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수필/Essay (Aufannuha Ihsani)

작성자김영수|작성시간23.09.28|조회수35 목록 댓글 0

 

서양 장기(將棋)처럼

 

 

                                                                                                         아우판누하 이흐사니(Aufannuha Ihsani)

 

 

2015년 3월, 논문 하나를 끝내고 나는 새로운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한가한 시간을 즐겁게 그러나 바쁘게 보낼 수 있는 그 무언가 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 장기를 집중적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  

 

왜 서양 장기를 하려고 했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이 서양 장기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조꼬(Joko)씨 옆 집에 살고 있는 뿌르(Pur)씨와 무승부로 끝난 서양 장기 진행과정과 결과를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결과를 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말씀드렸었다. 아버지는 즉시 나와 서양 장기 대결을 펼쳤고 나는 수십 점 차이로 시합에서 졌다. 나는 크게 실망했고 그때부터 서양 장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논문이라는 큰 숙제가 끝난 다음 여가 선용을 위한 방법으로 다시 서양 장기를 배우고자 했던 이유를 든다면 첫째, 승패를 다투고 싶은 열망과 둘째, 내 어렸을 적 추억을 되짚어 보고 싶었고 세째로는 아버지를 한번 이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양 장기 한 세트를 구입했다. 그때부터 여러 사람과 대결을 했는데 이길 때도 있었고 질 때도 있었다. 나는 서양 장기의 이론을 차분히 배우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인 서양 장기 대회를 살펴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비 피셔(Bobby Fischer)와 호세 라울 카파블랑카(Jose Raul Capablanca)의 자서전을 읽었다. 물론 세계적인 선수들과 같은 실력이 결코 갖추어 질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내 나이가 새로운 이론을 정확히 받아 드리기에는 이미 늦었고, 세계적인 서양 장기 선수가 되기에는 IQ가 뒷받침되질 못했다. 단지 이 놀이를 즐기면서 어디에 패를 놓아야 묘수인지 아는 것 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충분하게 훈련이 되었다고 자신한 후, 나는 아버지와 몇 판의 서양 장기 대결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패배, 패배 또 패배였다. 아버지 몸은 예전만 못했다. 2, 3년 전과 비교하여 많이 쇠약해 있었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져 아버지 가슴은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였다. 다리는 많이 부어 있었고 피곤할 경우 눈의 흰자위가 노란색으로 변했다. 아버지는 간 경변을 앓고 계셨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서양 장기 선수들의 몸 상태가 그들의 승과 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중요하지 않은 이러 저런 일에서 나름으로 생활의 지혜와 의미를 찾는 평범한 분이셨다. 그렇게 몇 차례 패배를 경험한 후, 아버지는 ”문제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마치 서양 장기 같아 네가 앞으로 발을 내딛기 전에 너의 상대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를 우선 생각해야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시합을 통해 나는 아버지께서 철저하게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최소한 다섯 수 앞을 내다보았고 그 계산은 빠르고 치밀했다. 그때 내가 몰랐던 것은 아버지는 삶을 진정 이해하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  

 

가장 즐거웠던 때는 그 해 6월말에 찾아 온 라마단(역자 주 : 이슬람교도들 정월 초하루 명절) 기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라마단 기간 중 저녁 기도 시간인 따라위(Tarawih)가 끝나고 아버지와 나는 서양 장기를 시작했다. 나는 백색 패를 들었고 아버지는 흑색 패를 잡았다. 시합하기 전에 나는 한 장의 종이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 시합 내용을 기록했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면 그때마다 시합에 대해 토론하고 평가를 받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백색 패를 잡았을 때는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좋고 흑색 패를 잡았을 경우 그의 자리를 안정시키면서 백색 패의 허점을 찾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그 진행 과정을 기록한다. 영어를 사용해서 표기하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영어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K는 (왕)이고 Q는 (여왕 또는 장관), B는 (주교), R은 (성) 그리고N은 (기사)를 의미한다.    

 

1.d4 Nf6 2.c4 c6 3.Nc3 d5 4.c5 Bf5, 선임 장관의 시작은 실패했다. 올바른 수는 그 변형으로 세미 슬라비아를 보호해야만 했다. 이렇게 시작될 경우 판 중간에 배치된 패의 위치가 패의 움직임 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    

 

5.f3 h6 6.Bf4 Nbd7 7.e3 Nh5 8.Bd3 Nxf4 9.exf4 e6 10.Bxf5 exf5 11.Nge2 Qh4+. 이러한 패의 움직임에서 아버지는 재미 있는 패 움직임을 보였다. “아이쿠, 엉망진창인데 ….” 그렇게 갑작스러운 행마를 보이면서 아버지는 공격을 계속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는 내 패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 장관 패는 내 졸 패 g가 앞으로 전진했을 때 다시 제 자리로 돌아 갔다.    

 

12.g3 Qf6 13.O-O Be7 14.Re1 O-O 15.Qd3 b6 16.b4 a5 17.b5 bxc5 18.bxc6 Qxc6 19.Qxf5 cxd4 20.Nxd5 Bc5 21.Kg2 g6. 내 장관패가 위협을 받으면서 거의 잡힐 뻔했다.  “너의 실수는 졸을 먹기 위해 장관 패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다음 행마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저지선의 약점을 생각하느라 고심하였다.  잠시 후, 나는 말을 잡았다. d7. 22.Qxd7!  

“절망의 발걸음이구나?” 아버지가 깜작 놀라 물으셨다. 말 패와 장관 패를 서로 교환하는 것은 하나의 미친 짓이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나는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조용히 대답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알아채신 것 같았다.    

 

“아, 그렇구나? 방어하지 않으면 모르는 수였구나. 와, 엉망인데.” 아버지가 한숨을 내 쉬셨다. 분명히 판은 혼란스러웠다. 만약 내 장관 패 d7 이 흑색 패 장관에게 잡힐 경우 말 패를 앞으로 전진 f6, 왕 패와 함께 장관 패도 같이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전술 이름을 forking이라고 한다. 즉, 포크로 찍는다는 의미이다. 먼저 흑색 장관 패를 잡고, 동시에 성과 코끼리 패를 동시에 잡는다. 아버지는 분명,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계셨다. 그래서 백색 장관 패 d7를 잡고 장관 패를 22... Ra6을 그 자리에 배치시키셨다.    

 

그런 다음 나는 가능한 한 많은 패를 교환하려고 했다. : 23.Qxc6 Rxc6. Di sini, 내 패가 하나 더 많았지만 아버지의 패 배치가 더 좋았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패 운용이 내 패보다 더 활발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 24.Rc1 d3 25.Rxc5 Rxc5 26.Nf6+ Kg7 27.Nd7 Rc2 28.Nxf8 Rxe2+ 29.Kf1 Kxf8 30.Rxe2 dxe2+ 31.Kxe2 Ke7.  

 

시합은 점점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왕과 몇몇 졸 패만 판 위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들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그 결과가 다음과 같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 32.a4 Kd6 33.Kd3 Kc5 34.Kc3 Kd5 35.h4 Kc5 36.g4 h5.

 

무승부였다. 양측의 남은 졸 패 숫자가 같았다. 그리고 쌍방의 패가 서로 먼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합이 끝나고,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잠시 후, 주방으로 가셔서 한 잔의 냉수를 가져오셨다. 이미 밤은 깊었다. 아버지로부터 시합평을 듣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주무시러 가신다고 했고 나는 밤 인사를 드렸다.    

 

###  

 

라마단 연후가 끝난 다음 2주 후에, 아마 7월 말경에 나는 아버지와 다시 서양 장기를 둘 기회가 있었다. 그날 밤 결과는 명확하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행마는 큰 실수였다. 그 결과 우리는 각각 행마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어떤 대답을 가져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렇지만 그날 밤 느낌은 매우 좋았다. 단지 몰랐던 것은 그 경기가 우리들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그 해 8월 20일 한 밤중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우리들은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리고, 천으로 싼 다음 기도를 하면서 장례를 끝냈다. 아버지 시신은 매장되었다.  나와 두 명의 동생은 묘혈 아래에 내려 가서 아버지 시신을 받았고 그리고 그곳에 시신을 뉘였다. 나는 아버지 귀에 가까이 다가가 코란경을 읊어 드렸고 동생은 코란경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서양 장기 두는 사람의 신체 조건이 행마에 영향을 준다고. 앞에서 이야기했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들의 마지막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버지의 당시 몸 상태가 시합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 있었다. 아버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아셨던 것 같다. 단지 남은 식구들이 잘 지내라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언제나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삶은 마치 서양 장기와 같다.”라는 말을. 

 

 

2015년 9월 13일

2023년 5월 4일 (수정)  

 

 

 

 

Seperti Catur

 

 

                                                                                                                                             Aufannuha Ihsani

 

 

Tahun 2015. Selepas skripsi saya rampung pada akhir Maret, saya mulai mencari hobi baru. Ada semacam kelegaan yang harus diungkapkan dengan memiliki satu kesibukan yang menyenangkan. Saya memilih catur.  

 

Mengapa catur? Saya akrab dengan permainan ini sejak kanak-kanak, Abah yang mengajari. Saya ingat betul waktu kelas 3 SD dulu pernah bertanding dengan Pak Pur, tetangga sebelah rumah itu, ayah si Joko, dan berakhir remis. Saya begitu bangga dan menceritakannya pada Abah. Ia langsung mengajak saya main catur dan saya kalah dalam hitungan belasan langkah. Saya kesal, dan sejak saat itu hampir tak pernah menyentuh catur lagi.  

 

Sebab itulah, belajar bermain catur lagi ketika urusan utama saya telah beres setidaknya berguna dalam beberapa hal. Pertama, mengelola emosi. Kedua, memanggil kembali ingatan masa kecil saya. Yang terakhir, selepas skripsi, saya punya tantangan baru untuk diselesaikan: mengalahkan Abah.    

 

Saya membeli satu set catur, mulai bermain dengan siapapun, kadang menang dan kadang kalah. Saya belajar teorinya, menonton pertandingan-pertandingan kelas dunia via internet, dan membaca biografi Bobby Fischer atau Jose Raul Capablanca. Tentu saja, saya tak akan pernah bisa menyamai juara-juara dunia itu. Umur saya terlalu tua untuk belajar jadi pecatur profesional dan IQ yang saya miliki tidak akan memadai. Hanya menyenangi permainan ini dan mengerti di mana letak keindahannya, itu sudah cukup bagi saya. 

 

Setelah merasa cukup mumpuni, saya melakoni beberapa ronde catur dengan Abah. Kalah, kalah, dan lagi-lagi kalah. Padahal kondisi fisik Abah sudah lagi tidak prima. Badannya lebih kurus dibanding dua atau tiga tahun yang lalu. Hormon estrogennya meningkat, hingga di dadanya kini tersembul payudara yang seperti mau tumbuh. Kakinya akan bengkak dan putih matanya akan kekuning-kuningan jika terlalu capek. Ia menderita sirosis, jenjang terakhir dari penyakit liver. Seseorang harus tahu, bahwa kondisi fisik yang tidak prima dari seorang pecatur akan mempengaruhi permainannya.  

 

Abah adalah orang yang biasa menyisipkan nasehat di sela-sela sesuatu yang tidak penting, seperti tidak sengaja. Selepas kekalahan saya yang kesekian ia bilang, “Pokoknya, hidup itu seperti catur. Sebelum kamu melangkah kamu harus pikirkan apa jawaban lawanmu.” Sejak pertama bertanding saya telah mengerti bahwa Abah memang mumpuni dalam hal kalkulasi. Ia bisa memprediksi setidaknya lima langkah ke depan dengan cepat dan cukup akurat. Yang saya tidak tahu adalah bahwa ia benar-benar memahaminya, kemudian mengejawantahkannya dalam kehidupan.  

 

###  

 

Titik balik yang cukup menggembirakan adalah saat Ramadhan tahun itu, kira-kira akhir Juni. Sehabis tarawih kami kembali bermain catur. Saya pegang buah putih, Abah buah hitam. Di awal permainan saya bawa secarik kertas dan bilang akan mencatatnya. Saya juga bilang bahwa saya ingin berdiskusi dengannya selepas permainan itu dan menganalisisnya. Abah tak keberatan dan hanya berujar bahwa ada semacam kebiasaan di mana pemegang buah putih selalu menyerang lebih dulu dan pemegang buah hitam harus menyeimbangkan posisi sambil menunggu kelengahan putih. Saya tidak sepakat soal itu, tapi tidak pula mengatakannya.  

 

Permainan pun dimulai. Notasinya akan saya cantumkan di sini, dan maaf, saya tulis dalam bahasa Inggris karena lebih nyaman. K untuk King (Raja), Q untuk Queen (Menteri), B untuk Bishop (Gajah), R untuk Rook (Benteng), dan N untuk Knight (Kuda).  

 

1.d4 Nf6 2.c4 c6 3.Nc3 d5 4.c5 Bf5, pembukaan Gambit Menteri Ditolak. Kalau tak salah, variannya adalah pembelaan Semi-Slavia. Dalam pembukaan jenis ini, posisi buah catur pada permainan tengah seringkali lebih penting ketimbang langkah taktis dari pemainnya.  

5.f3 h6 6.Bf4 Nbd7 7.e3 Nh5 8.Bd3 Nxf4 9.exf4 e6 10.Bxf5 exf5 11.Nge2 Qh4+. Di langkah ini Abah berseloroh, “Ah, mengacau ah….” Dengan skak yang tiba-tiba itu ia tidak berniat melancarkan serangan. Abah hanya ingin memporak-porandakan susunan bidak saya. Menteri itu akan kembali ketika bidak g saya telah maju untuk menghadangnya.  

 

12.g3 Qf6 13.O-O Be7 14.Re1 O-O 15.Qd3 b6 16.b4 a5 17.b5 bxc5 18.bxc6 Qxc6 19.Qxf5 cxd4 20.Nxd5 Bc5 21.Kg2 g6. Menteri saya terancam dan hampir terjepit. “Kesalahanmu adalah makan bidak pakai menteri,” kata Abah. Langkah berikutnya bagi saya adalah langkah yang lama. Saya berpikir cukup keras hingga menemukan kelemahan di baris pertahanan Abah. Sejurus kemudian saya langsung melahap kuda di petak d7. 22.Qxd7!  

“Langkah putus asa, Fa?” Abah bertanya, keheranan. Memberikan menteri untuk ditukar dengan kuda adalah satu hal yang gila.  

 

Ndak juga….” Saya menjawab datar, mencoba sok tenang. Sejenak kemudian Abah tersadar.  

 

“Wah, iya, ya? Asem, ndak tahu kalau ndak terjaga. Wah, kacau, kacau,” keluhnya. Tentu saja kacau. Jika menteri saya di petak d7 itu dimakan oleh menteri hitam, kuda akan saya langkahkan ke petak f6, menyerang raja dan menteri secara bersamaan. Taktik ini dinamakan forking, menggarpu. Terlebih, jika menteri hitam sudah saya dapatkan, saya sekaligus akan menggarpu benteng dan gajahnya. Abah mengerti benar akan hal ini. Maka itu, alih-alih memakan menteri putih di d7, Abah justru mempertahankan menterinya sendiri dengan 22…Ra6.  

 

Selepas itu, saya berusaha untuk menukar perwira sebanyak mungkin: 23.Qxc6 Rxc6. Di sini, kendati saya unggul satu perwira, posisi Abah lebih baik sebab buah caturnya lebih aktif ketimbang milik saya. Keunggulan satu perwira itu kemudian dengan mudah disetarakan oleh Abah: 24.Rc1 d3 25.Rxc5 Rxc5 26.Nf6+ Kg7 27.Nd7 Rc2 28.Nxf8 Rxe2+ 29.Kf1 Kxf8 30.Rxe2 dxe2+ 31.Kxe2 Ke7.  

 

Permainan kini telah mencapai babak akhir, hanya tersisa raja dan beberapa bidak di atas papan catur. Tidak butuh waktu lama bagi kami untuk tahu bahwa hasil akhirnya sudah terlihat: 32.a4 Kd6 33.Kd3 Kc5 34.Kc3 Kd5 35.h4 Kc5 36.g4 h5.

 

Remis. Bidak-bidak dari kedua belah pihak akan sama-sama tertahan dan kedua raja tidak akan berpindah dari posisinya untuk mengawal mereka.  

 

Sehabis permainan itu Abah terdiam. Beberapa jenak kemudian ia beranjak ke dapur, mengambil air putih. Waktu sudah larut sekali, saya jadi tak tega menahannya untuk sebuah analisis permainan. Ia pamit untuk ke peraduan dan saya menyilakannya.  

 

###  

 

Dua minggu setelah lebaran, kira-kira akhir Juli, saya masih sempat bermain catur dengan Abah. Malam itu hasilnya tak jelas. Langkah terakhir Abah adalah sebuah blunder sehingga akhirnya kami malah bereksperimen dengan langkah masing-masing dan mencoba-coba apa jawabannya. Meski demikian, saya tahu, malam itu rasanya menyenangkan sekali. Yang saya tidak tahu adalah bahwa permainan itu akan menjadi permainan terakhir kami.  

 

Abah meninggal pada 20 Agustus tahun itu, menjelang tengah malam. Dari dini hari hingga selepas asar, kami telah memandikan, mengafani, menyalati, dan menguburkannya. Saya dan dua orang adik saya turun ke liang lahat untuk menerima jenazah Abah dan membaringkannya di sana. Saya lantunkan azan di dekat telinganya dan kemudian adik yang mengikamahi.

 

Saya sudah bilang bahwa kondisi fisik pecatur akan berpengaruh pada langkah-langkahnya, bukan? Barangkali itulah yang menyebabkan dua permainan terakhir kami berakhir imbang. Kondisi fisik Abah sudah tak cukup lagi untuk memfokuskan pikirannya. Ia seperti tahu bahwa waktunya tak banyak, seperti ingin diam-diam mengucapkan selamat tinggal.   

 

Apapun itu, saya akan selalu ingat kata-katanya: “Hidup itu seperti catur, Fa….”

 

13 September 2015

Diedit lagi pada 4 Mei 2023.

 

 

(Diterjemahkan oleh Kim, Young Soo)

 

 

[수필가 소개]

아우판누하 이흐사니, 1990년스마랑(Semarang) 출생. UGM 석사취득 2020년. 현재 UIN Prof. K.H. Saifudin Zuhri Purwokerto 대학교강사재직

 

Aufannuha Ihsani, lahir di Semarang, 1990. Lulus dari pascasarjana UGM tahun 2020. Kini bekerja sebagai dosen di UIN Prof. K.H. Saifudin Zuhri, Purwokerto.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