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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 책 리뷰 ] 한국미의 조명 - 조요한, 열화당, 1999 / .. 시인 조지훈 역시 1964년에 멋 이론의 체계화를 시도하는 긴 논문을 발표했다.

작성자曉泉|작성시간15.07.01|조회수128 목록 댓글 0
한국미의 조명1  예술 / 책    리뷰 

2010.12.3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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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요한, 열화당, 1999

 

 

* 집에서 뒹굴뒹굴거리다 조요한의 한국미의 조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책은 그냥 읽고 끝나면 잊어버리기 십상이므로, 간단하게라도 블로그에 정리 요약하기로 했다. 제 1장 '한국미의 탐구를 위한 서론'만 요약했을 뿐인데 한나절이 걸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국문학에 대한 첫 언급은(1948년) 조윤제가 '은근과 끈기'라고 주장하면서 시작하였다. 

 

화려하고 고운 꽃은 아니지만 은근한 아름다움과 늦가을까지 끈기있게 피는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정해진 것과,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과 구운몽에서 성진과 팔선녀의 사랑도 은근과 끈기를 보여주고 있고, 고려조의 '가시리'는 한국문학의 은근성을, 정몽주의 '단심가'는 끈기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p.15~18)

 

 

이에 반박하여 이희승은 처음으로 한국의 미는 '멋'이라고 발언하고 나섰다.

 

그는 멋이란 중국의 풍류보다도 해학미가 더하고, 서양의 유머에 비하면 풍류적인 격이 높다고 했다. 그는 멋의 예증으로 "한복의 긴 고름, 버선코와 신코의 뾰족함, 저고리 회장, 섶귀의 날카로움, 고려자기 주전자의 긴 귀때, 한국 가옥의 추녀 곡선" 을 들었다. 그는 멋이야말로 사물의 실용성을 떠나 통일을 깨고 균제를 벗어나는 한국미의 특색이라고 보았다.  (p.18~20)

 

 

멋의 논쟁이 있었던 1950년대 말에 이양하는「코리언 오티어시티(Korean Otiosity」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이 수필은 한국인의 멋과 관련된 것으로, 그는 "커다란 갓, 넓고 기다란 두루마기, 가가 너그럽고 풍채있는 바지저고리, 똥똥한 버선과 그 버선이 넘쳐 땅에 닿으리만큼 운두가 낮은 갖신, 그리고 기다란 담뱃대를 휘휘 내저으며 갈 지(之)자로 옮겨놓은 걸음새, 이 옷의 부윤(살림이 넉넉하고 윤택)과 노둔(어리석고 둔함), 고아(고상하고 우아)와 무력이 걸음새의 교만과 위엄, 여유와 방자, 그리고 이 옷과 담뱃대가 암시하는 한가와 안일과 무위와 나태, 이것이 곧 'Otiosity(오시어시티)'요, 이것이 곧 우리 조선 사람의 특질이다." 라고 설명했다. 이떻든 비스듬히 쓴 갓이나 여유있는 걸음걸이에서 볼 수 있는, 단정함에 대한 일탈로서의 이 '코리언 오티어시티'는 '한국인의 멋'과 상통하는 개념이다.  (p.21)

 

 

시인 조지훈 역시 1964년에 멋 이론의 체계화를 시도하는 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희승이 시도했던 것처럼 '멋'의 어원인 '맛'을 대비시키면서 멋의 개념을 정리해나갔다. '맛있다'라는 말이 미각에서만 쓰이지 않고 미감의 표현으로도 쓰이는데, 여기에서 맛의 멋에로의 변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맛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미감은 우아, 아려, 아담의 미를 느끼게 하는데 반해, 멋은 풍류, 호방, 초탈의 미를 준다고 그는 정리했다. 그는 멋의 미적 내용을 형태미, 표현미, 정신미 세가지로 나누어 고찰했다. 첫째, 멋의 형태적 특성으로서 가야금 산조나 시조에서 볼수 있듯이 그는 수학적인 엄격한 균제가 적용되지 않는 '비정제성'을 들었다. 둘째, 표현미로서의 멋으로서는 추사의 글씨에서 보는 것과 같이 멋을 내려면 일단 '기법의 원숙성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자연히 발로되어 '멋'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말했다. 셋째, 멋의 정신적 특질로서 그는 비실용성(한복의 유장한 옷고름), 중절성(사치와 교양의 공존), 낙천성(내부에서 생활의 기쁨을 찾음)을 들었다.  (p.24~26)

 

 

한편, 1920년대에 일찍이 외국인들에 의해 조선의 미술사가 쓰여지기도 했다.

첫번째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과 그 예술」(1922)에서 한국의 미를 '비애의 예술'이라고 규정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일본의 식민통치에 반발하고 한국예술에 대한 사모의 정 때문에, 그리고 광화문처럼 '소실되어가는 예술의 가치와 그 미래를 옹호하려는'의도에서 이 책을 내놓았다. 그는 책에서 중국예술은 의지의 예술로서 장대한 형(形)으로 나타나고, 일본예술은 정취의 예술로서 아름다운 색(色)으로 나타나고, 한국예술은 비애의 예술로서 가느다란 선(線)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이 발표되자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고유섭은 1931년 자신의 논문에서 한국미술에 대한 야나기의 이론 중에 '선적인 미'라는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비애의 미'라는 점에서 반대했으며, 박종홍도 1922년부터 차례대로 발표한 글에서 고구려의 예술을 예로 들어 야나기 무네요시의 비애미에 대해 비판하며 한국미의 특징은 불교미술에서 보는대로 '무한한 내재미'에 있다고 주장했다.  (p.35~38)

 

 

두번째로, 「조선미술사」(1929)의 저자인 독일인 선교사 에카르트는 한국의 미를 '고전적(classical) 미' 라고 고찰했다.

 

한국에 20년동안 머물면서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한국미술사를 기술한 그는, 1913년 석굴암이 발견되었을때, 그 완벽한 균형미와 수학적 비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석굴암에 매료되어 한국의 미를 '고전적'이라 일컬었다. 그는 "중국의 과장되고 왜곡된 모형과 일본의 너무도 감상적이고 판에박은 듯한 모형과는 달리 한국은 차라리 극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전적 예술작품을 당당히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보통 미술사가는 한국의 미를 '멋'이라고 말하는 '형의 비균제성'을 한국미의 특징으로 말하기 마련이어서, 에카르트가 지적한 '수학적 균제에 의한 고전주의적 한국미'는 의아하게 대비된다. 그 이유는 에카르트가 불교미술을 기반으로 한 석굴암에 크게 매료되었기 때문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한국미술을 극동의 그리스 미술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으면서 동양의 삼국예술을 비교한 결과 한국미의 특색을 과장이 없는 단순성(simplicity)으로 규정했다.  (p.40~45)

 

 

1930년대부터 한국미술사에 관한 중요한 논문들을 발표한 고유섭은 한국미를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의 상상력과 구성력을 설명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건축은 각 부분의 비례가 수학적으로 제할될 수 있으나 한국의 건축은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국과 일본의 건축은 그 절반만 실측해도 나머지 절반의 해답이 나오지만 한국 건축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한국 건축이 수학적 할당에 의하지 않고 '멋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섭은 멋이란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다양성의 발휘, 다양성 다채성으로의 기교적 발작'이라 정의한다. 그는 한국미의 특징을 질박, 담소, 무기교의 기교라고 특징지었다. 한국미술은 작위적인 기교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고 '흙냄새'가 나는 예술이라고 했다. 또한 한국미술은 "상품화된 미술이 아니므로 정치한 맛, 정돈된 맛에서는 항상 부족하다. 그러나 그 대신 질박한 맛과 돈후한 맛과 순진한 맛에 있어 우수하다" 라고 기술했다. 분청사기의 구수한 큰 맛의 민예적 특성과, 한국 건물들이 목재의 자연적 굴곡을 그대로 사용하는 데서도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p.46~47)

 

 

1968년「한국미술사」를 출간했던 김원용은 한국 미의 특징을 '자연주의'라고 기술했다.  

 

그는 한국미술을 특색을 지역적, 시대적으로 분할고찰을 시도하면서 삼국시대에는 세 나라로 분리되어 각각 그 특색을 달리하고 있으나, 공통적으로 "세부보다는 전체적 인상, 냉철보다는 인간적 온화, 추상보다는 자연적 관조를 존중하는 한국적 자연주의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기술했다. 또한 조선조에 이르러 억불숭유의 정책에 따라 과격한 경향이나 수법이 억제되고, 유교의 금욕주의와 중용사상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자연주의 가 작용하여 '철저한 평범의 세계'가 펼쳐졌다. 김원용은 이렇게 한국 고미술의 특색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 재현하려는 자연주의요, 철저히 아(我)의 배제이다" 라고 기술했다. 여기서 자연주의라는 용어는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 구분을 짓는 서양의 자연주의와는 구별되며,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합일을 이상으로 삼는 동양의 자연주의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지어야 할 것이다.  (p.53~56)

 

 

「한국미의 조명 」(1999) 책의 저자 조요한은 한국미의 특징을 '비균제성'과 '자연순응성'으로 정의한다.

 

한국미술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인가. 한국미의 정신을 추구했던 고유섭은 이를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 하였고, 김원용은 가능한 한 인공의 흔적을 줄이고 자연과의 조화를 찾았다는 점에서 '자연주의'라고 그 특성을 밝혔다. '무기교의 기교'가 한국예술의 비균제성을 일컫는 말이고, '자연주의'는 자연순응성을 뜻하는 말이니, 나는 한국예술의 특성을 이 두개의 축으로 삼는 것을 그대로 차용하고자 한다. 그런데 '비균제성'과 '자연순응성'은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 나는 한국민족의 조상들이 추운 북방의 삼림지대를 통과하면서 형성된 무교적 체질이 한국인의 정신과 육체에 스며있어, 그것이 한국예술의 특성을 좌우했다고 본다. 사물놀이와 가야금 산조의 연주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대로, 산나면 규칙을 무시하면서 도취하는 기질이 한국예술의 비균제성을 낳았고,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농경생활로 전환할 때부터 생긴 지모신 숭배가 자연순응성을 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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