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거야
미안해서 못 하는 거야
하기 싫어 안 하는 거야
왜 그래 / 원태연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안에 존재하는 영혼의 불꽃이
당신을 사랑하도록 나를 운명짓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 양광모
얼굴조차 잊었다
생각 수록 더욱 멀어질 뿐
빈 얼굴만 세월에 걸려 있다.
추억 / 김초혜
암 수술로 위를 떼어낸 어머니
집에 돌아오자 제일 먼저
세간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아팠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인가를 하나씩 버리는 것이 아파서
자꾸 하늘만 쳐다보았다.
파랗게, 새파랗게 깊기만 한 우물 같은 하늘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눈물도 못 흘리게 목구멍 틀어막는 짜증을 내뱉었다.
낡았으나 정갈한 세간이었다.
서러운 것들이 막막하게 하나씩 둘씩 집을 떠나는 봄날이었다.
막막이라는 말이 얼마나 막막한 것인지,
그 막막한 깊이의 우물을 퍼 올리는 봄날이었다.
그 우물로 지은 밥 담던
방짜 놋그릇 한 벌을 내게 물려주던 봄날이었다.
열여덟 살 새색시가 품고 온 놋그릇이
쟁쟁 울던 봄날이었다.
입춘 / 배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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