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함께 장 보는 남자
곽 흥 렬
‘이상하다, 왜 여태 안 오는 거지?’
재래시장 입구의 소방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세워 두고 아내를 기다리는 중이다. 가게의 셔터문은 하나 둘씩 닫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아들었다. 부산하던 거리가 차츰 어둠 속에 묻혀 간다. 연신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간은 자꾸만 초조히 흐르고 있다.
달포 전쯤의 일이다. 땅거미가 깔릴 무렵,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 버릇처럼 다니는 한 대형 할인매장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잘 아시겠지만, 할인매장이란 데가 그야말로 없는 물건이 없다시피 하는 만물상 아닌가. 거기서 두세 시간은 넉넉히 머물렀으니 이것저것 사야 할 것들은 웬만큼 샀다 싶은데, 아내는 그래도 장 볼 게 빠졌다면서 시장 쪽으로 차를 몰아주기를 부탁해 왔다. 다음 날 아침 찌갯거리로 생 갈치라도 한두 마리 장만해 오겠다는 것이다. ‘마트 갔을 때 살 일이지…….’ 이런 내 불만스러운 심사를 넘겨짚기라도 한 것일까, 생선은 재래시장 물건이 더 싱싱하고 값도 싸느니 어쩌니 하며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흘린다.
끓어오르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서 두말없이 아내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응해주는 편이 여러 모로 속 시끄럽지 않게 하는 처신임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른 해 가까운 세월을 한솥밥 먹으며 살아오는 동안 시나브로 길이 들려져 버렸다고나 할까.
차는 이내 시장 어귀에 닿았다. 아내는 차에서 발을 내려놓기가 바쁘게 시장 안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겨놓는다, 자기는 걸어서 갈 테니 나더러 먼저 들어가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은 채. 나는 ‘잠시 머물면 곧 다녀오겠지’ 하는 나대로의 짐작을 대고는 그냥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아내는 그 말에 이렇다 저렇다 대꾸는 없이 흘끔 이쪽을 돌아다보았다. 그리고는 두세 번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종종걸음을 친다. 필시 알아들었다는 암묵적인 의사 표시이리라.
그렇게 해서 기다리기를 오 분, 십 분, 십오 분……, 삼십 분이 넘어가도록 아내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처음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다. 나는 차츰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갈치 한 마리 사는 데 줄잡아 십 분 안팎이면 넉넉할 것을, 뭔 시간이 이렇게 걸린단 말인가. 틀림없이 혼자서 먼저 집으로 간 것이 분명해. 아니야, 혹여 허둥지둥 서두르다 발목이 삐어 길가에 주저앉은 채 끙끙거리고 있는지도 몰라. 아니면 시장 안에서 우연히 예전의 동창생을 만나기나 한 걸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가게 주인과 뜻하지 않게 말다툼이라도……. 설마 그럴 리야. 누구를 상대로 우악스럽게 대들고 할 위인은 애당초 못 되지 않는가. 별의별 상념들이 엉클어진 실타래가 되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와 함께, 기다릴까 그냥 갈까, 그냥 갈까 기다릴까 두 마음의 속 모르는 줄다리기는 분초를 다투며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다 끝내 지쳐 버리고 말았다. 아니, 언제까지나 무작정 기다려서는 아까운 시간만 허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출타가 아니라고, 하필이면 그날따라 손전화까지 서랍장 안에다 얌전히 모셔 두고 왔으니……. 가는 거다. 어쨌든 가고 보는 거다. 이렇게 결단을 내리고는 차를 몰아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아뿔싸! 글쎄 이 일을 어쩐담.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상황이 뒤틀려졌음을 알고는 그만 덜컥 겁이 났다. 휑한 집 안의 공기가 아직 아내가 도착하지 않았음을 한눈에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무슨 핀잔을 듣게 될까. 아내의 잔소리가 이명으로 귓속에 쟁쟁거렸다.
폭풍전야 같은 고요를 서성거리길 한 십여 분이나 흘렀을라나. 양손에 뭘 잔뜩 사 들고서 낑낑거리며 들어서는 아내의 얼굴모습은, 아니나 다를까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흥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상기된 표정이 역력하다. 입술 주위는 바람살 맞은 문풍지처럼 바르르 떨리고 찡그린 미간엔 자잘한 주름이 잡혔다.
살짝만 건드려도 터져버릴 것 같은 팽팽한 침묵이 흘러갔다. 그 싸늘한 분위기에 눌려 나는 그만 속이 빠진 헝겊인형처럼 납작해졌다. 그러면서 조건반사적으로 방어기전이 가동을 시작했다. “어이구, 이 못 말리는 조급증!” 나는 아내더러 일부러 들으라고 이렇게 스스로를 질책하듯 중얼거리며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내는 예의 그 진중하지 못한 나의 결정적인 단점을 또 들먹이고 나선다.
“그새를 못 참아서. 진득한 구석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어 가지고.”
평소 웬만해선 이런 상스러운 말은 입에 담지 않는 아내였던 걸로 보면 오늘따라 화가 나긴 단단히 난 모양이다. 나는
“글쎄 그게 그런 것이 아니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변명을 입버릇처럼 늘어놓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에둘러 용서를 구하고 있는 나의 비대발괄에 스스로 어색한 헛웃음이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붉으락푸르락하던 아내는
“아이고, 그만 관둡시다. 으레 그런 양반이니 자꾸 이야기해 봤자 내 입만 아프지 뭐.”
하는 말로 복작복작 끓다가 식는 죽처럼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나는 그 정도로 끝나고 만 데 대해 적이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기야 나라고 해서 또 나대로의 불평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여자들은 대다수가 그런 것 같다.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처럼 똑같은 형태와 동일한 품질의 물건인데도, 이게 더 나을까 저게 더 좋을까를 저울질하며 계속 들었다 놨다를 되풀이한다. 이를테면 포장된 콩나물이며 두부, 계량을 거친 계란꾸러미 같은 것들은 어차피 그게 그것 아닌가. 거기에 참을성이 부족한 세상의 사내들은 그만 제풀에 지쳐 버리기 일쑤다. 인내심이 최대의 무기인 여자와 조급증이 치명적인 약점인 남자, 그 둘의 팽팽한 밀고 당김, 여기서 그들 사이에는 한 사나흘 간의 냉전이 필연적으로 예고된다.
물론 세상만사 그 무엇이든 빛과 그림자는 항시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꼼꼼히 살피고 따져 보고 하면 그만큼 실수는 적을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지나 변질되었거나 혹은 진열 과정에서 손상된 제품 같은 경우 그들의 예리한 관찰력을 결코 피해 가지 못한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시간을 물 쓰듯 씀으로 해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의 상실 또한 그리 만만찮은 게 아니냐고 따지고 들면 선뜻 변해辨解의 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 아닌가.
여자와 함께 장을 보러 다니는 남자들은 어찌 보면 참 불행한 족속이다. 그들은 화급을 다투는 볼일에도 마땅히 배변할 곳이 눈에 뜨이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처럼, 짧지만 긴 기다림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아니 되는 까닭이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지만 당하는 순간에는 참아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은 괴로움, 이것이 얼마나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고문인가.
세상의 남자들이여! 여자들이 장을 보러 가는 길에는 섣불리 따라나설 생각을 말지어다. 소중한,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래도 굳이 가려거든 메가톤 급의 인내심으로 단단히 정신무장을 하고서나 결행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