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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로 우리 고대사를 다시 쓴다 / 요하문명의 유적 발굴

작성자曉泉|작성시간15.06.11|조회수351 목록 댓글 0



홍산문화로 우리 고대사를 다시 쓴다

   

요하문명의 유적 발굴

130년에 걸친 이라크 지역의 유적 발굴을 통해 서양문명의 뿌리인 수메르문명이 세상에 드러난 것에 필적하는,

20세기 동북아 최대의 발굴 사건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요서지역(발해연안 지역)의 신석기, 청동기 문화 발굴이다.

1919년 프랑스인 에밀 리쌍이 내몽골의 적봉을 1차 방문하고, 1922년부터 그곳에서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한 이후 

요서에서는 현재도 대규모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 홍산문명 유적지


요서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는 BCE 6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소하서문화이다. 현지인조차 길을 

매는 오지에 위치한 소하서 유적은 당국의 문화재 신고 정책에 의한 주민의 신고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학계에서 단지 ‘인류 최고最古의 신석기문화’라고만 규정하는 이 문명의 주인공들은 발해연안 빗살무늬토기의 

주인공들과 생존 시기가 일치한다. 발견된 땅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인, 요서의 여러 신석기문화 가운데 

세간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곳이 바로 홍산문화이다. 적봉시에 위치한 철광석으로 뒤덮인 붉은 산

‘홍산紅山’에서 이름이 유래된 이 문화는 ‘석기와 청동기를 섞어 사용한 BCE 4500~3000년경의 문명’으로 판명되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홍산문화




▲ 홍산문명 동산취 유적지


홍산문화는 1979년 객좌현 동산취촌 발굴과 1983년 그 인근의 우하량촌 발굴을 계기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동산취에서는 엄청난 제사 유적이 발견되었고, 우하량 에서는 ‘돌무덤(塚), 신전(廟), 제단(壇)’이 동시에 발굴 

되었다. 이는 다른 신석기 문화에서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다.

 

 

▲ 홍산문명 대표 우하량 유적 제2지점 돔전시장 실내


그런데 우하량의 16개 유적지 가운데 13곳은 돌무지무덤 유적지이다. 동이족이 사용한대표적 묘제墓 制가 대규모로 

확인된 것이다. 돌무지무덤은 삼국시대 때 까지 계속 나타나는 무덤 형식으로 황하문명권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는다.


충적층지대인 황하유역은 흙으로 만든 토광묘를 지었고, 산악과 평지가 공존하는 요서지역은 주로 돌무덤을 지었다.

그렇다면 BCE 4천 년대에 돌무덤 묘제를 쓴 요서 지역의 동이족은 누구인지는 분명하다.

 


 

▲ 홍산문명 우하량 여신이 발굴된 여신묘


홍산문화가 환단의 동이족이 일군 문화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우하량의 여신전이다. 이형구 박사는 당시 

홍산인들이 여신전을 지어 지모신地母神에게 제사지냄으로써 풍년과 다산을 기원했다고 말한다. 여신전이 상당히 

좁은 것으로 보아,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 특권층, 심지어 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여기에 혼자 

어가 여신에게 제를 지낸 이는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제정일치 사회의 수장이었을 것이다.

 


▲ 홍산문명 대표 유물 우하량 여신

 

 

▲ 홍산문명 대표 유물 우하량 여신상 조각들


 


▲ 홍산문명 대표 유물 우하량 여신 복원 모습



이 여신전 터에서 여신상과 함께, 홍산인의 토템신앙을 보여주는 곰 소조상과 새 소조상이 발굴되었다. 

그들의 곰 토템은 우하량만이 아니라 인근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옥으로 만든 곰 형상물

(玉熊龍)에서도 보인다. 홍산문화 옥기 가운데 가장 비율이 높은 웅룡은 주로 죽은 이의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 가슴팍에는 가장 등급이 높은 옥기가 놓인다는 점에서 그들이 곰을 얼마나 신성시하였는

지 알 수 있다. 홍산인의 새 토템신앙은 여러 무덤에서 출토되는 새 모양의 옥기에서도 확인된다.

 

▲ 홍산문명 봉황 모형의 옥기 유물

 

여신을 모시고 곰과 새를 신성시한 홍산인들은 환단시대와 연관 지을 수밖에 없는, <환단고기>가 전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배달시대 초기, 호족과 웅족이 환웅천황을 찾아와 환족으로 교화되기를 청하였다. 

호족은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남권 중심의 사나운 부족이었고, 웅족은 곰을 토템으로 하는 여권 중심

의 우매한 부족이었다. 삼신의 도를 깨우쳐 광명 민족이 되기 위해 수행에 들어간 두 부족 가운데, 

웅족만이 굶주림과 추위 속에 무사히 수도생활을 마치고 환족이 되었다. 고고학 현장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문헌이 기록한 역사를 종합하면, 홍산문화는 환단의 문화로 귀결된다.


 

 


▲ 홍산문명 옥웅룡.

 

유적과 유물 대부분이 ‘사상 처음’이고 ‘최고最古’인 홍산문화를 중국 학계와 정부는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 오랑캐 땅이라 치부하던 만리장성 이북에서 발견된 문명을 

황하문명의 원형으로 자리매기게 된 난처함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다민족 역사관을 내세웠다.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 땅에서 발견되는 소수민족 문화는 모두 중국문화라는 

것이다. 황하문명보다 훨씬 일찍 태동하여 동북아문명의 기초가 된 환단의 문화가 중국 문화로 둔갑되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


우하량 유적의 원형, 방형 제단

우하량 전체 유적지의 한 가운데 위치한 제2지점에서 원형과 방형의 돌무지무덤이 발굴되었다. 조사 결과 

둥근 돌무지무덤 은 최하단의 지름이 22m에 달하는 3단 높이의 구조물로 파악되었다. 일반적인 돌무덤의 양식과 

다르게 지어졌다는 것은 이 돌 건축물의 용도가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산인들은 왜 3단의 돌무덤을 쌓았을까?


▲ 홍산문명 대표적 유적지인 우하량 제2지점 원형제단

 

▲ 홍산문명 대표적 유적지인 우하량 제2지점 원형제단 복원도



▲ 홍산문명 대표적 유적지인 우하량 제2지점 원형제단 돔형 전시장 내부


중국학자들은 그 실마리를 명, 청의 황제들이 천제를 지내던 북경 천단공원에서 찾았다. 그곳 환구단이 

우하량 돌무지무덤과 같은 모습의 원형 3단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하량 돌무지무덤은 다름 아닌 

홍산인들이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던 제단이다



▲ 
북경 천단공원 환구단 3단 원형 제단.




▲ 북경 천단공원 환구단 3단 원형 제단...>


각 층의 둘레를 따라 늘여 세워진 둥근기둥꼴 토기 또한 이돌무지무덤의  제단이었음을 말해준다. 

요령성 조양시의 덕보박물관 왕동리王冬力 관장은 “토기의 위쪽에 덮개가 없고 아래쪽에 바닥이 

없는 것은 천지가 하나로 통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제사장은 제단의 주변에 둥근기둥꼴 토기를 

둘러 세워 하늘과 통하는 소통로를 만들었다”고 이 독특한 토기의 뜻을 해석한다.



▲ 우하량 제2지점 원형 제단의 원통형 토기


제2지점의 방형 돌무지무덤은  ‘중심대묘에 해당하는 돌무지무덤’과 그것을 에워싼 ‘27기의 석관묘(돌널무덤)’로 

이루어져 있다. 최고 통치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묘를 주변의 작은 무덤들이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볼 때, 홍산문화는 

이미 씨족사회를 넘어선 계급이 분화된 국가 단계의 문명을 누렸음을 알 수 있다. 

천제를 올리던 제단과 최고 통치자의 무덤이 나란히 놓여있는 우하량 제2지점 유적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의 표현이다. 천원지방 구조는 동북아 제천단의 전형적인 형태다. 고조선의 유적인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 조선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세운 원구단, 북경 천단의 환구단, 이들 모두가 이 구조를 취하고 

있다. 5천5백 년 전 환단의 동이족이 세운 우하량 제단은 동북아 천제문화의 원형인 것이다.


우하량의 놀라운 옥기 유물들

그리고 우하량 유적의 무덤들은 공통적으로 많은 옥기 부장품을 소장하고 있다. 부장품을 가진 31기의 묘 가운데, 

신석기시대 무덤에서 흔히 보이는 토기와 석기는 단 한 점도 없이 옥기만 들어있는 묘가 26기나 된다. 특히 제2지점 

21호 묘의 남성 인골은 옥으로 옷을 해 입은 듯하다. 옥거북, 옥베개, 옥패玉牌, 옥벽玉壁 등 무려 20점의 옥기가

리에서 발끝까지 신신을 치장하고 있다.


 

▲ 우하량 제2지점 21호 묘

 

▲ 우하량 제5지점 중심대묘...

제5지점의 중심대묘에 누워있는 남성 인골은 양 귀 밑의 옥벽, 가슴팍의 옥장식, 오른팔의 옥팔찌, 그리고 양손의 

거북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신령한 거북이를 손에 쥐고 죽어서도 신과 소통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은 

제정일치시대의 제사장이자 정치적 수령이었던 인물로 보인다.

 

▲ 홍산문명 옥기 부장품 _ 거북

▲ 홍산문명 옥기 부장품 _ 옥웅룡


▲ 홍산문명 옥기 부장품 _ 곰형상


 

 

▲ 홍산문명 옥기 부장품 _옥고

 

옥은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영생불멸을 뜻한다. [주역]<설괘전>에서 건乾괘의 성격을 옥이라고 하듯이, 옥은 하늘의 빛깔과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한다. 때문에 홍산인들은 옥을 신분을 나타내는 장신구, 신과 소통하는 신물, 천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흔히 고대시대는 석기-청동기-철기 3단계로 구분한다. 하지만 발해연안 영역에서 옥기로 뒤덮인 수천 년의 유적지가 대량 발굴됨에 따라 중국학자들은 청동기 이전에 옥기시대를 설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산문화의 놀라운 문화 수준에 세계가 경탄하는 속에 한민족의 상고시대인 환단시대의 문화 실체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인류최고最古시원문명

홍산문명전

지 금까지 우리가 보고 배워온 대부분의 세계사는 으레 ‘4대 문명의 발상지’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6000년 전 서남아시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5300년 전 인도의 인더스강 문명, 5000년 전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 4000년 전 중국 황하문명이 그것입니다. 그 런데 이런 상식을 뒤엎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들 4대 문명

보다 3천 년 이상 앞선, 가장 오래 된 시원 문명이 있었음을 웅변하는 유적과 유물이 대거 발굴된 것입니다. 그것도 고대 

한민족의 수천 년 활동 무대였던 동북아에서, 문화와 문명의 불모지로만 알려졌던 저 만주 땅에서 말입니다.


 

▲ 홍산문화 유적 분포 위치_중국 요녕성과 내몽골자치구

 

인류의 창세 역사를 다시 쓰게 한 20세기 최대 역사 발굴 사건! 그것이 바로 홍산문화의 발견입니다. 

홍산문화의 발견으로 수천 년 동안 장막에 가려졌던 인류의 시원 문명이 마침내 그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발해 연안에 위치한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이곳엔 세계 역사학자와 고고학자, 문화인류학자들이 

주목하는 산이 있습니다. 적철광으로 뒤덮여 온통 붉은 색을 띄는 산, 홍산紅山!


▲ 홍산에서 바라본 적봉시 전경

홍산문화는 지난 1920년대 처음으로 인류 고대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세계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100년 동안 홍산문화의 발굴과 조사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홍산문화가 주목받는 까닭은 인류의 4대 문명이라 불리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문명보다 1~

3천년 이상 앞선 인류의 시원문명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초기 홍산문화

인 소하서문화는 홍산문화가 현 인류문명의 근원이 되는 뿌리문화, 시원문화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중국 학자들은 여러 발굴 결과를 토대로 홍산문화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요하 지역을 주변 

지역보다 훨씬 앞서서 국가 단계의 조건을 다 갖춘 문명사회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특히 홍산문화 유적지의 핵심지라 할 수 있는 우하량에서 기원전 3,500년까지 올라가는 대형 제단祭壇, 

여신묘女神廟, 돌을 쌓아 무덤의 묘실을 만든 돌무지무덤積石塚 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출현, 

글자의 형성, 청동기의 발명을 문명의 3요소라고 하지만, 제례문화를 보여주는 제단, 신전, 무덤 등의 발견도 

문명의 수준을 재는데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홍산문명 우하량 제2지점 제단과 무덤 유적

 

큰축구장 크기(150m×60m)의 제천행사 원형제단(가운데)과 방형 돌무지무덤(좌측)

이 문명의 발견으로 중국은 ‘황하중심 문명전파론’을 철회하고 ‘다중중심 문화발전론’을 인정하였습니다. 

나아가 홍산문화를 ‘중국의 요하문명’이라 부르면서 황화문명에 영향을 줬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보다 앞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最古) 문명이라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홍산 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된 지역이 예로부터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족의 주된 활동무대

였다는 것입니다. 밝은 햇빛 아래 제 모습을 드러낸 유적과 유물들 또한 한결같이 홍산문화가 동이족의 

역사요 문명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홍산문화는 한민족 역사의 뿌리이자 동북아시아

의 시원문명인 것입니다.

오랫동안 만리장성 바깥을 오랑캐의 땅이라 부르며 천대했던 중국으로서는 황하문명보다 수천 년 앞선, 

동이족 홍산문화의 출현이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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