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회] <문장>지 폐간과 시<靜夜 2> / 아버지 조지훈-삶과 문학과 정신/[7장]아버지의 문학 歷程, 10대와 20대 초반/2017/08/25/08:00 조광렬

작성자曉泉|작성시간17.08.23|조회수1,495 목록 댓글 1


[38회] 아버지 조자훈-삶과 문학과 정신 / 조광렬


[7장]아버지의 문학 역정(歷程) 

      10대와 20대 초반


#<문장(文章)>誌 폐간과 시 <정야(靜夜) 2>


   1941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아버지의 유유자적은 파탄에 직면하게 된다. <문장> 지 폐간호를 받고 신선 골 노파집에서 술에 취하여 방성통곡을 했다 하셨다. 두께가 두툼한 그 폐간 호에는 아버지의 시 <정야(靜 夜)2>가 실려 있었다. 


   한두 개 남았던 은행잎도 간밤에 다 떨리고

   바람이 맑고 차기가 새하얀데


   말없는 밤 작은 망아지의 마판 꿀리는 소릴 들으며 

   

   산골 주막방 이미 불을 끈 지 오랜 방에서

   달빛을 받으며 나는 앉았다 잠이 오질 않는다


   풀벌레 소리도 끊어졌다


   이 시는 페간호에 너무나 부합하는 시였다고 훗날 회고하셨다.

   그러나 이 시는 <문장> 페간호를 위하여 써 보낸 시가 아니요, 초기에 시단에 등단하기 위해서 그 잡지에 투고했다가 낙선된 작품이었다. 폐간호를 꾸미기 위해서 아버님께 원고청탁을 두 번이나 보내도 어디 갔는지 소식이 없으니까 잡지사에서 몰서(沒書)한 원고뭉텅이에서 이 시를 골라 실은 모양이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가슴이 아파 넓적다리에까지 눈이 쌓인 밤, 초롱불을 들고 신선(神仙)골 노파의 집에서 술이 취해 자빠지며 일어나며 돌아오던 밤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종간호가 나붙은 사옥 앞에서 울며 작별하던 노 인쇄공들의 모습이 어른거려 산골에서 혼자 목놓아 우셨던 것이었다.


            시 <정야(靜夜 1> 시비(주실마을, 지훈 시공원 내)


                <문장(文章)> 제1호 (출처: 민족 대백과사전)


   아버지가 이 <문장지를 통해 등단 하기도 했지만 이 문학지가 우리말과 문학을 위해 기여해 온 바가 워낙 컸기 때문에 그 폐간소식에 접한 아버지의 상심은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우리말과 시의 터전에서 또 한 모퉁이를 잃은 비분을 참아내지 못하였다. 이어서 진주만 폭격이 있고 나서는 아버지 서실의 수색이 있었고 싱가포르 함락의 비보가 전해지던 날은 주재소(駐在所) 수석이 와서 축하행렬을 명령하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종일 통음하다가 졸도하여 전보를 받고 월정사로 내려오신 나의 할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 오시게 된다. <암혈(岩穴)의 노래>, <비혈기(鼻血記)> 같은 것이 그 무렵의 작품이었다.

, <암혈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야위면 야윌수록

   살찌는 혼()


   별과 달이 부서진

   샘물을 마신다.


   젊음이 내게 준

   서릿발 칼을 맞고

   창이(創痍)를 어루만지며

   내 홀로 쫓겨 왔으나


   세상에 남은 보람이

   오히려 크기에

   풀을 뜯으며

   나는 우노라.


   꿈이여 오늘도

   광야(曠野)를 달리거라.

   깊은 산골에

   잎이 진다.




*관련 참고자료

아래 제목을 클릭하세요

문장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문장 (잡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진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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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曉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10 의양 (宜陽) 17.09.05. 09:07
    2017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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