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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His Poems

조지훈의 석문& 서정주의 신부

작성자曉泉|작성시간12.07.22|조회수944 목록 댓글 0

서정주의 신부 & 조지훈의 석문 | 詩..는 다 그렇다 2011-01-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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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울나라의 작가들

최재봉 저
한겨레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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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新婦) | 서정주 [1972년]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석문(石門) | 조지훈 [1940년]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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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인의 시집 「질마재 신화」에 수록된 「신부」라는 시와 조지훈 시인의 시집 「풀잎 단장」에 실린 「석문」이라는 시는 놀랍도록 닮은 모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작품이 30여년이나 나중에 발표한 것이니 일종의 '오마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두 시인 모두 각기 자신의 고향에서 전해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시를 썼다 하니, 어쩌면 그 설화가 고을을 돌고 돌아 여러 고을에 토착화되어버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시 모두 산문투로 쓰여졌지만, 제가 임의로 문장에 엔터키를 입력해 읽기좋게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원작의 느낌과 격조가 일정부문 떨어질런지 모르겠지만, 이게 보기는 훨 편하네요..^^ 서정주 시인의 작품은 그냥 읽으면서 그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있으니 설명을 생략해도 되지만, 조지훈 시인의 작품은 시 속 화자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인 조지훈의 고향인 경국 영양 일월산 아랫마을에 황씨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처녀는 자신을 좋아하는 두 명의 남자 중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갔죠. 신혼 첫날 밤 뒷간에 다녀오던 신랑은 신방 문에 어린 칼날의 그림자를 보고, 연적이 숨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엄청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마당의 대나무 잎의 그림자를 칼날로 잘 못 본것이죠. 새신랑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을 치고, 신부는 원삼과 족두리도 벗지 않은 채 신랑을 기다리다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뭐 이런 넘하고 결혼을 했을까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오해를 푼 신랑은 신부의 주검을 수습하고 사당을 지어 혼령을 위로합니다.

조지훈 시인의 시 「석문」의 뒷배경을 보면 두 시가 너무나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신부 모두 참 못난(?) 신랑을 만난 덕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원통하게 죽음을 맞이했죠. 그런데.. 저는 이 두 시를 읽으면서 참 화가 많이 났습니다. 어쩐지 두 신부님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왜 그러고 죽음을 맞이하는지가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두 신부님들의 죽음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려 하는 뒷기운이 매우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엄격한 유교논리에 입각한 '여필종부(女必從夫)' 정서가 족쇄가 되어 그녀들을 꼼짝못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그 죽음이 결국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집단정서에 의해 일방적으로 저질러진 살인이라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전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만, 그것을 마치 여인의 정적이고 내성적인 성격내지는, 이해하고 돌아올때까지 기다려주는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찬양하는 것이 어쩐지 기만적이라는 느낌이네요. 그동안 그리 많은 시를 읽어온 것도 아니지만, 이번처럼 불편한 시는 또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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