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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데미안』- '달리 보기'의 미학

작성자이충이|작성시간06.03.02|조회수868 목록 댓글 0

 

 

헤르만 헤세의『데미안』

- '달리 보기'의 미학 
  
                                                                                                                노 태 한 (단국대)

 

 

 

일차 세계대전(1914-1918)이 일어났을 때 헤세(1877-1962)는 이미 2 년 전부터 스위스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독일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베른 주재 독일 영사관에서 실시된 징병 신체검사에 응했을 뿐 아니라, 지원병으로 입대할 의사까지 밝혔다. 그의 이러한 지원은 약한 시력 때문에 거절되었으나, 얼마 후 그는 베른 주재 독일 대사관 부설의 전쟁포로구호소에서 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특히 전쟁 초기에 전쟁 당사국들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온갖 장광설로 서로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전쟁의 열기에 전혀 동조할 수 없었던 헤세는 1914년 11월 3일자「노이에 취르혀 차이퉁」신문에 후일 유명해지게 된 그의 反戰적 호소문「오, 친구들이여, 이런 장단을 그만 두라」를 발표했다. 지식인들의 호전적인 발언과 주장에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충격을 받았던 그는 이 글에서 편협한 국수주의에 영향받은 그들의 광기 어린 행동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그들이 인간성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 줄 것을 열렬히 호소했다.

 

여기서 그는 학자, 교사, 예술가, 작가 등 지식인들의 "생각의 모자람"과 "정신적 태만"을 질타했으며, "사상과 내적 자유와 지성적 양심의 초국가적 세계"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나아가서 그는, "(펜대를 휘두르며!) 부화뇌동해 유럽의 미래를 위한 기반을 더욱 흔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얼마간의 평화를 유지하고 다리를 놓고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지성인들의 진정한 과제임을 지적했으며, "증오보다는 사랑이, 분노보다는 이해가, 전쟁보다는 평화가 더 고귀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정치적, 군사적인 것을 넘어 보편적인 정신적 가치들을 파괴하고 무시하는 야만성"에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그로 인한 고통과 분노 때문에 저항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나 역시 내 생애의 한때, 조용하고 靜觀적인 나의 전 철학을 내던지고, 피가 흐르도록 까지 일상의 문제에 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랬던 것은 바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였는데, 거의 십 년 동안 나에게는 전쟁에 대한 항의와, 피를 바라는 인간의 우매함에 대한 항의와, 정신적인 사람들, 특히 전쟁을 설교하는 사람들에 대한 항의가 의무요 쓰라린 필연이었다." 헤세는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국수주의와 야만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평화를 옹호했던 극소수의 독일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평화주의적 호소가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소외와 증오뿐이었다. 위의 호소문에 이어 1915년 10월「다시 독일에」라는 글을 발표한 후 헤세는 독일 언론으로부터 "배신자",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쾰른 일보」같은 신문은 여러 차례 게재된 한 기사에서 헤세를 이렇게 혹독하게 매도했다:

 

 "마치 슬픈 모습의 기사처럼 비겁자 헤르만 헤세는 [...] 마음속으로 이미 오래 전에 신발에서 조국 땅의 먼지를 털어 버린 조국 없는 사나이로서 다가오고 있다." 당시 그를 공개적으로 옹호해 준 사람은 콘라트 하우스만, 테오도어 호이스, 헤르만 미센하르터 등의 소수의 인사들뿐이었다. 헤세 자신은 이러한 비판적 기사들로부터 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이를 그는 오래도록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인 1924년 헤세는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레네 쉬켈레, 레온하르트 프랑크 그리고 취리히 다다이스트들 등, 그와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당시 스위스에서 살고 있었던 독일 작가들과 헤세는 거의 접촉을 갖지 않았다. 그는 개인주의자, 獨行者로 남았으며, 어떤 작가 서클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작가들 사이에서도 거의 잊혀진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 국제 적십자사 본부에서 전쟁포로 구호사업을 돕고 있었던 프랑스의 작가 로맹 롤랑의 존경과 우정을 얻게 되었다.

 

한편, 헤세는 전쟁포로 구호 사업에 그의 온 힘을 다 기울였다. 그는 이 일을 개인적인 의무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인생은 바로 그 자신의 별 아래에서 움직입니다. 그런데 나의 별은 영웅적이거나 애국주의적이거나 군사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별들을 존중하고 그러한 별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나의 과제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내가 보호해야 했던 것은 기계화와 전쟁과 국가와 대중적인 이상들을 통해 위협받고 있는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영웅적이지 않고 평범하며 그저 인간주의적이기 위해서는 종종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나는 모르고 있지 않았습니다." 공식적인 전쟁포로 구호 사업의 일환으로 헤세는 1915년부터 1919년 초까지 동물학자였던 리하르트 볼테레크과 함께 "베른 독일 전쟁포로 문고 센터"를 운영했는데, 이 문고 센터의 주요 임무는 프랑스와 미국에 있는 독일 포로들과 스위스에 억류되어 있는 군인들에게 읽을 거리와 서적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위해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재정적인 지원이 너무도 미미하고, 그것마저 이내 고갈되어 버렸기 때문에, "문고 센터"의 운영은 거의 전적으로 두 책임자의 능력과 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헤세는 동료들이나 친구들, 도서관장들이나 출판업자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써서, 책을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말할 것도 없이 결코 그저 단순히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국민 교육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포로들의 정신적, 도덕적 위험이 크니 말입니다." 수 만 권의 책이 수집되고 포장되어서 프랑스에 있는 독일 전쟁포로들에게 보내졌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불행의 소리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나는 내가 서 있는 이 보잘것없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생각입니다."

 

기증 받은 책의 수가 모자라고, 또 상당수의 책은 포로들에게 보내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헤세는 1916년 1월 독일 전쟁포로들을 위한 신문을 창간, 그 편집 일을 맡았다. 이 신문은 중립국 스위스의 "포로 구호 협회"의 깃발 하에 그리고 다른 발행인 이름으로 간행되었다.「독일 전쟁포로들을 위한 일요신문」은 이후 3 년간 2 주마다 수 천 부씩 프랑스, 영국, 러시아 그리고 이탈리아로 보내졌다. 뿐만 아니라 헤세는 볼테레크와 함께 "베른 독일 전쟁포로 구호소"가 발행하는「독일 포로신문」의 편집을 책임지기도 했다. 나아가서 또 헤세는 "전쟁포로 문고 센터"가 부설로 설립한 출판사를 통해 전쟁 포로들을 위한 일련의 소책자들을 시리즈로 편찬했는데, 그 권수는 22 권에 이르렀다.

 

전쟁이 가져다 준 심각한 정신적 충격, 전쟁포로 구호 사업으로 인한 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육체적 피로에 이어 헤세는 또 개인적, 가정적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내 마리아와의 결혼생활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으며, 1916년 3월 8일에는 애증이 교차하는 감정으로 대해오던 아버지가 사망했다. 거의 같은 때에 막내아들 마르틴이 심한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으며, 이미 오래 전부터 신경쇠약 증세와 발작증세를 보여 오던 아내 마리아는 자주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 쓴 한 시에서 헤세는 자신의 위기적인 상황과 고통스런 심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축복 없는 세월/ 가는 길마다 폭풍은 불고/ 어디에도 고향 땅은 없고/ 미로와 오류뿐이다!/ 내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신의 손길."

 

이런 안팎으로부터의 충격으로 인해 헤세는 1916년 초 그 자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심한 우울증 증세와 함께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게 되었기 때문에, 베른에서의 전쟁포로 구호의 일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카르노와 브룬넨에서의 요양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헤세는 1916년 봄 루체른州 존마트에 있는 사설병원에서 정신 분석적인 치료를 받았다. 심리학자 융의 제자인 의사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의 도움을 통해, 그리고 프로이트와 융의 저술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헤세는 경직된 사고를 다소 해소할 수 있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왔던 갈등과 새롭게 직면하게 되었던 정신적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1916년 6월부터 11월까지 대략 72 차례에 걸쳐 헤세는 랑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것은, 후고 발이 올바르게 지적한 대로, 좁은 의미에서의 의사의 진료라기보다는 흉금을 털어놓는 두 친구 사이의 정신 치료적인 대화였다. 이러한 대화는 헤세의 체험 영역을 결정적으로 확대시켜 주었으며, 그가 인간으로서나 작가로서 발전해 감에 있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가능성과 길을 열어 주었다. 1918년에 쓴 논문「예술가와 정신분석」에서 헤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억이나 꿈, 연상으로부터 영적인 근원을 탐색하는 작업인 정신 분석의 길을 진지하게 얼마간 걸은 사람에게는 불변의 소득으로 남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우리는 대충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보다 은밀한 관계'라고 부를 수가 있다. 그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보다 은밀하고 생산적이며 활발한 교류를 경험한다. 보통 '바닥에' 머물러 있으며 오로지 꿈속에서만 전개되는 것 가운데 많은 것을 그는 표면 위로 끌어올린다." 헤세의 문학에서 정신 분석이, 특히 융의 그것이 차지하는 의미가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다시 말해 융 심리학의 이론과 원리로 헤세의 작품을 모두 설명하려는 태도를 우리는 지양해야 하겠지만, 랑이나 융의 저술과의 만남이 헤세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설명하고 또 언어로 형상화하는 데 있어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곁코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17년 9월과 10월 두 달 사이에 베른에서 격렬하게 씌어진, "변혁과 변화와 새 출발의 시기의 헤세의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작품"『데미안』은 그의 소설 가운데 융 심리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었다.

 

 

 

처음 발표될 당시의 제목『데미안 - 어느 젊은 시절의 이야기. 에밀 징클레어 작』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것처럼 헤세의 소설『데미안』은 주지하다시피 처음 에밀 징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되었는데, 작가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늙은 아저씨의 알려진 이름으로 젊은이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징클레어는 과거 내 인생의 혹독한 시련기에, 1914년의 전쟁 동안에 내가 썼던 논문들 가운데 몇 편을 위해서 그리고 나중에는『데미안』을 위해서 내가 선택했던 가명이었다. 그때 나는 홈부르크에서 살았던 횔덜린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이자크 징클레어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소중하게 여겨졌으며 은밀하고도 매혹적인 음향을 지니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이 '징클레어'라는 기호는 오늘날에 와서도 그 열정적인 시기를, 아름답고 되돌릴 수 없는 세계의 소멸을,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으나 나중엔 은밀히 긍정하게 되었던 각성을 통해 세계와 현실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던 것을, 양극적 단일성, 즉 수 천 년 전 중국에서 선불교의 대가들이 신비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던 대립들의 지양에 대한 번득이는 통찰을 암시한다."

 

전쟁 발발 초기부터 베른에서 해 오던 전쟁포로 구호사업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계속할 수 있기 위해서, 反戰 사상을 고취시키는 그의 참여적 성격의 정치적 논문들에 대해 헤세는 이미 1917년부터 이 가명을 사용해 오고 있었지만, 가명의 사용은 다른 면에서도 헤세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겪은 여러 가지 심리적 갈등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독자들에 대한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유익하고 의미 있는 수단이 되어 주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데미안』은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17년, 안팎의 동요가 격심하던 시기에 씌어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조국 독일이 아닌 스위스에 살면서 反戰적인 글을 발표하는 헤세에 대한 독일 언론의 적대적인 반응, 파경에 이른 결혼 생활, 막내아들의 중병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헤세는 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는 랑 박사와의 정신 분석적 대화를 통해 그리고 융과 프로이트의 저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통해 탈출구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이 같은 '내면에의 길'을 걸음으로써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여러 가지 갈등과 새롭게 마주하게 되었으며, 또한 동시에 생의 '양극적 단일성'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헤세는 자신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어떤 근본체험을 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러한 확신은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새롭게 가지게 된 체험과 인식을 표현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구하게 하는 자극이 되었다. 헤세에게 있어 생의 위기는 곧 새로운 예술 창작의 단초가 되었다: "나의 영혼이 소단위에서의 인류 발전의 한 부분이며, 근본적인 면에 있어서 우리 내면의 어떤 작은 움직임도 바깥 세계의 전쟁이나 평화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나는 내 내부에서 새로이 하였습니다. [...] 내가 말하고 싶은 새로운 내용을 위한 표현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형식과의 투쟁을 다시, 완전히 새로이 재개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밀 징클레어라는 가명의 사용은 과거와의 결별과 새로운 미래에의 결의를 나타내는 단적인 표현이었다.

 

 

 

『데미안』의 핵심 주제는 자기탐구이다. 에밀 징클레어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가질 수 있는 서사적 가치에 대한 회의와 함께 그러한 이야기가 지닐 수 있는 보편적, 상징적 의미에 대한 통찰이 이 소설에 묘한 긴장감을 부여해 주며, 그러한 긴장감에서 비롯하는 암시적인 힘은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독자를 매혹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이 소설의 序章은 바로 화자의 시선과 관심이 화자 자신의 내면 세계에 엄격하게 고정되어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동시에 이런 개인의 이야기가 초개인적이고 초시간적인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가 또 일회적인 인간 이상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말로 총알로 완전히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단순히 그 자신인 것만이 아니다. 그는 또한 세계의 온갖 현상들이 교차하는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느 면으로든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점이기도 하다." 한편 序章 바로 앞의 모토("나는 정말 내 자신의 내부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만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왜 그다지도 어려웠을까?") 는 이 소설이 한 구도자의 自傳임을 규정 지워 주는데,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직접 진정으로 체험했다고 하는 사실이 또한 동시에 그러한 체험을 해석할 수 있는 좋은 단서를 확보해 준다. 바로 이와 같은 서사 기법이 이 소설의 전체 구조를 결정한다. 자신의 과거 체험을 회고하는 일인칭 화자는 스스로 설정한 현실 세계 내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행동하며, 서사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자율적인 주체로 형성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각자는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다."(8)

오로지 일인칭 화자의 눈을 통해서만 들여다 볼 수 있는, 자아의 완전히 폐쇄된 내면 세계에 서사의 초점이 맞추어짐으로써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독자의 입장과 태도는 애초부터 특정의 방향으로 고정된다. 일인칭 화자가 취하고 있는 근본 입장, 그의 세계관과 인간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그의 해석이 미리부터 타당한 것으로 제시될 뿐 아니라 보편 타당한 진리로까지 승화된다. 일회적인 '영혼의 전기'가 일반적 인간 실존의 패러다임으로 고양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 자신에로의 道程이며, 큰길의 모색이며, 작은 길의 암시이다. 일찍이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각자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로, 어떤 사람은 둔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밝게."(8)

 

"자기 자신에로의 길"은 인간과 세계의 이분적 구조를 경험함으로써 자아의 좁은 한계를 지양하고, 제반 대립의 통일 속에서 새로운 자기를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두 세계", 즉 확고한 규범과 내·외적 질서를 가지며 엄격한 한계 속에서 움직이는 "밝은" 일상세계와 모험과 위험과 통제되지 않은 감정의 "어두운 세계"를 체험함으로써 벌써 열 살 짜리 소년 징클레어는 그의 주위 세계와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는 한편으로는 불안과 매혹이 교차하는 상반된 감정 속에서 악동 프란츠 크로머의 영향권 속으로 빠져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아버지의 세계가 갖는 권위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것은 아버지의 성스러운 세계에 난 최초의 균열이었다. 그것은, 나의 어린 생활이 바탕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는 支柱들에 난 최초의 자국이었다."(21) 자기소외로 인해 징클레어는 불안한 '이중생활'을 하는데, 거기에서는 때로는 순진한 소년의 "건강한 세계"가, 때로는 프란츠 크로머의 "그림자 세계"가 삶의 기분을 지배한다. 성장기 소년의 기성 사회질서로부터의 이 같은 소외를 징클레어가 위협적인 것으로도 체험하고 있음은 당시의 그의 꿈이 증명해 주는데, 이 꿈에서 그는 아버지의 세계의 권위에 대한 자신의 저항을 살인행위로서 체험한다. 그러나 일시적으로나마 순진한 어린이의 세계로 되돌아가려는 그의 시도는, 온갖 대립이 바로 자기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으며 바로 거기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에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인간과 사물의 통일된 상태를 파괴하는 "균열"은 바깥 세계와 내면 세계 모두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징클레어의 분열된 자아는 그의 자기소외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주위의 세계를 더욱 분열적으로 인식한다. 그에게는 이전의 친숙하던 세계가 무서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소외의 과정을 통해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은 채 자신의 정신 속에 억압되어 있는 여러 가지 충동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면에서『데미안』역시 그 전통 속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독일 교양소설 내지 발전소설에서 줄거리를 형성하는 주요 갈등은 대개 주인공과 그의 주위세계 사이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여기『데미안』에서는 그러한 대립이 전적으로 주인공 징클레어의 내면 세계로 옮겨지고 있다. 해결되지 않은 그의 내적 긴장과 갈등이 소설 내 사건의 거의 유일한 무대가 된다. 모든 새로운 발전 단계는 동일한 갈등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다루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프란츠 크로머와의 고통스런 대결은 징클레어가 어린 시절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예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막스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등 그 자신의 숨겨진 면을 대변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한 도전 속에서 징클레어의 갈등은 더욱 그 강도를 더하게 되며 새로운 해결로 나아간다. 뿐만 아니라 모든 단계의 대결에서는 매력과 혐오, 불안과 해방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충동이 동시에 작용한다. 예를 들어 징클레어는 크로머에 대한 자신의 예속 상태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양친의 세계에 대해 우월한 감정을 느낀다. 막스 데미안과의 교류에 있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불안감과 찬탄의 감정이 교차한다. 진정한 자기를 발견해 가는 과정에 있어 필연적인 자아의 한계 지양을 자신에게 가르쳐 주는 스승이자 친구인 피스토리우스조차도 징클레어는 "뛰어넘고 떠나지"(124)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장면이 각기 나름으로 주인공 징클레어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개개의 삽화는 전통적인 발전소설의 경우에서와는 달리 구조적인 면에서 독립성을 띤다. 징클레어의 여러 가지 체험들은 단지 피상적인 의미에서만 傳記적 형식을 통해 결합되어 있을 뿐이며, 심층 구조에 있어서는 심리적 발전과정의 중요 단계를 나타낸다. 모든 외적 변화는 새로운 차원의 내적 가능성을 반영할 뿐이다.

 

 

 

소설『데미안』의 구성상의 근본원리로서의 양극성은 그러나 주제적인 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상호관계, 언어와 문체 그리고 줄거리의 구조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데미안』에서는 개체의 피할 수 없는 변화, 그것의 개방과 한계 초월 그리고 새롭게 발견하게 된 조화로운 자기 속에서의 대립의 통일이 형상화되고 있는데, 우선 인물 배치에 있어서는 징클레어의 다른 인물들과의 만남이 대립의 체험으로 성격 지워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징클레어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인물들 그 자체가 바로 양극적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긴장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은 데미안이나 에바 부인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兩性적 성격이다. 두 사람은 모두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통일된 자아 속에서 제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징클레어 자신이 완성된 자아에 다가가는 정도에 따라 그는 이러한 兩性적 요소를 더욱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징클레어는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꿈을 꾸는 것을 통해 나중에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인 것으로 드러나는 이상적인 형상, 즉 "내 마적인 영혼의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인 꿈의 형상"(121)을 구상하지만, 아브락사스에게서는 "쾌락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혼합되고, 성스러운 것과 추악한 것이 서로 얽히는"(94f.) 등의 형태로 극단적인 대립을 그 자체 내에서 조화시키고 있는 神性을 발견한다. 헤세의 작품에서는 兩性적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황야의 늑대』에서의 헤르미네처럼 대개 여성으로서 주인공에게 자신의 영혼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이런 兩性적 여성 인물들 속에는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어머니의 모습과 성적 매력을 지닌 애인의 모습이 서로 결합되어 있지만, 그들은 결코 현실적 사랑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사랑은 징클레어가 베아트리체를 멀리서 숭배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보다 높은 경지로 승화되며, 애인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고양된다. 만약 주인공이 자신의 또 다른 모습들인 이들 여성들과 실제로 결합을 한다면, 그것은 곧 그가 대립을 통일한 경지에 도달했음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헤세의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을 향한 길에 이제 막 들어서 있을 뿐이다.

 

징클레어의 자기탐구와 자기발견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데미안이다.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징클레어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원론적 세계체험이 타당한 것임을 확인한다. 뿐만 아니라 징클레어는 데미안으로부터 사물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다른 시각'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규범과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는 법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을 배운다. 징클레어는 이 단계의 발전과정에서 아직은 데미안의 파격적인 사고와 행동에 거부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찬탄과 불안의 감정이 교차하는 속에서 그것이 또한 자기 자신의 내부의 충동이기도 함을 예감한다: "오로지 내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어떤 목소리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모든 것을 내 자신보다도 더 잘,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던가?"(41) 활력과 힘, 혼돈과 저항 등을 바로 자기 자신의 영혼의 다양한 가능성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징클레어는 자신의 자아를 확대시키고, 새로운 영향과 체험, 삶의 가능성들에 대해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전에 그로 하여금 매혹의 감정과 함께 공포감을 가지게 하였던 데미안의 생각과 말이 이제 갑자기 그에게 친숙한 것으로 여겨진다: "데미안이 신과 악마에 대해서, 성스럽고 공식적인 세계와 무시되고 있는 악마의 세계에 대해서 말했던 것, 그것은 바로 정확하게 내 자신의 생각이었으며, 내 자신의 신화였다. 두 세계 또는 두 半 세계, 즉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에 대한 바로 그 생각이었다."(63) 이처럼 처음에 위협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사실은 바로 자기 자신의 내적 가능성일 뿐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됨으로써 징클레어는 사고에 행동을 일치시키도록 하는 도전과 끊임없이 부딪치게 된다: "우리가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상만이 가치가 있다. 너는 너의 '허락된' 세계가 세계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너는 목사들이나 선생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 2의 반을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그 일에 너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그와 같은 사고를 하기 시작한 사람은 결코 그 일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64)

 

『데미안』의 구조원리로서의 양극성은 언어적 표현과 문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로 상반되는 의미와 분위기를 갖는 말들이 한데 결합되어 나타난다: "많은 것이 향기처럼 나에게로 다가와, 고통으로 그리고 기분 좋은 전율로 마음속으로부터 나를 흔들어 놓는다. 어두운 거리와 밝은 집들 그리고 시계 종 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얼굴들, 아늑함과 포근한 안식이 넘치는 방들, 비밀과 유령의 공포가 넘치는 방들. [...] 거기에는 두 세계가 서로 엇갈리며 달리고 있었다. 두 극으로부터 낮과 밤이 오고 있었다."(9) 사물에 대한 이 같은 감각상, 정서상의 대립적인 인식은 근본적인 면에서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선'과 '악'의 대립으로 고양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대립적인 표현은 중복적인 비유와 반복적인 언어를 통해 더욱 밀도 있게 나타나기도 한다: "[...] 나는 깊이 그리고 죄스럽게 낯선 물결 속으로 가라앉았다.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위험과 불안과 치욕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모험과 죄악 속으로 휘말려들어 갔다."(19)

 

이런 중첩적인 표현 속에는 익숙하지 못한 새로운 체험을 여러 가지 내포적인 의미를 갖는 유사한 단어들로써 보다 상세하게 묘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일차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동일 어구의 반복과 낱말이나 어구의 병렬적인 배치를 통해 고양되는 격정은 언어적 표현에 종교적 전례의 성격을 부여해 주기도 한다: "그것이 내 꿈의 영상이었다! 그것이 그녀였다. 키가 크고 거의 남성적이라 할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아들과 닮은 모습이었다. 남성다움의 요소를, 엄격함의 요소를, 깊은 정열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으며, 아름답고 범접할 수 없었다. 마신이고 어머니였으며, 운명이고 애인이었다. 그것이 그녀였다!"(129f.) 언어적 표현이 마치 미사처럼 행해짐으로써 정서적인 밀도를 더욱 강하게 지니게 되는데, 이럼으로써 독자는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문학어에 대한 헤세의 탐구는 정신 분석을 통해 획득하게 된 인식과 경험을 효과적이고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세기 전환기의 언어적 위기는 당시의 낡고 경직된 언어가 그와 같은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초기의 소설에서 즐겨 구체적이고 사실주의적인 문체를 구사했던 것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문체를 다듬고 양식화함으로써 헤세는 언어를 상징성이 풍부한 비유로 사용하려고 했으며, 그럼으로써 잃어버린 언어의 밀도와 표현력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정신 분석적 치료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어도 꿈이나 연상으로부터 여러 가지 상징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상징들은 그 자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정확하게 해석할 때 개인에게 있어 자기이해의 좋은 단서가 된다. 심리주의적 서사 기법을 탁월하게 구사함으로써 헤세는 20세기 현대소설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데미안』의 줄거리 구조상의 원리는 이미 그 제목에서부터 암시되고 있다.『데미안. 에밀 징클레어의 젊은 날의 이야기』라는 제목 속에 벌써 소설의 두 주요 인물이 팽팽한 긴장 속에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징클레어의 내면의 발전 과정 또는 자기 발견의 과정인데, 그것은 그의 또 다른 자아, 즉 全人格의 이상을 구현하는 인물인 데미안과의 결합을 목표로 삼고 있다: "데미안은 사실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입니다. 하나의 진리 또는, 당신이 그런 표현을 원한다면, 하나의 교훈의 구현입니다." 징클레어에 대해 데미안이 갖는 의미는 성장기에 막 접어든 소년 징클레어에게 자기 해방의 잠재적 가능성과 필연성을 가르쳐 주는 그의 역할에 있다. 징클레어의 발전과정은 기성 질서에 예속되어 있는 상태에서부터 시작해 '다른 시각'의 소유자인 데미안과의 동일시를 거쳐 독립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형태로 진행된다. 자기 자신의 소망과 환상과 욕구를 실천하는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한 징클레어는 예속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리하여 그는 저항의 단계를 거친 후 멀리서 흠모하는 베아트리체의 모습 속에 스스로 선택한 이상을 설정하며, 기쁜 마음으로 이 이상을 가꾼다. 이에 이어지는 고양된 자기 발견의 시기는 수많은 자기 구상, 즉 자기 자신의 여러 가지 모습들로 특징 지워진다. 그림을 그리거나, 희미한 꿈속의 영상 또는 所望像들을 탐색함으로써 징클레어는 한 얼굴을 구상하는데, 그것은 처음에는 베아트리체를 닮은 듯 보이나 얼마 있지 않아 데미안의 모습을 지닌 것으로 드러나며 결국에는 징클레어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점차 나는 그것이 베아트리체도 아니고 데미안도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라는 기분을 가지게 되었다."(84)

 

직접 독서를 하거나 융 자신 또는 그의 제자인 랑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헤세가 친숙해지게 되었던 융의 정신 분석적 저술들에서도 설명되고 있는 것처럼 꿈이나 꿈과 유사한 상태에서 개인의 정신 속에는 집단 무의식적 인간 정신의 부분들로서 여러 가지 영상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영상들은 실현되지 않은 채 잠재적 에너지로 정신 속에 내재하고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개인에게 全人格의 실현을 통한 자기 발견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해 준다.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징클레어는 여러 차례 그림을 그림으로써 지금까지의 경직된 자기 체험의 한계로부터 벗어나며, 확대된 자아, 즉 다른 생명체나 다른 시대에 대한 자아의 연대를 체험한다: "우리는 우리 인격의 경계선을 언제나 너무 좁게 긋는다! 우리는 언제나 개인적인 것으로 구분했던 것, 차이가 나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만을 우리의 인격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세계의 전체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육체가 물고기의 상태와 그 이전의 훨씬 더 먼 상태에까지 이르는 계통적인 발달의 全 단계를 그 자체 속에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영혼 속에 일찍이 인간의 영혼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105) 징클레어는 전체 세계에의 이러한 참여를 데미안이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데미안은 그의 "이상스럽고도 동물적인 초 시간성" 속에서, "전대미문의 생으로 가득 찬 채 암석적이고 태곳적이고 동물적이고 석기 시대적이고 죽음의 세계 같고 신비스럽게" 나타난다. 그러나 징클레어의 내면의 발전 과정을, 다시 말해 그의 자아의 한계 극복 과정을 가장 상징적으로 잘 보여 주는 것은 이 소설의 주도적 모티브가 되고 있는, '알을 깨고 나오는 매의 형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매의 형상은 소설 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점차 더 큰 의미를 지니며, 마침내는 그야말로 "영혼의 영상"이 된다. 징클레어로 하 여금 양친의 집 대문 위에 있는 새의 형상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인물이 바로 데미안인데(30), 여기에서 벌써 새의 형상을 베껴 그릴 뿐 아니라 그 의미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미안과 에밀 징클레어 사이의 의미심장한 결합이 암시되고 있다. 성경의 카인 이야기를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그를 매혹시킴과 동시에 불안하게 했던 데미안과의 대화를 징클레어가 회상하는 장면도 매의 형상과 연결되고 있는데, 이런 대화와 형상은 자기 해방의 행위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삶의 설계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보여 준다. 나아가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새의 형상을 먹으라고 데미안이 징클레어에게 강요하는 꿈을 징클레어가 꾸는 것은(88) 그것에 대해 스스로 인정할 용기를 아직 갖지 못하고 있는 그의 내적 다양성에 대한 징클레어의 불안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꿈과도 같은 "예감" 속에서 징클레어는 매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리는데, 데미안은 이 그림의 의미를 징클레어에게 이렇게 해석해 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91) 이런 데미안의 해석 속에는 이 형상이 개인 징클레어에게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표현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제반 대립을 지양해야 할 필연성도 분명히 강조되고 있다. 이후 이 매의 형상은 징클레어의 꿈과 상상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 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 - 문간 위에는 그 紋章의 새가 하늘색 바탕 위에 노란 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 집안에서 어머니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 그러나 내가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안으려고 했을 때,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키가 크고 강인했으며, 데미안과, 내가 종이 위에 그린 그 형상과 비슷했으나, 그래도 다른 모습이었다. 강인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여성적이었다."(94) 매의 형상이 한편으로는 징클레어의 어린 시절과, 다른 한편으로는 데미안이나 에바 부인과 연결됨으로써 다층적인 의미 구조가 형성된다. 뒤에 이어지는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를 통해 매의 형상은 징클레어에게 자기해방의 상징이 된다: "[...] 모든 것은 나의 껍질을 벗겨내는 것을, 알 껍질들을 부숴 버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나 하나의 껍질로부터 나는 머리를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자유롭게 들어 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 노란 새는 그 아름답고 당당한 머리를 부서진 세계의 껍질 밖으로 쑥 내밀었다."(106) 징클레어의 에바 부인과의 교제 역시 자기해방의 행위를 통한 정체성의 발견을 상징하는 매의 형상과 관련된다: "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입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것처럼, 새는 어렵게 알을 깨고 나옵니다."(140) 끝으로 "푸른색의 혼란을 박차고 나오는 엄청나게 큰 새"(160)의 영상을 통해서는 전쟁을 통한 낡은 세계의 동요가 암시되는데, 징클레어는 이러한 동요를 낡은 질서의 파괴로서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의 출발점으로 이해한다: "엄청나게 큰 새가 알 밖으로 나오려 싸우고 있었다. 그 알은 세계였다. 세계는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160)

 

징클레어가 꾸는 꿈들과 그가 그리는 그림들을 서로 연결 지워 주는 공통점은 그것들 모두에 징클레어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경지인 대립의 통일이 선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징클레어의 내적 상황은 그것에 대한 숭배가 바로 아브락사스 신에 대한 숭배가 되기도 하는 그의 "사랑의 꿈의 영상"(95)을 통해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다: "나는 정말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만을 살려고 노력했다."(95f.) 바로 이 사랑의 꿈의 형상을 찾아 나서는 길에서 징클레어는 대립의 통일을 경험하며, 또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징클레어의 영혼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 역시 매의 형상과 연관되어 있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데미안이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새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고 해석을 해 준 후, 징클레어는 이러한 해석의 보다 자세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는 한편, 자기 자신의 내적 경험을 확대하려고 노력한다. 피스토리우스와의 교제를 통해 징클레어는 자신을 다양한 삶의 과정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을 배우며, 그러한 다양성을 배제하기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격의 발달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피스토리우스는 징클레어가 꿈에서 보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그 영상들을 개체가 전체 세계와 결합되고 그럼으로써 고립된 상태를 극복하는 것을 보여주는, 인류의 보편적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징클레어를 도와준다. 피스토리우스의 설명에 의하면 자아의 한계 초월은 다른 개체들과의 유대를 가능하게 해 줄 뿐 아니라, 먼 과거로의 회귀와 내적 영상들이 암시하는 미래에의 참여도 가능하게 해 준다: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 우리 내부에 있는 사물들과 똑같다. 우리가 우리 내부에 가지고 있는 현실 외에는 어떠한 현실도 없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깥의 형상들을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내부에 있는 그들 자신의 세계에 전혀 발언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112)

소설『데미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상징인 그노시스파의 신 아브락사스 역시 분명히 막스 데미안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 神性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들인 감정과 이성의 조화로운 통일, 신중함 그리고 절제된 체력 등은 그대로 데미안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도처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그노시스 주의의 세계관은 존재의 근본원리로서의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룩한 신의 불꽃이 물질의 세계 속에 속박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그노시스 주의에 있어, 밝은 정신의 세계와 어두운 물질의 세계 모두에 참여하는 인간의 진정한 과제는 모든 대립을 극복하고, 속박되어 있는 그 불꽃을 본래의 모습대로 되찾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악의 구분은 지양되며, 개체의 정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활발하게 실현된다. 에밀 징클레어의 개인화 과정 역시 이런 도식에 따라 진행된다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내적 대립을 인식하고 또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연후에 그 극복의 과정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징클레어가 아브락사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데미안을 통해서이며, 친구 데미안을 닮으려고 노력함으로써 징클레어는 아브락사스에 대한 탐구가 그의 마음속에 불러내었던 한계 초월의 소망을 점차 이룰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징클레어가 그린 매의 형상과 후기 고대에 그려진 아브락사스 신의 형상 사이에도 의미 있는 연관성이 있다. 아브락사스 신을 에워싸고 있는 타원형은 매의 형상에서의 알을 연상시키며, 닭의 머리와 사람의 몸과 뱀의 발을 가진 이 신의 모습은 알을 깨고 나오려 싸우는 매의 모습과 닮은 데가 있다. 이와 같은 연상의 결합을 통해 아브락사스는 바로 내적 자기 창조의 상징이 되는데, 징클레어에게 있어 내적 창조는 자기 발견의 과제이자 목표를 의미한다.

 

헤세는『데미안』에서 이러한 내적 창조의 원리를 성경의 소제목들을 연상시키는 각 章들의 제목이나 징클레어의 고도로 양식화된 언어, 다양한 비유와 상징들을 통해 인간의 개인화 과정 일반을 대변하는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한 개인의 자기 발견 과정을 인간화 일반의 보편적 패러다임으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징클레어가 인류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에게서 자신의 내면을 상징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이리하여 종교적 의미 부여와 심리학적 강조가 하나의 통일적인 해석 속에서 서로 결합된다: "옛날에 신학이었던 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보다 더 심리학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똑같습니다. [...] 성경의 신화들은 인류의 모든 신화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것들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우리 시대에 맞게 해석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하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측면과 심리적인 측면, 두 관점 모두에서 대립을 지양하고 조화로운 경지에 이르게 되는 자아는 자신의 과거와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헤세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화는 언제나 과거와의 결별이며, 脫 한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징클레어는 양친의 권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뿐 아니라, 자기 발견의 과정에서 정신적인 스승 역할을 하는 피스토리우스와도 결별하며, 에바 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어머니에 대한 연결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징클레어의 "내 생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꿈"(123)에서 어머니와 애인은 하나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그는 이 둘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에바 부인 역시 그에게 그러한 극복의 필요성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영속하는 꿈은 없습니다. 모든 꿈은 새로운 꿈에 자리를 내줍니다. 우리는 어떤 꿈도 붙잡아 두려 해서는 안 됩니다."(140) 결국 징클레어는 데미안과의 상징적인 결합 속에서 자기 발견의 목표를 달성한다: "그러나 때때로 열쇠를 발견해, 검은 거울 속에 운명의 형상들이 깃들이어 있는 그곳, 즉 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갈 때, 나는 그저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굽히기만 해도 내 자신의 형상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제 완전히 그를, 내 친구이자 안내자인 그를 닮은 모습이다."(163) 여기서 '거울 속을 들여다 봄'은 한편으로는 자기와의 만남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외부로 투사된 "영혼의 형상"으로서의 데미안이 완전히 징클레어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는 사실은 그가 투사된 "영혼의 영상"을 다시 자신의 영혼 속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징클레어의 자기 발견이, 융 심리학의 용어로 하면, 개인화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단 하나의 인물의 내적 영혼의 발전에 철저하게 서사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헤세의 데미안은 주제적인 면에서나 구조적인 면에서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20세기 초 서구 소설계에서는 세계와 개인사의 서사 가능성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는데,『데미안』역시 그러한 논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데미안』에서 묘사되고 있는 주체의 경계 파괴와 이원론적인 세계체험은 통일된 자아의 붕괴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소설구조는 해체되고 갈등은 전적으로 주인공의 내면세계로 옮겨진다. 전통적인 교양소설에서의 주인공과 주위 세계의 대립은 주인공의 자아 자체의 양극적 긴장 관계로 대체된다. 이에 따라서 두 개의 현실 영역이 동시에 전개되며, 이 두 영역은 서로 뒤섞인다.『데미안』의 경우 징클레어의 외적 생활과 그의 내면의 정신생활이 혼합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소설은 주인공의 내면 생활에 절대적인 비중이 주어지고 있다. 외부 세계의 묘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에밀 징클레어가 소년 시절에서 출발해 에바 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달성하기까지의 傳記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의미의, 정신 내적인 발전의 드라마라는 관점에서 보면, 줄거리를 지배하는 갈등의 핵심은 의식적인 자아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채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는 全人格을 상대로 벌이는 대결이다.

 

이런 상반되는 여러 가지 내적 에너지들은 마치 외부로부터의 영향인 것처럼 주체에게 다가오지만 그것은 피상적으로 그럴 뿐이며, 이 과정에서 외적인 환경은 점점 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사건의 공간적인 무대는 점점 더 그 구체성을 상실하며, 그것은 내적 체험의 장소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사건의 시간적인 배경 또한 극히 모호하다.『데미안』은 징클레어의 생애의 약 10여 년의 기간을 다룬다. 징클레어는 열 살 때 크로머를 만나며, 열 여섯 살 때 주점들을 돌아다니고, 열 여덟 살 때 피스토리우스와 교제하며, 대략 스무 살 때 전쟁에 참여한다. 이 소설에는 유일한 역사적 사건으로 일차 세계대전이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성찰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기보다는 주인공 징클레어의 내적 해방의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을 뿐이다. "개인화를 위한, 인격의 탄생을 위한 투쟁"을 전쟁이라는 응용 가능한 삶의 모델에 바탕해서 제시하려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작품의 서두에 나오는 "나는 정말이지 내 자신의 내부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만을 살려고 노력했다"는 모토 속에도 이 소설의 서사 원리가 함축되어 있다. "내부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즉 내적 충동이 바로 서사의 발단이 되며, 자아와 非我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그리고 크로머,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등 부수 인물들은 주인공 징클레어의 "영혼의 영상"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정신 내적인 드라마에 있어서는 경계의 초월이 구조상의 원리가 된다: "어느 것도 밖에 있지 않으며, 어느 것도 안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밖에 있는 것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에서는 이처럼 서사의 관심이 철저하게 내면 세계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인식 역시 다분히 심리주의적이며 초역사적이고 탈 이데올로기적이다. 여기에서는 우선 파괴적 행위인 전쟁이 인류의 '운명'으로서, 그리고 해방적 행위의 상징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 모든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이었던가, 그리고 근본에 있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었던가! 이제 전쟁이 다가올 것이었다. 우리가 종종 이야기했던 것이 이제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었다."(158) 전쟁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자연적인 성장과 소멸의 원리로까지 확대된다: "죽음이 없이는 어떤 새로운 것도 생기지 않는다."(153) 불사조 피닉스처럼 파멸의 상태에서 부활하는 매의 상징을 통해 몰락과 재생이 자연적 과정으로 묘사된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91) 바로 이 삶과 죽음의 밀접한 결합이 이 소설 전체의 양극적 구조를 결정한다. 징클레어는 자신이 맞이하는 모든 발전의 단계를 "죽음과 재탄생"(50)으로 체험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죽음에 대한 예감은 삶에 대한 희망과 밀접하게 결합하고 있다. 우리는 징클레어의 이야기를 죽어 가는 한 군인의 자서전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내면의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징클레어의 모습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전쟁의 파괴적인 열기 속에서 역설적으로 또한 자아의 자기 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장 거친 감정도 포함해서 근원적인 감정은 적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비린내 나는 그러한 감정의 분출은 내면, 즉 새로 태어날 수 있기 위해서 미쳐 날뛰고 죽이고 파괴하고 죽으려고 했던 분열된 영혼의 발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160) 초개인적인 역사적 사건도 개인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이해된다: "우리가 어느 파도에 봉사할 것인지, 어느 극으로부터 지배를 받을 것인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 속에 놓여 있지 않다."(145) 그리고 전쟁의 정치적인 배경은 파괴의 공포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산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은 사실 근본적인 면에서 나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큰 굴레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157)

 

가명을 사용하면서까지 전쟁에 반대하는 時評과 논문들을 발표하고 물심양면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평화주의 운동을 전개했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이런 비인간주의적인 전쟁 열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매우 의아스런 감정을 자아낸다. 이 소설은 戰場에서의 죽음을 詩化하고, 파괴를 희생의 죽음으로 미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매의 형상이 갖는 의미를 개인 정신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으로부터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확대함으로써 징클레어와 데미안은 자신들의 전쟁 열기를 합리화한다. 전쟁에 대한 헤세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입장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헤르만 헤세는 일생 동안 정치적 당파성을 초월해 인문주의를 옹호했다: "나 역시 내 생애의 한때, 조용하고 정관적인 나의 전 철학을 내던지고, 피가 흐르도록 까지 일상의 문제에 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랬던 것은 바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였는데, 거의 십 년 동안 나에게는 전쟁에 대한 항의와, 피를 바라는 인간의 우매함에 대한 항의와, 정신적인 사람들, 특히 전쟁을 설교하는 사람들에 대한 항의가 의무요 쓰라린 필연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치적인 논문들을 통해 지식인들의 도덕적 책임을 거듭 상기시켰으나, 그의 노력은 언제나 무엇보다도 정신의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나의 봉사와 천직은 인간성의 봉사이고 천직입니다. 그러나 인간성과 정치는 근본적으로 서로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둘 다 필요하긴 합니다만, 둘 모두에 동시에 봉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정치는 당파를 요구하며, 인간성은 당파를 금합니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이 이러하기 때문에 헤세는 전쟁의 동요와 소란을 일차적으로 사회의 도덕적, 정신적 개혁의 계기로 보며, 개인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한다.『데미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열기는 몰락기로 접어든 침체된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헤세가 당시의 많은 지성인들과 함께 했던 불만에서 비롯한다: "사실 이 환상적인 전쟁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은 [...] 그것이 전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무슨 결단을 내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분위기의 변화를 동반하는 격변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분위기는 좀 혼탁해졌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는 무언가 좋은 작용을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비싼, 어느 면에서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는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다른 한편 전쟁에 대한 이런 열기는 '주체성 없는 인간들'에 대한 헤세의 거부감과, 니체의 영향을 받아 인격을 고도로 미화하는 그의 개인주의적 인간관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주체성 없는 인간들의 평범한 생활 또한 나에게는 전쟁보다 더 나을 게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 이전보다는 더 합리적이게, 더 아름답게, 더 잘 살리라는 바람을 가지고 전투에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결국, 헤세의 참여적 인도주의와, 소설『데미안』을 위시한 그의 여러 言述에서 표명되고 있는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사이에서 나타나는 모순은 그의 초역사적이고 유심론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인데, 그는 문화 비관주의의 입장에서 자신의 시대에 속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상과 인격의 교단"(65)에 속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바로 그러한 교단의 상징적인 인물로 데미안을 그린 것이었다.

 

 

 

1919년 6월 헤세의『데미안』이 발표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이 소설의 문학적 가치와 사회적 영향력을 아울러 인식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던 토마스 만은 이 작품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너무도 컸던 탓에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948년『데미안』의 두 번째 영어 번역판이 나왔을 때 그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일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징클레어라고 하는 베일에 싸인 어떤 작가가 쓴『데미안』이 불러낸 전류와도 같은 영향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은 무서울 만큼 정확하게 시대의 신경을 포착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는 사람이 이미 42 세의 어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한가운데에서 자신들의 깊은 생을 예고해 주는 사람이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 전체를 감사와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헤세의 소설『데미안』을 이처럼 열광적으로 환영했던 젊은이들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일차 세계대전과 1918년의 독일 혁명을 경험했으나 기대했던 침체된 사회로부터의 탈출이나 자신들의 생활의 개혁은 고사하고 오로지 사회의 불안과 파괴만을 목격하게 되었던 바로 그 젊은이들이었다: "결국 이 젊은이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 것인지를 아주 똑똑히 알게 되었다. 몰락기에 접어든 낡은 사회 구조의 깊은 내적 허위와, 긍정으로 말하고 부정으로 행동하며 자신에 대해 용기를 갖지 못하는 그런 허위적인 태도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의 긍정과 부정을 대담하고도 성스러운 궁극적인 통일로 구원하고, 그러한 통일로부터 비로소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그 자체 조화를 이루는 견고하고 완전한 전인격이 탄생하는 것에 대해 꿈을 꾸고 있었다. [...] 그들, 절대적인 요구를 하는 이 젊은이들 역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불모의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거대한 삶이 자신들의 곁을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확신에 찬 수영자의 도약으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 그 도약의 힘에 이끌려갈 수 있는 순간을 발견하지 못하는 죽음의 지점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내적 고뇌에 빠져 있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에『데미안』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은 읽었으며, 눈앞을 막고 있던 붕대가 걷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읽고 발견했다 - 자기 자신을."

일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패전국 독일에는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방향 모색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또 그러한 시대 분위기가『데미안』의 수용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데미안』은 그 영향과 수용이 시대적 상황에만 의존하는 작품이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가치를 인정받는 모든 걸작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역사적, 사회적 맥락과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더 이상 그것에만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 발표된 때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이 소설이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데, 폴커 미헬스의 통계에 의하면 1973년부터 1993년 사이에『데미안』은 외국어 번역본을 제외하고도 백만 부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미 1920년에 시인 클라분트는『데미안』에 대한 그의 서평에서 "『데미안』처럼 조용한 책이 이렇게 크게 영향을 끼친 것"에 대한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도대체 이 소설의 어떤 점이 당시 패전한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이나 크게 움직였던 것일까? 이 소설이 오늘날에 와서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의 가치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전쟁의 시기에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을 것을 우리는 이미 이 소설의 序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사람들은 진실로 사는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과거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또한 사람들은 그 하나 하나가 귀중하고도 단 한 번밖에 없는 자연의 시도인 인간들을 무더기로 쏘아 죽이고 있다."(8) 그러나 당시 현실과의 관련성은 당분간 이 이상 더 암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전쟁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적으로 집단적인 재난의 반복을 장차 어떤 방법으로 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헤세 특유의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뒤에서, 정부 형태나 정치의 방법에서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인격의 형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정신과 인물을 다시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헤세는 정신 분석적인 방법으로 일종의 정신 탐구를 함으로써 바로 이 "인격의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를『데미안』에서 탁월하게 제시해 준 것이었다.

 

1919년 당시 젊은이들이 소설 『데미안』에서 바로 자기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은 전쟁의 경험과 정신 분석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던 작가 헤세가 변모한 자신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새롭게 표현한다고 하는 의도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을 썼던 사람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헤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썼던 그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다가갔던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데미안』이 새로운 경험과 인식의 결과적 산물로서 자신의 생애와 작품에 있어 주목할 만한 중요한 전기가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깊이 느끼고 있었던 헤세는 그의 주치의이자 친구였던 랑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새 작품 하나 하나를 각각 새로운 가명으로 내놓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정말이지 나는 헤세가 아닙니다. 나는 징클레어였고, 클링조어였으며, 클라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많은 것이 될 것입니다."

 

 

 

소설『데미안 - 어느 젊은 시절의 이야기. 에밀 징클레어 작』이 1919년 2월부터 4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피셔 출판사가 발행하는 잡지「디 노이에 룬트샤우」를 통해 예비로 발표되었을 때, 토마스 만은 그것으로부터 받은 인상과 감동을 자무엘 피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에밀 징클레어가 누굽니까? 그는 몇 살이나 되었습니까? 룬트샤우에 발표된 그의『데미안』으로부터 나는 근래 발표된 어떤 다른 작품에서보다도 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현명하고 진지하고 중요한 작품입니다. [...] 이 이야기에서 예술적인 면에서의 어떤 모순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이름이 또한 화자의 이름일 정도로 스스로를 철저하게 삶의 이야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 어쩌면 바로 이 이야기의 약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정도로 이 이야기는 구조물이며 정신적인 문학입니다." 약간의 유보적인 태도가, 그 특유의 이로니쉬한 입장이 가미되어 있기는 하지만, 만은 소설『데미안』의 예술적 "구조물"로서의 본질적 성격을 진작부터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었다. 헤세 자신도 소설의 序章에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주어의 문장들을 사용함으로써 뒤에 이어지는 징클레어의 이야기가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신적인 문학"임을 암시했다. 뿐만 아니라 헤세는 한 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미안은 사실 원래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입니다. 하나의 진리 또는, 당신이 그런 표현을 원한다면, 하나의 교훈의 구현입니다" 라고 말함으로써『데미안』의 기본적인 성격을 스스로 규정했으며, 또 다른 편지에서는 이 소설과 관련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데미안』에 나오는 인물들은 나의 다른 책들에 나오는 인물들보다 더 '현실적'이지도, 덜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나는 한번도 삶에 의거해서 인물들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물론 그렇게도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아주 멋진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 문학은 곁코 현실의 模寫가 아닙니다. 우연적인 것을 전형적인 것과 보편 타당한 것으로 압축하고 통일하고 요약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헤세의 말들을 종합해 볼 때, 결국『데미안』은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이다.

 

『데미안』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은 '알 껍질을 깨고 나와 아브락사스 神에게로 날아가는 새'이다. 비슷한 길이의 8 개 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미안』에서 거의 한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제 5 장의 초에 위치하는 이 상징은 주제와 구조의 면에서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짜여져 있다. 행위로서의 알 껍질 깨기, 이 행위의 주체로서의 새 그리고 행위의 지향점으로서의 아브락사스가 바로 그 세 부분인데, 이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무래도 행위 그 자체로서의 알 껍질 깨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주체는 개인일 수도 있고 세대일 수도 있고 사회 전체일 수도 있어 그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매우 일반적이고, 목표로서의 아브락사스는 어느 면에서 행위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 있는 반면에, 행위 그 자체는 파괴력과 구체성, 적극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알 껍질을 깨기'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세계와 인간 일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뜻하며, 기존의 규범과 가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의미하고, 기성의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편협성에 대한 예리한 지적을 의미하며,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는 자아의 다른 면들을 새롭게 인식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과거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인 비판을 나타내며, 인간과 사물에 대한 '달리 보기'를 의미한다. 『데미안』에서 막스 데미안이 시도하고 있는, 카인과 '강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카인에 관한 이 이야기를 우리는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사실들은 분명히 아주 진실이고 옳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사실들을 선생들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면 그것들은 보다 나은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 카인과 그의 이마 위에 있는 표지에 대해 정말 만족할 수 없다. [...] 이 이야기가 시작하게 되는 최초의 실마리는 바로 그 표지였다. [...] 그러나 그것은 이마 위에 실제로 있는 표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거의 감지하기 어려운 어떤 무서운 것, 시선 속에 담겨 있는 보다 많은 정신과 용기였다. [...] 용기와 개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아주 무서워한다. [...] 그리하여 사람들은 복수하기 위해서 이들에게 하나의 별명과 꾸며낸 이야기를 덮어씌운 것이었다."(31-32) - "그러나 나는, 우리가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구분해 낸 공식적인 반이 아니라 전체 세계를 존중하고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신에게 예배를 올릴 뿐 아니라 악마에게도 예배를 올려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러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던가 또는 우리는 그 자체 속에 악마도 포함하는 신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62))은 기성의 종교, 특히 크리스트교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 예이며, 징클레어와 피스토리우스가 나누는 대화의 핵심적 내용도 결국은 '달리 보기'로 요약될 수 있다. ("[피스토리우스와의] 모든 [대화]는 나의 껍질을 벗겨내고 알을 깨 버리는 것을 도와 주었다"(106)). 작품의 마지막에서 묘사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데미안과 징클레어의 긍정적인 입장 ("가장 거친 감정도 포함해서 근원적인 감정은 적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비린내 나는 그러한 감정의 분출은 내면, 즉 새로 태어날 수 있기 위해서 미쳐 날뛰고 죽이고 파괴하고 죽으려고 했던 분열된 영혼의 발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거대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 싸우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다. 그리고 세계는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160)) 역시 시대적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에 대한 하나의 예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데미안』은 사고와 행동의 혁명을 보여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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