 생각했다. 연화가 마지막으로 그를 기다리는 곳은 포천이었다. 성우는 다시 눈발이 빽빽하게 허공을 메운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통념에서의 행복이니 불행이니 죄악이니 미덕이니 하는 것 보다 좀 더 높고 중요한 무엇이라는 것은?”

그러자 어디선가 갑자기 생겨난 눈물이 성우의 얼굴 구석구석을 뜨겁게 적셨다.

겨울, 어느 날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김성달 /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으며 『한국문학』과 『삶이 보이는 창』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환풍기와 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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