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파 시인들
1, 들어가는 말
2, 청록파 3인의 공통점
1), 자연을 노래하면서 현실을 저항 하다.
2), 절대자 앞에서 삶을 고민 하다.
3, 청록파 3인의 차이점
1,가), 시적 리듬을 중요시 한 박목월
1,나), 명사로 끝맺음 한 시
2,가), 자연을 밝은 미래로 염원한 박두진
2,나), 피를 소재로 한 강열한 표현의 시
3,가), 자연에서 동양적 세계가 잘 드러난 조지훈
3,나), 조선의 시조 가락이 있는 시
4, 맺은 말
1.들어가는 말
일제가 우리를 식민 지배 하던 1939년에 우리 문학사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문장)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이 있었다.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세칭 청록파 시인이 그들이다. 당시 (문장)지 편집을 맡았던 정지용은 박두진을 추천하면서 선후평에서 시단에 하나의 <신자연>을 소개 한다고 하였다. 세 시인은 문장지에 데뷔 하자마자 일정 말기 우리말로 글을 발표할 수 없는데다가 그들이 데뷔한 "문장"지 마저 폐간 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다. 어쩔 수 없이 작품을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가 그들이 써두었던 작품들을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청록집)이란 합동시집을 내었다. 이들 청록파 시인 3인은 자연을 읊은 점과 종교성이 짙은 시를 많이 발표한 공통점이 있는가 하면 각자 특징적인 시세계를 개간하였으니 이글을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해 보고자 한다.
2,청록파 3인의 공통점
자연파라고도 하는 이들은 자연을 시에 투영하여 인간의 심연의 깊이를 읊으면서 암담한 조국의 현실 앞에 밝은 날이 도래하기를 염원하고, 향토적 서정으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을 민요풍으로 노래하였고, 고전미를 담아 민족 동질성을 자극하면서 저항적인 면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 이들도 ‘청록집’ 이후로 각자 특색 있는 시세계를 보여 주었는데 인간의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절대자 앞에서 고민하였고 종교는 각자 달랐으나 절대자를 소재로 한 시와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찰하였다. 그러므로 이들 3인은 자연을 읊으면서 암울한 현실을 저항하고, 절대자 앞에서 인생 문제를 고민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1), 자연을 노래하면서 현실을 저항하다.
박목월의 자연은 향토성이 강한 소재를 민족전통의 율조와 회화적인 감각으로 인간 본원적 애수를 그려 내었다. 시어는 압축되고 세련되게 사용하였다.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ㅅ잎 피어나는 열 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청노루) 전문
‘청록파’라는 이름을 낳게 한 시다. 박목월의 초기 시에서는 ‘나그네’ ‘윤사월’ ‘산도화’ 등 자연을 소재로 한 많은 시를 볼 수 있다. 환상적 아름다움과 심혼의 고향 그리고 환상의 지도를 느낄 수 있는 (청노루)에서는 한마디의 의성어나 의태어도 찾아 볼 수 없다. 한편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시로 실제 생활에서 소재를 구한 것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발견한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자신은 ‘마음의 지도’를 마련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나대로 환상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어둡고 불안한 시대에 푸근하게 은신할 수 있는 ‘어수룩한 천지’가 그리웠던 것이다.”¹⁾ 조국의 암울한 식민지하에서 향토 성 짙은 율조로 한편의 동양화 같은 자연을 읊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박두진은 밝은 미래가 도래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자연에 접근하였다. 박두진의 자연은 밝은 해가 자주 등장한다. 해는 현실의 어둠을 몰아내고 메시아가 도래하는 환희를 힘 있게 표현한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에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해) 전문
8.15 해방이란 역사적 계기에 때를 맞추어 표출된 시로 미래 지향적 의지를 생명력 넘치게 발휘하고 있다. 작자인 박두진 자신은 ‘8.15 해방의 세기적 분출구를 만나 그냥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긴장, 무엇인가 아주 포괄적이고 근원적이며, 민족과 인류, 현재와 영원, 미래를 포괄할 수 있는 이상을 집중적으로 완벽하게 표현, 형상화 하고자 했다.’²⁾ 라고 했다. 이 작품에서 ‘해’는 시대적 아픔을 몰아내는 힘으로서의 단편적 의미보다는 온갖 불의와 악을 배격하고 동시에 만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영속적인 존재라는 복합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와 ‘어둠’의 대립은 작품의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한다. ‘해’와 유사한 작품 ‘어서 너는 오너라.’에서도 현실 극복 의지를 밝은 미래 희망으로 표현함을 알 수 있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 오래 정 들이고 살 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 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ㅅ가에,
너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서는 게냐,
중략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어서 너는 오너라) 전문
이 시에서 꽃과 나비가 어울려 있는 공간은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공간이다.
평론가 이숭원은 이 작품에서 작자의 어린 시절과 연관 지어 이해한다. 시인이 자연에 자신의 갈망과 염원을 담아냈다고 하면서 앞 절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라는 대목이 시인의 기독교적 평화주의를 시적으로 형상화해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³ ⁾인간과 동물이 한데 어울려 평화스럽게 공존하는 세계 인식은 성경 ‘이사야’서와 시편에도 나타나고 있다.
조지훈은 청록파의 공통적 주제였던 '자연'에 대한 추구와 함께, 관조적이며 고전적인 품격의 시를 독자적으로 형성한 시인이다. 특히 그는 불교적인 선감(禪感)을 바탕으로 회고적 정신에 입각한 민족적 정신과 전통에의 향수를 잘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결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완화삼) 전문
박목월의 시 (나그네)의 화답을 받은 시로 알려져 있는 완화삼은 ‘꽃으로 완상하는 선비의 도포’란 뜻과 같이 선비의 풍류적 멋이 담겨 있다. (나그네)와 같이 나그네가 등장하고 산촌이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시적 화자는 나그네의 길 떠남과 구름의 흐름 그리고 물길의 심상을 융합하여 정처 없는 유랑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의 유랑은 식민지 시대의 부리 뽑힌 민족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하겠다.
2), 절대자 앞에서 삶을 고민하다.
박목월은 끊임없이 자기 변화를 추구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초기작은 자연을
향토색 짙게 표현했지만 사랑하는 아우가 죽은 후론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인생을 다루고 있으며 노년에 이르러서는 급속한 기독교적 성격이 짙은 시를 나타내었다.
관(棺)을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알아보고 형(兄)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하관) 전문
사랑하는 아우를 땅에 묻으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시나 ‘주여 용납하소서’ 하면서 절대자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슬픔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볼 수 있다. 월맹사의 (제망매가)를 연상케 한다. 평론가 김재홍은 ‘이 시는 혈육의 죽음과 매장을 직접 겪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인생의 허무함과 함께 생의 재발견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육신의 허망함에 대한 비통과 탄식이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애리한 절제와 극기의 노력이 성공적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4) 하였다.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중략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후략
(이별가) 전문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함으로써 시인의 의식이 고향으로 회귀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향에의 회귀는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언어로 나타나고 있다. 마치 죽음을 예비하고 있는 이가 저승과 이승의 건널목을 허탈하게 지켜보며 그 앞에서 어떤 대화를 하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 같은 적막감을 느끼게 한다. 이 시를 해설한 송하선 교수는 이 무렵에 목월이 쓴 시 (일상사)의 ‘청마는 가고/지훈도 가고/그리고 수영의 영결식/ 그날 아침에는/이상한 바람이 불었다.’를 읽으면 작품 이해가 더욱 가능하리라.⁵⁾고 하였다. 목월은
노년에 ‘부활절 아침의 기도’ ‘어머니의 성경’ ‘이만한 믿음’ 등등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기독교에 심취한 시를 많이 썼다.
박두진은 초기 시부터 자연과 절대자가 등장한다. 혜산 박두진은 기독교적 생명사상에 입각하여 자연과의 친화를 노래하였다.
북망(北邙)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섧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묘지송) 전문
시는 묘지를 소재로 읊조리고 있다. 1939년 (문장)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의 제재로 사용된 묘지는 비감(悲感)을 자아내거나 무상감(無常感)을 자아내는 소재이다. 그러나 화자의 눈에 비친 무덤은 차원을 달리한다. 무덤은 흔히 유한성의 대상으로 삼아진다. 인생은 죽음으로 마감하며, 그 허무의 그림자가 곧 무덤이다. 화자는 무덤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 장소라고 인식한다. 이 시를 해설한 조창환은 이 시를 크게 두 개의 세계로 나눈다. 즉 (북망), (무덤), (촉루), (어둠), (설움) 등으로 나타나는 소재의 세계와, 이를 극복하는 주제의 세계로 나누어 진다.⁶⁾고 하였다. 어둠에게는 밝음과 죽음에게는 부활로 극복됨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 전략 ....
몽치와 환도와 밧줄의 군렬 앞을
종용이 내려오신 당신의 모습을
어나 나무 뒤에 숨어 바라보았지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삼년을 하루 같이 따라 다녔다는
나도 그때 당신의 제가였다면
닭 울기 전
거듭 세번 몰랐담을 뉘우쳐 통곡하던 당신의 늙은 제가
베드로는 그래도
가야바의 뜰에까지 따라 갔지만,
오오 중얼거리며 나는
잡히시는 그 자릴 피애 달아 숨은 채
감람산,
어느 나무 뒷 그늘에 혼자서 쭈그리고,
당신과 또 스스로의 배반을
몇 줄기의 눈물론들 뉘우쳤나 봤을지요
(감람산 밤에) 전문
박두진의 시에 있어서 성서의 설화적 모티프는 같은 기독교를 배경으로 시를 쓴 김현승에 비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독자가 성서에 대한 지식을 자세히 알고서 감상하면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시는 예수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감람산에서 고되하며 기도하는 장면과 그의 수제자 베드로의 실수를 아픈 마음으로 동감하면서 쓴 시라고 할 수 있다.
조지훈의 시에서는 자연, 무속, 선 등을 소재로 민족적인 색채가 짙고, 불교의식을 일깨어 주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목어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릿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고사) 전문
낡은 옛 절을 스케치 풍으로 그린 것과 같은 시다. 동자승의 염불을 외다 조는 모습과 자비로운 미소로 바라보시는 부처님을 표현 하면서 평화로운 저자의 신심을 읽을 수 있다.
3,청록파 3인의 차이점
3인이 다 여러 특색을 가지나 대표적인 부분을 상고해 보면, 동요를 많이 발표한 박목월은 시에 운율을 세심하게 배치하였고, 박두진은 시적 형상화를 이루는데 뛰어 났으며, 조지훈은
1,1), 시적 리듬을 중요시한 박목월
박목월은 자연을 정형적인 리듬을 주어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 전문
(윤사월)을 해방 후 (상아탑)에 발표하고 나서 나중에 (산도화)(1959)에 다시 수록 할 때는 ‘엿듣고 있다.’를 ‘엿듣고 있네.’ 개작하여 수록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하였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산도화)에 이 작품을 수록할 무렵에 ’엿듣고 있네.’하고 다만 ‘다’를 ‘네’로 고쳐보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맑은 어감이 과하게 노래로 흘러 버리는 것 같았다.’⁷⁾라고 하였다. 음악성을 살리기 위한 시인의 섬세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후략
(나그네) 전문
7.5조로 된 이 시는 민요적 가락에서 온 것으로 리드미컬하고 경쾌하다.
1,2), 명사로 끝맺음한 시
시의 각 연을 명사로 끝을 맺으면 의미가 함축되고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남게 된다. 박목월의 시에서는 그런 부분이 많다.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중략
도는
구름
(청노루) 전문
(청노루)에서 ‘기와 집’ ‘구름’ 같이 각 연이 명사로 끝맺음을 한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중략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후략
(윤사월) 전문
(윤사월)에서도 ‘봉우리’ ‘처녀사’ 등 명사로 끝을 맺는다. 그 외 (나그네)에서 ‘나그네’도
명사로 끝을 맺는다.
2,1) 자연을 밝은 미래로 염원한 박두진
박두진이 박목월, 조지훈과 다른 점은 자연을 정적이기 보다는 동적으로 표현하고 동양적이기 보다는 서양적인 자연으로 나타내면서, 메시야 도래를 염원한 밝은 미래를 노래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잊을수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강물은 숲에서 나와 흐르리. 비로소 채색되는 유유(悠悠)한 침묵 꽃으로 수장(水葬)하는 내일에의 날개짓.
아, 홍건하게 강물은 꽃에 젖어 흐르리 무지개 피에 젖은 아침 숲 짐승 울음. 일체의 죽은 것은 떠나게 가리 얼룽대는 배암 비늘 피발톱 독수리의,
이리 떼 비둘기 떼 깃죽지와 울대뼈의 피로 물든 일체는 바다로 가리. 비로소 햇살 아래 옷을 벗는 너의 전신(全身) 강이여, 강이여, 내일에의 피 몸짓. 네가 하는 손짓을 잊을 수가 없어 강 흐름 피무늬길 바다로 간다.
(강) 전문
‘해’나 ‘어서 너는 오너라’와 같이 ‘강’도 미래의 소망을 염원한다. 암흑의 역사인 부정적 이미지들은 흘러 버리고 피 몸짓 내일을 향하여 더 넓고 큰 피무늬길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강열한 언어 속에 환희의 소망을 희구하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2.2) 피를 소재로 한 강열한 표현
박두진의 시에선 ‘해’가 많이 나오지만 ‘피’는 더 많이 나온다. 기독교에선 피는 생명이며 진실이고 최선이다.
유관순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三월 하늘에 뜨거운 피무늬가 어려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대지에 뜨거운 살과 피가 젖어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조국 우리들의 겨레는 우리들의 겨레 우리들의 자유는 우리들의 자유이어야 함을 알았다. 아,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유관순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우리들의 가슴 깊이 피터져 솟아나는 비로소 끓어 오르는 민족의 외침의 용솟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억눌림, 우리들의 비겁을 피로써 뚫고 일어서는 절규하는 깃발의 뜨거운 몸짓을 알았다.
후략
(3월 1일의 하는) 전문
63년 (인간밀림)에 발표된 작품으로 ‘피무늬’ ‘피로써’ ‘피깃발’ 등의 격정을 고조시키는 표현이 나타난다. 앞의 (강)에서도 ‘피발톱’ ‘피로물든’ ‘피몸짓’ ‘피무늬길’ 등의 강열한 표현이 있다. 그리고 (가을에 당신에게)에서는 ‘내 손에 묻어 있는 이시대의 붉은 피’와 (갈대)라는 작품에서는 ‘사랑의 피흘림’ ‘선혈이 뛰어흘러’ 같은 표현이 있다.
3,1), 자연에서 동양적 세계가 잘 드러난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과 같이 자연을 탐구한 공통점이 있지만 조지훈의 자연은 전통에 대한 회고적 정서를 형상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적 민속무용을 소재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살리면서 인간의 번뇌를 종교적 경지로 승화시킨 (승무)를 감상해 보자.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 전문
청록파 시인 중에서 자연에서 동양적인 세계가 잘 드러나고 전통에 대한 회고적 정서를 가장 잘 표출한 시인이 조지훈이다. (승무)뿐 아니라 (봉황수), (고풍의상), (완화삼), (고사)등 대표작 대부분이 불교의 선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는데 뛰어남을 보여 준다.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를 쓴 오세영은 그 책에서 ‘3연의 ‘황촉불’은 지상에서의 덧없는 존재, 불가에서 이르는 바 무명속의 중생을 상징하고 5연의 ‘먼 하늘 별빛’은 천상의 빛이며 영원하고 완전한 것의 상징이다. 기본적으로 불교적 상상력에 의해서 쓰여진 것을 감안 한다면 지상적 삶의 세계를 중생의 세계, 혹은 초월적 세계 깨달음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⁸⁾ 라고 했다.
3,2), 조선의 시조가락이 있는 시
조지훈은 어렸을 때부터 한문을 익힌 까닭으로, 일찍부터 唐詩에 친숙했었고, 유교적 가정에서 자란 요인으로 말미암아 漢詩나 시조 시 등으로 전통적인 시 감각을 많이 익힌시인이다.⁹⁾ 이와 같은 요소가 잘 나타난 (낙화)를 보자.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낙화) 전문
담담한 아취와 조촐한 기풍은 선인들의 한시나 당송대의 시로 그 맥락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작품은 2행으로 이루어진 아홉 개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8연을 제외한 나머지 연은 모두 4음보의 율격을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마치 구별 배행 시조처럼 읽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¹⁰⁾ 앞서 감상했던 (승무)도 9연이 2행으로 이루어진 시조풍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맺는말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자연을 노래하면서 등장한 청록파 시인들은 주옥같은 작품으로 민족과 함께 저항하고 위로하고 동정하기도 하였다. 자연을 통해서 향토적 서정을 자극하여 고유민족임을 일깨웠고, 자연의 밝은 세계를 반영하여 미래의 밝은 희망을 전했으며,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모습으로 한 겨레임을 자극하였다. 청록파 3인은 자연을 통해
뜻을 반영한 공통점과 종교관은 다르더라도 절대자 앞에서 인생근본 문제를 깊이 고민한
공통점이 있는 반면 각자 특색 있는 시세계를 개척해 갔다. 동요를 많이 발표한 박목월은 간결하고 압축된 시어를 사용하였고, 박두진은 밝고 정열적인 시어를 사용하였으며, 동양적이고 전통적인 요소가 많은 조지훈은 시조 풍의 시어를 사용하였다는 차이점을 볼 수 있겠다.
주)
1), 김권섭, 『즐거운 시 공부』(서울 : 도서출판 깊은 샘, 1998), p.301.
2), 송하선, 『한국의 현대시 이해와 감상』(서울: 선일문화사,1992),p.279.
3), 김권섭, 앞의 책, p.279.
4), 위의 책, p.317.
5), 송하선, 앞의 책, p.313.
6), 김용직.박철희, 『한국현대시 작품론』(서울: 도서출판 문장,1996),p.313.
7), 오세영,『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서울: 고려대학교 출판사,2004),p.425.
8), 위의 책, p.396.
9), 송하선, 앞의책, p.297.
10),김권섭, 앞의책, p.296.
참고문헌
김권섭(1998), 『즐거운 시 공부』, 도서출판 깊은 샘.
김용직. 박철희(1996),『한국현대시 작품론』, 도서출판 문장.
송하선(1992),『한국의 현대시 이해와 감상』, 선일문화사.
오세영(2004),『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고려대학교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