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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요카페 "시의 체험 -그 텍스트" -임희자 시인

작성자엄미선|작성시간07.10.24|조회수349 목록 댓글 0

    2007년 9월 수요카페 모임


   일시 : 2007년 9월 19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장소 : 시와산문사무실
   참가 : 시와산문문학회회원

   주제 : 시의 체험   - 그 텍스트text

   토론 : 임희자 진행
   교제 : 팜플렛, 작품, 기타

 

시의 체험
- 그 텍스트text
                    
임희자 (시인)


시詩쓰기를 처음 시작했던 십여 년 전, 그 무렵에 시란 그저 단순히 감성感性의 표출이라고만 이해했었다. 또 그 이전에는 시를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힘들고 외로웠을 때, 그 것을 원고지에 옮겨 놓으면 되는 것이지쯤으로 여겼다. 이런 행보는 나를 여러 해 동안 들뜨게 했었다. 뭔가 그저 쓰고 나면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 듯 후련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립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감성을 그대로 활자화시켰다. 그리고 난 후에 시를 좀 쓴다고 잠시나마 스스로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다지 오래가지 않고 시들해 졌었다. 가장 큰 그 이유는 밤낮 비슷한 시를 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하고 나면 내 속에서 먼저 우쭐거림도 없지 않았나 싶었지만 그 기쁜 시간도 오래가지 않아 약효가 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히 시를■■그립다,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쓰곤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부족한 듯했다. 나는 자신이 써 놓은 시가 나의 언어言語인데도 지루하고 싫증났다. 이 알 수 없는 미심쩍음과 지루한 싫증 때문에, 시와 자아自我의 안팎을 다시 되돌아다보며 스스로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이 미심쩍음과 지루한 싫증의 원인은 알고 보니 늘 같은 언어를 되풀이해 쓰는 무의식적 습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답답하고 답답했다.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일 뿐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방법을 몰랐었다. 차츰 스스로 한계에 부딪혀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런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시의 아이덴티티identity·正體性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다가왔다. 포기하기 직전에 기회를 얻어 절묘한 텍스트text 를 읽고 깨우치면서 시의 깊이와 그 넓이를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에서,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합해져야 하나의 독자적인 인간이 이루어지듯이 시도 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먼저 준비되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시에 대한 기법技法의 터득이다. 시의 기법은 가슴이나 머리가 아니라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또다시 마음을 먹고 용기를 얻어서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를 만큼 밤을 새웠다.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면,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기는 매 일반이지만 그 힘들었던 수고에 스스로를 격려해 본다. 시를 쓰면서 적잖은 상처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시에 대한 열정과 건강한 정신을 놓치지 않음에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렇게 스스로 새롭게 보며 감성에서 지성知性으로, 지성에서 사유思惟로, 이제는 사유에서 치유治癒로 시선의 각도가 바뀌어가고 있는 중이다. 

각설하고, 결과적으로 시에 대한 비유比喩란 언어의 전이현상轉移現像이다. 또한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의미를 가진 그 자체에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이나 대상이 의미에서 유추類推하여 표현하는 형식이었다. 다시 말해 언어는 사물이나 대상에 부착되어 있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으므로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와 언어가 지시하는 사물이나 대상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것은 언어의 추상성抽象性과 언어의 의미에 대한 지평地平을 여는 무한한 가능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의 속성이 시에서 비유의 폭을 넓혀갈 때 그 가동성可動性은 무한한 상상력을 이끌고 간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시를 보는 눈이 커갈 무렵,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시를 보면서, 나는 확 달아오르는 시차詩差를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시에■■그립다■■를■■그립다■■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립지 않다라고 써야 그리운 것이라는 역逆의 논리論理를 배우면서 시란 대체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더 반문反問의 반문은 거듭되곤 했었다. 그러한 질문質問과 답答의 반복적인 기법의 훈련을 통해 시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확립해가고 있는 가운데 있다.

누구든 자신의 삶을 담아낸 시가 다른 사람의 텍스트text가 되어 지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던가? 삶이 곧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되어 사유의 통로를 자유롭게 소통疏通할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그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의 문을 두드린다. 내 입에서 떨어져 나오는 언어의 씨앗들이 굽은 허리를 펴고, 내 안에서부터 소통하며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그런 시를 만나고 싶다. 마치 햇빛이 장독 속을 비상구非常口처럼 소통하며 넘나들듯, 생명력 있는 그런 따스함을 지닌 시를 만나고 싶다.

** 늘 내 머리맡에서 지침서로 나의 시를 이끌어주는 텍스트의 시를 짚어본다.


  이성부 ■■우리들의 양식■■
   최금진 ■■악의 꽃■■
   류  숙 ■■붉은 수수■■
   김기택 ■■바늘구멍 속의 폭풍■■
           "태아의 잠"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입■■
   원희석 ■■물이 옷 벗는 소리■■
          ■■마른 수수깡으로 서서■■
   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정일근   "유배지에서 보내온 정약용의 편지"
   곽재구   "사평역에서"
   최영철   "연장론"
   최승권   "겨울수화"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
   김명인   "동두천"
   조  은   "아이 하나가 자라고 있다"
   이하석  ■■투명한 속■■
   이정록  ■■달맞이 꽃■■
          "햇살의 경문"
   정유화  ■■마루■■
   이유경 ■■ 구파발■■
 


 

Ⅰ.

바늘구멍 속의 폭풍
김기택


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서 그의 육체는 낡고 닳아 있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과 폐에서 가르랑가르랑 소리가 난다. 찰진 분비물과 오물이 통로를 막아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숨구멍으로 그는 결사적으로 숨을 쉰다. 너무 열심히 숨을 쉬느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숨이 차면 자주 입이 벌어진다. 벌어진 입으로 침이 질질 흘러나오지만 너무 심각하게 숨을 쉬느라 그것을 닭을 겨를이 없다.

밤이 되면 숨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목구멍에서 그르렁거리는 낮은 소리는 때로 갑자기 강해져서 거목을 뽑고 지붕을 날려버릴 것처럼 용틀임을 한다. 휘몰아치는 바람의 힘에 흔들려 그의 몸이 세차게 흔들리다가 이윽고 가래와 침을 뚫고 기침이 뿜어져 나온다. 기침이 나올 때마다 그는 목을 붙잡고 컹컹 짖으며 방바닥에서 뒹군다. 몸 속에서 한바탕 기운을 쓴 바람은 차츰 조용해져서 다시 허파에 얌전히 들어앉아 가르랑거린다.

필사적으로 바람을 견디다가 찢어진 비닐 조각처럼, 떨어져 덜컹거리는 문짝처럼, 망가지고 허술해진, 바람을 더 견디기엔 불안한 몸뚱어리를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눕힌다. 조금이라도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불규칙해지면 몸 속에서 쉬고 있는 폭풍이 꿈틀거린다. 숨이 바늘구멍을 무사하게 통과하게 하느라 그는 아슬아슬 호오호오 숨을 고른다. 불손했고 반항적이었던 생각들과 뜨겁고 거침없었던 감정들로 폭풍에 맞서온 몸은 폭풍을 막기에는 이젠 너무 가볍고 가냘프다. 고요한 마음, 꿈 없고 생각 없는 잠이 되려고 그는 더 웅크린다.

 

 

 

 


** 이 시는 육체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다. 마치 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서 낡고 닳아버린 육체를 위태로운 폭풍의 존재로 환기시키며, 잠자는 그 육체에서 나오는 소리에 대한 비유를 불안과 공포의 상징으로 우리 몸 속에 내재된■■가득 참  / 텅 빔■■의 소리를 주제로 한 시에서 살아있음은 곧 죽음을 품고 있는 메시지를 듣는다.■■숨을 고르며 폭풍의 꿈틀거림■■그것을 다독거리는 어떤 죽음의 계기 또는 징후를 섬세함으로 들여다보는 그 시인의 눈을 살피며 나는 그의 눈길을 따라다녔다.

Ⅱ.


달맞이꽃
이정록


마루에 앉아 알 껍질을 벗긴다
노른자가 한가운데에 있질 않다
삶기 전까지 끊임없이 꿈틀거린 까닭이다

물이 끓어오르자
껍질 가까이로 목숨을 밀어붙인
보이지 않는 발가락과 날갯죽지
그 힘줄과 핏빛 눈망울과 미주알을 생각한다
 
그 옛날 어미의 뱃속
또는 훨씬 이전의 꿈틀거림이 파도처럼 이어지며,
병아리는 알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참을 헛다리짚는 것이다

축문과 지방을 쓰고
마루에 앉아서 계란 껍질을 벗기다가
중심에서 멀리 나온 보름달을 만난다

발을 디디려
하얀 발톱을 들이미는 달빛
그 비척거리는 헛발을
달맞이꽃이 받쳐들자, 식은땀인 듯
밤안개가 깔린다

 

**이 시의 특징을 살펴본다. 사소한 것의 소재로 생명력을 찾아내는 애정의 섬세함이 나타나는 시인의 따뜻함을 배웠다. 사물의 묘사와 동적인 움직임의 상상력을 놓치지 않고 바라봄이다. ■■살기 전까지의 꿈틀거림■■■■물의 끓어오르자 껍질 가까이로 목숨을 밀어붙인 보이지 않는 발가락 날갯죽지■■■■그 힘줄과 핏빛 눈망울■■■■중심에서 멀리 나오는 보름달이 발을 디디려 하얀 발톱을 들이미는 달빛■■■■그 비척거리는 헛발■■계란 노른자에서 병아리로, 병아리에서 보름달로 이어지는 생명의 꿈틀거림. 이 얼마나 몸 떨리는 입체적인 아름다움이던가?**
* 위와 같은 좋은 시들을 통해 배워온 나의 졸작, 시 6편을 다시 새겨본다.


시詩
 - 소통
임희자

           
산 벚나무가 빗장을 풀고 산문을 열어제친다 얻을 것 다 얻고도 하나쯤 놓은 듯 싶은 이제 막 옮긴 발걸음으로 꽃물자국 찍는다 등뒤로 불어오는 바람결이 간격을 좁히며 직각으로 꺾긴 햇살과 한데 엉킨다 속살도 가슴속에 덧날 때가 되었는가 숨가쁘게 경계선을 만든다 한때 저조차 몰랐던 감당 못할 바람 앞에 환한 불씨를 동여매고 화장한다 몸살나게 그리운 살내음이다 겨울 동안 퉁퉁 부어오른 젖무덤 눈길 닿는 자리마다 욱신거리고 숨차다 몸은 손만 스쳐도 뜨겁게 온몸을 떤다 지상에 탑을 쌓듯 지도를 그려가며 산 벚나무가 지금 소통한다

 


소두머니강
임희자


잎보다 먼저 피었다 시든 사월의 참꽃들이 마을 저녁으로 핏물 되어 돌아온다. 지루하게 나를 감싸던 꿈 깨고 제 몸 삭히는 놀빛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첩첩산중 가막골 산마루 에 머리칼 풀고 솟구치는 저녁연기 낮은 산으로 올라가고, 아이들을 다그치듯 반쪽 바람은 고샅길로 빠져나간다. 참꽃들은 이제 다 숨을 거두었고, 비상하는 새들의 날개처럼 햇살은 몸살을 하며 봄 강속으로 사라져갔다. 수심은 낮은 강을 따라 뱀처럼 길게 누운 둑길을 천천히 걸었다. 빛살의 흔적이 아직 살아 남아 길 끝이 흔들린다. 함바위에 남기고 간 물새의 슬픈 발톱 살아온 생을 다 털고, 새로 시작할 수 없는 이 봄날저녁을 강은 모르고 있다.

  


부석사浮石寺를 오르며
 임희자


그곳의 밤은 사내처럼 옷을 벗는다
입에 입들이 상床 위를 오르내리고
별들은 눈 덮인 소백의 뒤축을 깎아 내린다

어떤 이는 밤 내내 태백산太白山을 오르고
또 어떤 이는 자정이 넘어 죽령竹嶺을 떠난다
늪의 저음은 그렇게 문살을 들락거린다
꽃 피듯 돋아난 별들의 기침 소리
닫힌 창을 넘는다

취나물 고사리 더덕 냉이국으로
수잠의 아침은 깨어나고
그곳은 어딘가 오르게 하는 또 다른
길을 일으켜 세운다
산제비꽃 자리에 묻고
수 십 년 껍질 터진 채
몸에 붙은 비늘을 벗겨냈을 적송나무
피끝마을 그 나무 속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못한다

햇살이 직박구리 깃털에 부딪혀
탱자나무 가시에 걸려 있다
낮달에 밟혀 더 다다르지 못한 압각수鴨脚樹
내통하지 못한 무량수전無量壽殿을 뜬눈으로 바라본다

바람이 불고 있다
임희자


한 때의 슬픈 얼굴들이
어둡고 텅 빈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몸체가 가벼운 울음으로 흔들린다
하늘엔 온통 내가 바라보던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남폿불 밑에서 어머니는 심지를 조렸다
언제나 켜켜이 쌓아둔 이불에
등을 기댄 아버지 차 오르는 숨을 고른다
가마솥에서 뿜어내는 김
부엌을 빠져나가 질린 얼굴로
무섭게 마을의 새벽안개를 감싼다
나는 약국을 향해 신작로를 뛰었다
아버지의 잦은 짜증은 연기처럼
마당 구석구석을 채웠다
잰걸음에 미운 오리새끼들 꽁지 다퉈 달아났다
예고 없이 찾아든 기압골
언제나 우릴 먹물 속으로 몰아 넣었다
마른 수수깡이 스스로 꺾이던 날
나는 짐을 쌌다
수건으로 얼굴 가린 채 아버지가 우셨다
그 해 수탉이 알을 낳더니
고구마꽃이 온통 텃밭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십여 년 키워온 개가 지붕 위에서
하늘을 향해 울더니 장독의 간장이 들끓었다
미친 거지가 뒷간에 꺼치를 깔고 누웠다
한낮이면 대청마루바닥에선 목탁소리가 났다
발 달린 구렁이가 며칠째 달걀을 물어 삼키더니
끝내 작은아버지의 작대기에 죽었다
죽은 자들이 삼삼오오 팔짱을 끼고 춤을 추다
첫 닭이 울면 이내 사라졌다
간밤 꿈에 화장실에서 횃불이 뜨고
하늘에서 헬리콥터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 날 밤 아버지는 울밑
감나무에서 쓰러졌다

마침내 세상이 잠을 잤다

빛의 고리
임희자


아직 정전 속이다
밤새 걸어나온 아침의 계단이 무거운
갈증을 해갈하려든다
사나운 짐승들 눈의 촉수를 낮추고
동서남북 사방의 볼륨을 높이려든다
어둠의 돌 뿌리마다 빛의 고리 쉬 걸리지 않고
출구마다 소란한 음계들뿐이다
머리가 아프고 마디마디 눈금이 저리다
검은 다래의 숙성처럼 몸의 나사들 반기를 든다
나를 통해 지나가는 아침의 각도
머리 위에서 출렁거린다
단서처럼 나를 압도하는 알람소리
수틀에 압정을 꽂듯 귀속에 깊이 들어와 박힌다
카페인을 수반한 진통제 한 알
간밤의 두통을 분해하지 못하고 수면을 외면한다
한치도 빈틈을 주지 않는 잠
거울 속에서 붉은 해를 돌리며
팽팽하게 관자놀이 잡아당긴다
풀이 몸을 눕히듯 나를 둘러싼 새벽공기들
잠시 빈혈을 일으킨다
스스로의 무게에 가라앉는 일인가보다
오월의 은유가 지나고 유월의 넝쿨장미가
잠의 축을 흔들며 이편과 저편을 나누고 있다
한치 오차도 없이 지구는 그렇게
소리들로 깨어난 아침계단을 밟고 지나간다
 


감입곡류嵌入曲流
임희자


누가 있어 사라져 가는 뱀의 꼬리를 보았는가
피맺힌 가슴속 아린 자갈들의 울음소리
천길 뛰어내려가는 노래를 들었는가
빠른 나날 속으로 멀어져 가는 소실점
빠르게 또는 천천히 몸을 비트는 감입사행嵌入蛇行
거역할 수 없는 몸짓으로 아득히 달려갔다
물의 춤사위에 산이 진동하고
살아 숨쉬는 모든 생은 갈채협곡을 이루며
하늘과 땅의 축을 들어 올린다
어쩌자고 척추를 끌고 산으로 가자는 말인가
구비 구비 꿈 같은 세상을 베어낸 물의 아픔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란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것뿐이다.

물이 옷을 벗는다
정교하게 채워진 단추가 풀리고
틀어 올린 머리가 풀려난다
훨훨 벗어 던진 옷자락 물살에 휘말린다
잡힌 돌 하나 던져보지 못하고 온몸은 멍투성이다
쏟아지는 돌처럼 무더기비 내려도
새떼는 젖은 깃을 툭툭 털고 날아간다
강은 아직 멈추는 법을 모른다
끝없이 낮아질 수 없어 목줄을 늘어뜨릴 뿐이다
하수下水를 따라 옷을 갈아입는 물고기의 등뼈
구부러진 채 물살과 함께 되돌아 올 수 없는 하류로 내려간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우리의 날
안개는 또다시 새벽을 부유하다 사라질 것이고
지하강으로 잠적했던 물기둥
또다시 두근거리는 그리움으로 돌아와
스냅사진처럼 명확히 남을 것이다
몸 안에 언제나 수캉 암캉이 넘쳐흐르듯
세상을 해갈하는 물길은 내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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