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회] "지훈 회상 이제(二題)" - 박목월 / 아버지 조지훈 - 삶과 문학과 정신 / [15장] 문단에서 본 아버지의 시세계 그리고 인품 / 2017/10/12/08:00 조광렬
작성자曉泉작성시간17.10.05조회수539 목록 댓글 1[86회] 아버지 조지훈- 삶과 문학과 정신 / 조광렬
[15장]문단에서 본 아버지의 시세계 그리고 인품
# 선생의 "지훈 회상 이제(二題)" - 박목월(朴木月)
한편 박목월 선생은 "지훈 회상 이제(二題)"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였다.
생전의 박목월(1916 ~ 1978) 선생(출처: 시사위크)
“그는 월정사에서 돌아와, 다시 낙향할 무렵에 경주로 들른 것이다. 한 주일쯤 같이 있었다. 해방될 때까지 그는 내가 사귄 유일한 시우(詩友)였다. 그의 첫 인상은 소탈하면서도 은근하고, 무척 동양적인 인품을 느끼게 하였다. 그의 걸음걸이가 인상적인 것이었다. 전혀 그 시대의 청년답지 않은, 그리고 한가롭고 그리고 그야말로 '한만(閑漫)하였다. 이와같은 그의 풍모에서 나는 절기있는 선비와 세련된 풍류객의 양면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 느리게 한가로운 걸음걸이가 침착한 그의 인품을 나타낼 뿐 아니라, 지극히 구슬픈 가락으로 느껴졌다. 팔을 휘저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그를 앞세워두고, 저 걸음걸이에 알맞게 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었던 것이다.
...밤물결처럼 치렁치렁한 장발을 날리며, 경주역두에서 내게로 걸어나오던 지훈은 틀림없이 수수한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웃는 눈매며 허연 이마까지도 나의 기억에 선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오래된 사진첩을 뒤지다가, 우리들이 함께 박은 사진을 발견하고 놀랐다. 석굴암에서 가즈런히 서 있는 사진에 그는 희끄무레한 양복을 입고 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해방되기 전에 그와 내가 만난 것은 단 한 번뿐이며 그러므로 거짓이 있을 수 없었다. 또한 가벼운 기분으로 집을 떠나 친구를 찾아 온 그가 여러벌의 옷을 갖추어 가지고 다닐 리도 없었다.
석굴암에서 찍은 아버지와 박목월 선생
그렇다면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흰 두루마기를 입은 지훈의 모습은 어떻게 된 것일끼. 나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전혀 나의 기억의 착각이지만 그렇다 하여 양복을 입은 지훈의 모습과 바꿔놓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그의 모습만이 내게는 실감을 자아내는 것이며, 비록 그것이 나의 무의식인 조작에서 빚어진 하나의 영상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러도 그럴 만한 이유가 그의 어느 면에서 풍겨지고 있었음에도 틀림없다. 그것은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받게 된 장자적(長者的) 풍모와 선비적 인상과 한국적 전통에 뿌리박은 멋과 풍류, 혹은 그의 작품에서 풍겨지는 한국적 정서 탓이라 할 수도 있다. 그가 작고한 지금에도 지훈이라면 나는 흰 두루막 자락을 펄럭이는 준수한 모습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청록 3인의 생전 모습, 외쪽부터 아버지, 벅목월, 박두진 선생
... 그가 작고하기 전에 우리 세 사람이 자리를 같이한 것은 5월 11일 토요일 오후였다. 평소에 좀처럼 자기가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이 없는 두진의 연락으로 지훈댁에 모이게 된 것이다. 용건은 청록문학선집을 내자는 것이었다. 두 시간쯤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저녁 먹고 가."
그는 일어서서는 우리를 굳이 만류하였다. 하지만 앓는 사람이 있는 어수선한 집안에 손님까지 곁들이면 폐가 될까 염려하여 굳이 사양하였다. 밖으로 나와 구두끈을 매는 우리를 보고,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한 번 모여 저녁이라도 함께 하려고 하였는데..."
지훈의 말이었다.
"몸조리하시요."
우리는 악수를 하였다. 그의 크고도 섬세한 손, 뜨겁지도 싸늘하지도 않은 손, 지훈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보내 주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실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 셋이 오붓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만 같지 않았다.
"인간은 늙는 도중이 가장 추잡한 거야."
이것은 생전에 어느 주석(酒席)에서 그가 하던 말.
그는 늙음을 거부하고, 영원(永遠)으로 되돌아간 것일까. 지훈은 가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