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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맞다
천양희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가 오려나 거위눈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 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전문, '현대시학' 1월호 발표>
*** 부당함에 눈 감지 말고 바람이 일듯 일어서야
시인 천양희씨는 "낙동강변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바람에 대해 상당한 매혹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강둑에 서면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천씨는 "요즘도 바람 부는 날이면 집 근처 수락산에 올라 바람을 맞곤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천씨가 가장 좋아하는 시구 중 하나다.
"바람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봤다. 천씨는 "바람은 굉장한 떠돌이 같다. 또 자기 정체성이 없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될 수 있는 다의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시와 비슷하다. 시의 묘미는 다의성이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그런 천씨가 바람에 관한 시를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천씨는 미당문학상 후보작 중 독자에게 소개하기로 결정한 '바람을 맞다'가 "마들 들판과 수락산의 바람을 맞아가며 틈틈이 구상해두었다가 지난해 11월 가다듬은 시"라고 소개했다. "마침 분위기가 새해와 어울리는 것 같아 시 전문지 '현대시학' 1월호에 신년시로 주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씨는 "'바람을 맞다'에서의 바람은 부는 바람도 되고, 희망을 뜻하는 바람도 되고, 세상의 부당함도 된다"고 밝혔다.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적인 일이든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눈을 감아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이 일어서듯 여장부처럼 나도 일어서야겠다는 결의를 담은 시"라는 것이다. 또 "생명에의 외경,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의 숭고함도 담고 있다"고 했다.
"몇 가지 시어의 의미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천씨는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한 이는 괴테였고,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고 답했다. 거위눈별은 실재하는 별로, 촉촉한 모습으로 관측될 경우 비가 온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운명과도 같은 가혹한 삶의 고통을 잔잔하게 치유하고 극복해내는 천양희의 시어는 한국 시단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한 내성(耐性)과 심미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씨는 "그런 연장선상에서 '바람을 맞다'가 수난과도 같은 시인의 삶을, 초록빛 생명으로 넘쳐나는 숲 속에서 부는 바람으로 은유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 천양희 약력
-1942년 부산 출생 -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마음의 수수밭''오래된 골목' -96년 소월시문학상, 98년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후보작 '바람을 맞다' 외 16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