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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무르티 [교육에 대하여] 역자 후기

작성자벅수|작성시간08.07.25|조회수19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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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가을이 왔습니다. 또 한 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책의 번역을 마쳤습니다. 이번에는 “교육에 대하여”라는 책입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20 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저로서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참으로 많이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편집자 서문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 여러분들께서도 읽어 오시면서,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유와 사랑과 지성과 창조와 진리에 대한, 그리고 완벽한 주의에 대한 이해와 감동으로 말씀입니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 아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적도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의 중요한 내용은, 케이 학교와 같은 참된 교육 마당의 필요성과, 기억력의 배양만이 아닌 ‘배움’의 문제와,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과, 과학적인 마음과 종교적인 정신의 융합이라든가, 하여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만, 저에게는 특히 이 한마디, “지식의 습득에 드는 시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 세상 그 어디에 시간이라는 것이 있단 말입니까?” 하시는 말씀은 새삼 잔잔하게 퍼지면서, 그 음성까지 들려오는 듯합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렇게 시간도 공간도 없는 가운데에서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완벽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하셨으니까요.

책 내용에도 학생들에 대한 세세한 가르침과 배움 얘기가 있지만, 결국은 인간을 아주 완전히 다르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의 관심은 거기에도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사회에서도 크리슈나무르티 학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한 사람 두 사람 더 늘어가고 있지만, 그리고 이제는 서서히 사람들이 벽을 허물고,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외국에서는 저렇게 도도하게 흘러가는 흐름이 우리는 왜 이다지도 느릿느릿 흘러갈까요?

분명히 우리 사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한 30년 동안, 번역된 케이 책만 해도, 수천만 권이 팔렸다고 하는데 말씀입니다. 그 동안은 왜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를 않았을까요? 하다 못 해, 여태까지 크리슈나무르티 책을 번역한 사람만 해도 백 명은 족히 되지 싶은데요. 그런 사람들이라도 한번 만나볼 생각들은 왜 아니 하였을까요? 이 흐름은 누가 나서서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흐름이 결코 아닌데 말씀입니다.

하기사 그래도 엄청 나아진 것입니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저로서는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기에,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그 아이들에게, “여러분들은 제발, 나 같은 인간은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싶었기에, “나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달라”고 가르치고 싶었기에, 이대로는 결국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 분명히 보였기에, 그때 시간강사로서 몇 개 대학에서 담당하고 있던 강좌들의 강의 시간을 쪼개어가면서, 정말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케이 가르침을 소개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1998년도부터 온전히 시범강좌로 자리 잡았습니다. 탁월하게 지성적인 몇몇 교수님들의 격려 하에, ‘시범강의’로서 강의계획서까지 제시하고 진행한 강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강의를 좀 공식적으로 개설하자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무처장 앞으로 쓴 처절한 글도 있습니다. 그 글은 강의계획서와 함께 제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게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제가 대학에서 크리슈나무르티 가르침을 소개하는 강의를 1993년부터 했고, 인터넷으로도 활동하고 했으니, 당연히 그 동안의 성과도 있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강의가 진행되는 학기 중에만도, ‘견성,’ ‘득도’, ‘도통’ 했다고 알려 왔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돈오’라는 용어를 쓴 학생도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은 끝내 이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는 데, 인생을 바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전한 인간으로서 말씀입니다. 그 학생들 대부분이,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을 접하기 이전에, 그렇게 득도나 견성이나 돈오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도 아닙니다. 그렇게 전혀 예기치 못 한 순간에 문득 찾아오는 것이 ‘진리’라거나 ‘사랑’이라거나 ‘견성’이라거나 ‘돈오’라거나 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이것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이렇게 완전히 새롭게 시작되는 일인 것입니다. 저의 오만이나 착각이 아니라, 이것은 참으로 엄청나게 의미 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이런 일이 꾸준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이 사실은, 어떤 사정으로 하여 2003년도 태국 국제 크리슈나무르티 위원회 모임 자리에서도, 다른 사람에 의하여 공표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몇 가지는, 우리 사회 지성이신 몇 분에게 보고해 드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그런 사실들에 대한 자료들이 아마도 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에 대하여 하고픈 말이 참 많습니다. 제 자신이 현대 교육의 피해자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책의 독자 여러분들도 다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까지의 그 입시 지옥뿐만 아니라, 대학에 가서의 그 답답함.. 더구나 저는 유신 정권 시절, 기계 특성화라고 모집한 지방의 한 국립대학을 다니면서, “교육이 밥벌이 수단일 뿐이란 말인가?” 하는 것에, 너무도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전공을 다 포기하고 인문학인 국문학을 택해서, 푸른 꿈을 안고 서울로 갔던 것입니다.

그때 이미 크리슈나무르티 책을 접한 지 상당히 되기도 했지만, 당시 제 생각은, 최소한 내가 살아온 인생 과정이라도 세상에 내놓고 죽겠다. 그런 글이라도 쓰면서 살겠다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정말 못 먹고 산다면 택시운전은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대학 때 이미 운전면허를 1종으로 따 놨었지요. 참 절실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진학한 대학원이었는데, 막상 인문학 분야라는 게, ‘이게 인문학인가? 인간이 없는데 이게 무슨 인문학인가?’ 하는 생각만 떠오르게 하면서, 정말 또 이것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취업률 100 %였던 전공을 포기하고, 교육을 받으러, 뭔가를 배우러 다시 비싼 돈 내고, 대학원이라는 곳에를 진학했는데, 교육이 아니라 부패만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복종하는 법만, 순응하는 법만 가르쳤습니다.

거기에 순응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 인문학을 하는 학도들, 정말 ‘인간’에 뿌리를 둔, ‘진리’에 뿌리를 둔, ‘자유’와 ‘사랑’과 ‘지성’과 ‘창조’에 바탕을 둔 학문을 좀 해 가시기 바랍니다. 이 책 내용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우리가 기성세대에 굴복하고 복종하고 순응하고 타락하고, 그들과 함께 부패해 간다면, 젊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인문학이라는 것이 왜 돈으로만 환산되어야 한다는 말이겠습니까? 이제는 젊은이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보기에도 드문 세태로 되어버렸지만, 참으로 젊은 사람이라면 그런 세태에 무턱대고 따라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낙향’할 것을 각오하고, 그 부패에 대하여 단 한마디 했던 것뿐입니다. 제 시집 뒤에다가 ‘양심선언’을 해 놓은 것이지요.

이제 낙향한지 10년이 되었고, 대학원에 진학한지는 22년째가 되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그 사이 15 년을 오로지 홀로 키워온 대학 강좌마저 폐강 당하는 꼴이네요. 그 22 년 동안, 차비도 제대로 안 되는 시간 강사료 말고는, 월급이라는 걸 단 한번 받아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저는 오로지 이 강좌 하나 살려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거대한 나무에 꽁꽁 묶인 몸으로, 눈앞에서 자식이 성폭행을 당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심정입니다. 열다섯 살밖에 안 되는, 참으로 청아하게 피어나던 예쁜 딸아이가 말씀입니다. 이것은 제 젊음을 온통 다 바친 일인데 말씀입니다. 더구나 몇 천 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일인데 말씀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전환기에서, 그러한 인류사적인 전환기에서, 인간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학생들에 대하여, 아이들에 대하여, 참으로 관심이 많던 한 인문학도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매장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케이 학교와 같은 학교가 세워지는 것이 금방 되는 일이 아니라면, 정말 이런 강의라도 각 대학에서나마 하루 빨리 진행을 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최소한 그만한 지성은 살아 있다고 보거든요. 저는 그런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으니까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살 것 아닙니까.

사회에 그대로 적응하지 말라는 케이 할배 말씀이, 폭력적으로 대응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교육을 받겠다는 학생의 처지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고 봅니다. 교육은커녕, 기어코 당장 밟아 죽이겠다는데도, 그냥 그렇게 고이 죽어가라는 말씀이겠습니까? 그 때문에 학교를 자퇴하는 어린 생명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생명을 버리는 어린 목숨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정신까지를 폭력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 어린 생명들이 한번 피어보지도 못 하고, 그렇게 사라져가야 한단 말입니까! 10 년 전에도 [선언문]에 해 놓은 소리지만, 제발 이제라도 마음들 좀 달리 잡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바로 이 책 본문에도 이 말이 고스란히 그대로 나오지요?

젊은 사람들에게 결코 평범하게 살아버리지 말라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번역해 나가면서 제가 젊은 날, 읽었던 케이 책들도 꼭 이 말씀을 하신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케이 책을 읽어가다가 보면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번역을 하면서도 문득 번역을 멈추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거나, 그 아래 산봉우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다거나, 그 산 능선을 따라 또 다른 봉우리를 바라본다거나 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면서, 여러분들께서도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이 책 내용에도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만, 크리슈나무르티 말씀 중에는,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이냐 보다는, 선생을 어떻게 길러낼 것이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키워진 아이들 가운데서도, 많은 아이들이 아마도 결국은 선생님이 되지 싶습니다. ‘새로운 세대’를 키우지 않고 어떻게 사회가 보다 온전하게 지켜진다는 말이겠습니까? 이 책은 어린 학생들에게도 추천해야겠지만, 선생님들과 사범대 학생들에게 더 추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을 잘 이해하고, 그런 마음, 그런 가슴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선생님이라면, 그런 인간이라면, 그 가르치는 영역을 떠나서, 그의 직업이 무엇이냐를 떠나서, 그 존재 자체가 교육적인 효과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한 학교에 그런 선생님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향기가 온 학교로 퍼져 갈 것입니다. 거기에 또 한 사람이 더 있다면, 온 학교가 활짝 피어나겠지요. 다시 되풀이 되는 말씀입니다만, 그런 사람 다섯 명만 모여도, 그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고 하셨던 말씀도 새삼 기억이 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존재 자체가, 단 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엄청난 교육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크리슈나무르티를 ‘케이 할배’라고 부르곤 했습니다만, 그 케이 할배가 바로 이 세상의 향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퍼져갈 향기지요. 그런 사람들이 정말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크리슈나무르티 인도 재단에서 1974년에 초판이 나왔고, 판을 거듭하여 2000년에 출판된 “교육에 대하여(On Education)"라는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고요아침“ 출판사에서 연이어 번역, 출판되고 있는 ‘대하여 시리즈[On Series]’의 원조가 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 역시 크리슈나무르티 번역 센터 까페 운영자, 길님 진형훈 씨가 최종 교정을 맡아주었습니다. 물론 이 시리즈 출판사인 고요아침 편집부장 김창일 씨의 세심한 교정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여기에 두 분께 감사를 표합니다.

이제 또 계절이 계절을 몰고 오겠지요.

저기 하늘에 새털 같은 구름이 피어 있습니다.





2007. 10.

옮긴이
벅샘 김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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