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서문
한국사에 있어서 20세기 전반사는 아직도 우리 앞에 그 성격을 뚜렷이 부각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대한 역사인식의 체꼐화는 사실상 민족문화가 지향할 바를 지시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일
것입니다.
고 홍이섭 교수께서는 바로 이 문제에서 민족을 일실한 인간 없는 역사를 피하고 절대적인 민족문제
를 감정적인 문제로 소외시키려는 방법을 비판적으로 배제 하시면서 많은 문제점과 통찰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선생께서는 생전의 연구업적을 정리하셨고 종합하시어 체계적인 저술을 계획계 하셨습니다.
이제, 선생께서 남겨 놓은신 메모지 속에 담겨져 있는 일단의 논문목록을 기초로 하고 선생께서 모아 오
신 원고로 이 책을 간행합니다.
선생의 옥고를 흔쾌히 주신 유족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선생의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1975년 5월 한국일보사
(고 홍이섭 선생은 구공탄 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셨음. )
제1부
1. 한국 근대사의 인간상
조선왕조의 봉건제에서 근대사회로 - 유가의 한 정신상태 -개화의식
2. 근대화의 회의
현대 한국의 두 단계 - 식민지적 근대화 - 현대 한국의 문제
3. 식민지 문화가 가져온 것
서론. 1904년 ~ 1945년까지의 역사적 시대 - 한국에 있어 일본의 정책
- 식민지적 지배의 한계 - 역사적인 현실 - 내일의 한국을 위하여
4. 한국사에 있어 30세기 전반기의 규정문제
서론 - 식민지 일반론과 조선 호칭문제 -식민지 정책의 본질에서의 독립투쟁의 추출
제2부
5. 3.1운동의 사상사적 위치
한 방법의 시험 - 3.1운동과 계급의식의 문제
3.1운동과 인식 구성문제
박은식의 '혈사' 가 지적한 사적의의
3.1운동의 근본의의
3.1운동의 사상사적 지위
제3부
6. 한일 문화관계
서론 - 역사적 교섭 (? ~ 1875)
조선이 학자들의 근세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
한일의 근대화와 일본의 식민정책
맺음말
제4부
7. 사대사상에서 오는 열등감 (타율성론)
서론. 민족사관의 확립에서의 비판
식민지적인 데서 온 (사대적)인 정신
현대적인 사대성의 문제
열등감과 과시성
결론
8. 민족문화에 도전하는 미국(양키)문화
근대에 있어 한미의 접족
다음에 온것
아메리카니즘의수용
아메리카니즘의 수용2
아메리카니즘의 본질
한국의 민족문화
맺음말
--------------------- 1부 시작 ------------------------------
1. 한국 근대사의 인간상
2. 근대화의 회의
3. 식민지 문화가 가져온 것
4. 한국사에 있어 [20세기 전반기]의 규정문제
1. 한국 근대사의 인간상
한국사에 있어 특수사의 분과적인 제 연구 - 사상, 철학, 문학, 윤리 등에 관한 사회사적 이해- 가 뒷받침될때
비로서 보다 나은 견해가 성립될 것을 전제로 하고 여기서는 한국 근대사에있어서의 사상적 전변에 따라 부양
된 인간상이 어떠 하였는지를 알아 보고자 한다.
(1) 조선왕조의 봉건제에서 근대사회로
대내적으로 봉건제의 정치구조에 금이 가게 한 사회적인 광범한 운동은 1862년 [철종 3년, 임술의 진주민란에서
불똥이 튀자, 전국적인 규모로 퍼져갔던 농민들의 항거에서부터 일 것이다.
이 농민들의 움직임은 19세기 후반기를 그대로 물들이고 있었으나, 그래도 이 취약한 지반에서 견디어 온 그 자체 가 한국 근대화 부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기반에서 한국의 근대화는 외래적인 자본주의의힘에 휩쓸리었고 이 과도기에 있어 한국의 자체적인 근대화를 기도한 몇 사람의 [파이오니어]는 곧 한국 근대사상에 있어 새로운 인간상 이었지만 그 구성 조건이 복합적이었음은 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화를 이와 같은 정치적인 면에서 만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경제적인 명에서 보더라도 외래적인 일본자본주의의 억압으로써 개항했던 1876년 이후의 상태는그대로 가내수공업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였음에 비추어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적인 농경적 과락기술이란 서구적인 근대과학기술과는 판이하였으며, 특히 한국 사회에 선봉적인 개항자, 즉 침략자로 면전에 나타난 일본과도 이질적이였다.
그와 같은 과학기술의 제약을 받던 사상, 또 그러한 과학기술의 단계에서 이 사회를 제약한 사상으로서의 유교주의적 인간상은 한국 사회의 전변에 따라 자신이 지니고 있던 유교적 세계관을 근대적인 것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었던 것만은 종전의 일반적이며 개념적인 해석을 달리 하게 한다.
(2) 유가의 한 정신상태 - 이항로와 그 문하
이항로는 19세기 중엽에 시폐 [당시의 정치적 폐단]를 시정하고자 함에 있어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앞장선 유가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당시 그가 살아 온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중엽에 걸친 전 시기가 유교주의의 옹립이 그 기본적인 틀이었고
이 유교주의의 의식 방향은 어디까지나 모화적(慕華的)이었으니, 대외적으로 (서양사천 여오유사천 상반변), (양인칠극 여오유팔형 상반변), ( 오유살신성인 여서양낙 사욕순 상반변), ( 천당 지옥변), 등에서 전통적인 서학의 비판- 배격에 시종하였고 더우기 그의 잡록중의 일절에서는 전통적인 서양의 사상 정신 면에서의 비판만이 아니라 <통화><통색>을 인간의 타락이라고하여 서학의 필연적인 귀결로 보았다.
<통화>는 물질적인 것을 뜻하고 <통색>은 그대로 정욕으로 간주하여 예론의 절약과 금욕적인 자리에서 금수이적의 무리가 된다고 극론을 하였다.
이러한 이항로의 폐쇄적인 생각은 1866년의 척화소에서 '양적을 몰아낼 수 있을 때 국가 또한 보존할 수 있다' 라는 洋賊可逐 國家可保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또 그의 상소문 중에서 (양물-서양상품) 사용의 국가적인 금지를 강조하면서 '이몸은 평생 서양의 직물을 몸에 대지 않았고, 집안에서 서양물건을 쓰지 않는 것으로 집안 일을 보았다.'
臣平生身不着洋織 家不用洋物以成一家之政 - 여기에서 서양것이란 청일에서 받아 들이는 물품, 그중에 양화품을 가리키는 것과는 다르다- 고 하였다고한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외래 자본주의 세력의 접근에 대항적인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
물론 이항로는 이것을 사<邪>로서 보았던 것이지만.
이항로의 척사론을 계승, 전개한 그의 문하인 김평묵의 벽사변증기의(1866년 고종 3년)도 또한 서학의 배격적인 비판에 있어 통화 (通貨- 여기서는 다분히 외국 무역을 뜻한다) 는 곧 재갈(재물의 고갈), 민궁(민중의 궁핍)을 초래한다고 보고 (스스로 농사 짓고 옷을 짜면 천하에 구제할 백성이 없다. 라고 한 과거적인 농본적 자급자족의 경제체제에서 유가적인 금욕주의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면에서 이항로의 문하인 백낙관은 <개국유예론을 제시하게 되었으니, 그는 말하자면 서학배격의 척사론적인 폐쇄 방향에서 양화의 배척을 꾀한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의 유입을 그대로 터 놓을 수 없다는 것으로 당장에 문호를 개방하면 양화의 유입에 견디어 내기 어려우니 외래상품의 유입에 견딜 수 있는 국내 태세를 먼저 갖추자는 것이었다.
*상제여천주 부동변 (上帝與天主 不同辨) -유가의 상제와 천주교의 천주가 같지 않음에 대한 변(판단)/ 서양사천 여오유사천 상반변(西洋事天 與吾儒事天 相反辨) - 서양의 사천이 우리 유가의 그것과 상반 함에 대한 변/ 양인칠극 여오유팔형 상반변 (洋人七克 與吾儒八刑 相反辨) - 서양인의 7극과 우리 유가의 8형의 상반함에 대한 변/ 오유살신성인 여서양낙사욕순 상반변 (吾儒殺身成仁 與西洋樂死欲殉 相反辨) - 우리 유가의 살신성인과 서양인의 기꺼이 죽고 순교 하고자 함이 상반함에 대한 변/ 천당 지옥변 (天堂 地獄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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