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본 적 있다.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 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엘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은 아직 못 보았다. 저 꽃들의 고요!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 〈모순〉)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올해로 40주기를 맞는 조지훈(1920~1968) 시인은 섭리로서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준 시인이다. '지조(志操)'를 지킨 논객이자, '주정(酒酊)'의 교양과 '주격(酒格)'의 품계를 변별했던 풍류를 아는 학자였으며, 무엇보다 낙화를 찬미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이 시는 화두처럼 시작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라서,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인 것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리라. 돋았던 별이 하나 둘 스러지는 새벽, 먼 산의 소쩍새가 울고, 뜰에는 꽃이 지고 있다. 달빛이 고즈넉했던지 꽃 지는 그림자가 미닫이에 비친다. 방 안의 촛불을 꺼야, 지는 꽃이 빛을 발한다. 인간의 촛불을 꺼야, 어둠 속에서 목숨이 지는 자연의 꽃이 내는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그는 범종소리를, 과실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비유한 적이 있다.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 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범종(梵鐘)〉)이라고. 그 새벽에도 꽃이 지는 소리 웅 웅 웅 웅…… 아득했으리라. 흰 창호지문을 물들이는, '우련(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붉은, 낙화의 그림자! 지는 꽃의 그림자를 나는 이 시에서 처음 배웠다.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꽃이 다시 보인다는 것도. 밤새 진 꽃들 한 치는 쌓이리라. 꽃은, 진 후에 더욱 꽃이기에, 지는 꽃의 슬픔을 이리 높고 깊게 맞을 일이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과묵한 슬픔 앞에 목이 멘다. - 정끝별·시인
이 작품에서 시인은 떨어지는 꽃을 보며 삶의 쓸쓸함을 노래한다. 그러나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작품과 달리 조지훈은 꽃의 떨어짐에 대해 격정적 슬픔을 표시하기보다는 일단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 '꽃이 지기로소니 / 바람을 탓하랴', 바람이 아니더라도 피어난 꽃은 언젠가 떨어지는 것, 그러므로 그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를 인정하여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에 작정하였다 해도 무엇인가가 지상으로부터 소멸한다는 일은 아무래도 서글픈 일이다. 2, 3연은 이러한 시인의 심정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주렴 밖에 성긴 별이 / 하나 둘 스러지고'란 구절을 보건대 시간은 새벽이 가까와 올 무렵이다. 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의 마음을 대신하듯 밤새 울던 귀촉도의 울음 뒤에 고요함이 깔리자 먼 데의 산이 갑자기 가까와져 보인다. 이 쓸쓸한 시간에 그는 '촛불을 꺼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촛불을 끄는 행위는 꽃이 떨어지는 시간에 자기 자신 역시 어둠을 마주하여 있고자 하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꽃 지는 그림자가 뜰에 어리는 것을 보려는 간절한 심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불을 끄자 (이 행위는 작품에 생략되어 있다), 꽃 지는 그림자가 어리어 흰 미닫이 문이 은은히 붉게 비친다. 그것은 사라져 가는 꽃의 마지막 아름다움이자 그 쓸쓸함, 서글픔이 담긴 빛깔이다. 여기서는 지적인 이해보다 감각적인 느낌과 상상이 훨씬 중요하다. 이처럼 떨어지는 꽃을 노래한 뒤 그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는 세상을 피하여 묻혀 사는 이이다. 묻혀 사는 마음을 혹시 누구인가가 알지 않을까 그는 꺼려 한다. 그는 묻혀서 홀로 살았다. 그러나 사실은 '홀로'가 아니다. 그는 꽃과 더불어 살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꽃이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을 피하여 홀로 사는 그에게 한 즐거움이었던 꽃이 떨어질 때 그는 자신의 삶에 가득한 외로움을 다시금 느끼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기쁨과 목숨이 덧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는 이 슬픔을 잘 정돈된 언어와 시적 균형으로 억제하지만, 그것은 짙은 우수의 빛을 띠면서 작품의 말들 사이에는 연기처럼 스며 나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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