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과 사명에 대한 예화모음
봉서방
구두를 볼 때마다
세계적 설교가인 맥킨토시(H.R Mackintosh)박사가 스코틀랜드에서 목회할 때 친구가 방문했다. 그날 예배 때 한 장로가 기도를 인도했는데 이 저명한 학자가 큰 감동을 받아 맥킨토시 목사에게 물었다.
"오늘 기도한 장로가 어떤 배경을 가졌나?"
"그 장로의 직업은 구두 수선공이네. 그 장로는 날마다 냄새나는 남의 구두를 수선할 때 예수님의 신발이라고 생각하며 일한다고 하네."
이 말을 듣고 학자 친구는 왜 그 장로의 기도가 남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깨달았다. 그 장로는 구두를 수선하는 것이 평생의 일이었으나 구두 한 켤레 한 컬레를 대할 때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부르심으로 알고 성심껏 기쁨으로 일했던 것이다.
나의 사명은
나의 사명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1950년대 세계 선교의 영웅 짐 엘리어트가 정글에서 피를 흘린 후 발견된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일, 그것을 위하여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들을 버리는 사람, 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청춘과, 부와 명예와 권력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을 위해서 내 삶이 불타기를 원합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본회퍼 목사)
1939년 뉴욕 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한 청년이 승선하였습니다. 그가 아직 젊은 나이에 독일로 향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 정권에 의해 세계 대전에 광분해 있었으며 유태인 대학살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독일의 교회는 이런 비인간적인 만행을 바라보면서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히틀러 만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일 교회의 잠을 깨우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자 그는 유유히 조국 독일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 날 그의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동안 파도처럼 일던, 몹시도 불안해하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로 돌아간 그는 나치의 학정에 침묵만 지키고 있던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죄상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결국 투옥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탁월한 학문적 재질을 알고 있던 미국의 교회는 그를 구출하려고 백방으로 갖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띄웠습니다.
"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행복한 인간이었고, 성공한 목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걸어갈 방향과 목표와 할 일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긍지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절대 절명
몇 해 전 듀크대학과 테네시대학 사이에 전례 없는 미식 축구경기가 벌어졌습니다.
경기가 불과 몇 초밖에 남지 않았을 때 듀크 대학이 13:9의 스코어로 테네시대학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듀크 대학팀이 테네시 쪽을 향해 볼을 찼습니다. 이때 테네시 대학팀의 레드 하아프라는 젊은 선수가 이 볼을 잡아 듀크 진영의 골라인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이 훌륭한 블로킹으로 그를 원조하는 가운데 하아프는 전력을 다하여 질주했고 마침내 골라인을 넘어 텃치 다운을 기록하고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숨 막히는 광경을 지켜보던 관중은 열광하여 일대 수라장을 이루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이 훌륭한 선수 하아프는
“나는 이 한 번의 챤스를 잡기 위해 오늘 오후를 꼬박 기다렸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듀크팀의 볼을 가로채어 상대편 골라인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저 골라인을 넘어야 한다는 절대 절명의 사명감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그의 행할 모든 것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도 그를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살기 바라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일이 우리 생활 가운데 으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가로막거나 동요케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사명감
2차 대전 때. UBF의 이야기는 퍽 감명스럽습니다.
독일의 공습으로 인해 런던은 밤낮으로 폭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심술궂은 히틀러는 많은 폭탄에 시한장치를 하여 투하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습이 지난 뒤에도 시민들은 폭탄이 언제. 어디에서 폭발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폭탄이 투하되자마자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30분. 어떤 것은 1시간. 어떤 것은 몇 시간 후에. 또 어떤 것은 몇 일 후에 폭발되도록 시한장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공습경보가 끝나도 런던 시민들은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 영국의 귀족인 써포크 공작은 저녁에 기도하던 중에 바로 이 일을 그가 담당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강한 부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이 써포크 공작은 자기 운전기사. 여비서와 함께 시한폭탄을 처리하는 UBF라는 결사대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시한폭탄이 떨어진 곳을 찾아가 죽음을 무릅쓰고 무려 34개의 시한폭탄을 해체한 것입니다. 35개째를 처리하던 순간 폭탄이 터져 써포크 공작과 일행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이름도 빛도 없이 죽었으나 많은 런던 시민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소명으로 여겨졌기에 그들은 용기 있는 희생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명예나 지위나 돈은 문제가 아니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그런 것들은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내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하는 불타는 소명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많이 있는 나라는 발전하고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용기 있는 희생. 그것이 곧 창조적인 삶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 때에 성공적인 무역업자 한 사람이 중요한 대사직을 임명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커다란 명예를 베푼 여왕에게 감사했지만 이 직무를 면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자기가 외국에 나가면 자기의 사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고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왕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외국에 나가 나의 일을 돌보시오. 내가 그대의 일을 돌보리다.”
그래서 그분은 대사직을 수락하고 외국에 몇 년 동안 나가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여왕은 약속한 대로 그의 사업을 아주 잘 돌봐 준 것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의 일을 가장 꼭대기에 두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그들의 시간과 재능을 그들의 개인적인 즐거움이나 계획에 차질이 없을 때만 주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을 첫 번째에 버금가는 중요한 자리에 두려 고는 하나 그들의 삶에서 주님과 주님에 대한 봉사를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기를 주저합니다.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으뜸 되는 자리에 올려놓아야 하며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모든 것 중에서 우선해서 모시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가장 큰 축복을 주십니다.
당신은 주님을 당신의 삶에서 첫 번째로 모시고 있습니까?
일터에서의 사명
사업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책임은, 구원받지 못한 사업계의 동료들 앞에서 정직하고 순결한 성품을 지킴으로써 그러한 생활을 보고 저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당신이 실수를 해서 사장이 당신에게 호통을 친다면. 그것은 당신이 잘못한 일이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는 호통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의 경건한 생활 때문에 사장이 화를 냈는데 당신이 그것을 참는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우리에게 부여된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매일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는 경건치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수년 전 내가 신학생이었을 때 일자리를 구하러 어느 회사에 찾아갔는데 거기서 일자리를 얻었다.
나는 어떤 부서에서 작업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그 부서 부장이 나를 자기 책상 맞은편에 앉혀놓고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은 “내가 낚시 대를 만드는 기계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자네를 이리로 빼내왔네. 왜냐하면 자네 옆에서 일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거든. 아무쪼록 나는 자네가 그 친구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네.”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그리스도인이야. 우리는 여기서 불신자들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을 원한다네.”
나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또 그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증거 할 신앙고백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매일 자기와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신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기로 했다면 당신은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일로 삼는 이들에 대해 요구하는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공에 대한 당신의 목표, 기준, 방법 그리고 성공을 재는 척도에 대해서도 다시 평가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진 청지기 사명을 잘 감당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는 일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명감
고대 중국 전국시대에 유방이 항우와 싸울 때의 일이다. 유방의 부하 장수중에 번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번괘가 이끄는 부대가 항우의 부대에게 포위되어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번괘는 전령으로 하여금 육군에게 위급하다는 정보와 함께 구원을 요청하도록 명령하였다.
책임을 맡은 전령은 미친 광인으로 가장을 하고 발각되었을 때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 입 속에 불덩어리가 된 숯덩이를 집어넣어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전령은 얼마 가지 않아서 적에게 발각, 체포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벙어리, 미친놈으로 인정되어 무사히 석방되었다. 그는 마침내 임무를 완수하였고, 이로 인하여 번괘는 원군을 받아 그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열국을 통일시켰다.
이처럼 자기의 소중한 혀를 불태우면서까지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이 되자,
주님을 섬기는 마음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근심. 걱정. 번민 등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
나는 오늘까지 무척 괴로운 일을 당하기도 하고, 칼날로 위협당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어떤 때에는 얻어맞고 아래위의 이빨이 부러 지기도 하고 하여, 그 때문에 나는 때때로 생명의 위험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예수의 제자 바울 역시 그러했다. 그는 신변에 위기가 닥치면 주 예수의 모습을 우러러 사모했다. 그리스도는 "바울아! 힘을 내어라"고 격려해 주셨다. 앞이 막막할 때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일그러진 마음을 또 한 번 돌이켜 보고 마음을 돌리는 일이 우리들의 종교이다.
"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신기한 힘이 솟아오른다. 우리들의 속죄를 위해 못 박히신 주님의 모습을 앙모 하여라! 우리들의 이 마음가짐을 맛보게 된다면 온갖 근심과 걱정 불경기도 충분히 타게 되어 질 것이다."
인생고와 사명감
미국 알펜스라고 하는 곳에 어떤 여자가 반신불수가 되어 오랫동안 그저 침대에만 누워 있는데 그는 이러한 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결심하고 시작한 것이 그림 그리기였다.
유명한 화가가 된 그는 특별히 알펜스주에 있는 모든 들꽃, 즉 야생화들을 전부 다 모아 오라고 해서 야생화를 전부 그려 500여 종류를 그렸다. 그것을 다른 사람이 다 보고 어떻게 잘 그렸는지 하버드 대학에서 사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주 당국은 이런 보배를 다른데 보낼 수 없다하여 주의 보배로서 예술품으로 잘 보관한다고 한다. 불치의 병으로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발견한 사람이 사명감에 불타 고난을 승리로 극복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다.
특별한 사명
대학교를 졸업하는 어떤 젊은이가 구원받지 않은 자기 친구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의 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은 졸업한 후 공군장교가 되어 각기 다른 곳으로 배치를 받기 되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자기 친구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갖고 있었지만 그의 소재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친구인 톰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6개월 후에 그는 터어키로 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군사기지에 있는 상점의 계산대에서 자기 친구인 톰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상점 밖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톰의 부대는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미국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 톰은 특별한 사명을 띠고 터어키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얼마동안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은 톰의 결혼생활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과 이로 인해 고독을 느낀 톰이 행복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톰은 그리스도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정말 행복하고 평안하게 보여. 나는 지금 그것을 바라고 있단 말이야." 이 말은 그리스도인 친구로 하여금 간증과 복음을 나누게 만들었고, 드디어 톰은 주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틀 후에 톰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터어키를 떠났습니다. 톰의 특별한 사명은 누가 부여했을까요? 공군이었을까요, 하나님이었을까요
단 한 분만을 위하여
이제 갓 인수를 받은 젊은 목사가 어떤 교회로 부임하였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임 목사를 환영하는 만찬회가 열렸는데 어떤 부인이 젊은 목회자에게 다가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목사님께서는 7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 시켜 주어야 하는 힘든 일을 맡으실 생각을 하시게 됐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그러자 젊은 목사는 주저함 없이 대답하였다.
"제가 이 도시에 온 것은 7백 명의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단 한 분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온 것 입니다. 그분이기쁘시기만 하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저절로 잘될 것입니다."(RECORD OF CHRISTIAN WORK)
불에 타 없어지기를
1806년 선교사 헨리 마틴은 인도에 도착해서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위하여 불에 타 없어지기를 원하오." 그는 건강도 사회적 지위도 교육적 명예도 찬란한 경력을 가질 기회도 모두 버리고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인도에 왔다. 그것은 어떠한 대가도 바란 행동이 아니었다.
그는 알메니아를 선교하기 위하여 여행을 하던 중 31세가 되는 1811년 열병으로 쓰러졌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는 교목과 선교사로서 또 한 신약을 힌두어와 페르샤어로 번역하는 일에 난관을 돌파하고 성공적인 생애를 보냈다.
그는 예수를 위하여 타오르는 촛불이 되어 어두움을 비추었다.
벽돌공의 자세
지혜의 임금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하루는 성전 건축현장을 방문하고 일꾼들을 돌아 보았다. "왜 당신은 여기서 일을 합니까? " 한 일꾼이 대답을 했다. "아 그야 뭐 배운 것도 없고 이럭저럭 살아가려니 죽지 못해서 하고 있지요." 얼마쯤 가다가 다른 일꾼에게 똑같이 물었다. 그 일꾼은"배운 도둑질이 일하는 것뿐이니 놀고먹을 수가 있나요, 그럭저럭 한 세월 보내는 것이죠." 왕은 얼마쯤 가다가 해진 옷을 입고 일하는 청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왜 여기서 일을 하느냐 구요? 정말 난 기뻐서 죽을 지경이지요. 자, 보세요. 나는 지금 하늘나라의 영광을 이 땅위에 드러내는 성전을 바로 이 손으로 돌을 쌓고 있지 않나요?
이 손으로 쌓는 벽돌 한 장이 이 위대한 성전의 작디작은 부분일지언정 큰일을 이룬다는 것은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자 와 그렇지 못한 자의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스테픈 올린의 꿈
뉴잉글랜드 감리교단의 하나의 빛이었던 스테픈 올린은 한때 그의 사역에 대하여 크게 낙심하고, 목회 직을 떠나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떤 의미심장한 꿈을 사용하셔서 그의 영적 소망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는 자기가 굉장히 딱딱한 바위를 깨 곡괭이를 들고 일하고 있는데, 팔에 힘을 주어 바위를 치고 또 쳐도 표면이 조금도 부서지지 않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소용이 없구나. 이제는 더 이상 일하지 않을 테야"하고 소리쳤다. 갑자기 한 위엄 있는 나그네가 그의 곁에 나타나더니 "너는 이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네,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그런데 왜 너는 그것을 그만 두려고 생각하느냐?" "모든 것이 헛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위가 깨어지든 안 깨어지든 너의 임무는 쪼개는 것이다. 오직 그 일만이 네 손안에 있는 것이지, 그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자 계속하라!"
그는 힘 드는 수고를 다시 시작하였다. 갑자기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스테픈 올린은 꿈에서 깨어나 충성만이 그에게 요구되는 전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떠나기로 결심했던 그 일을 다시 되돌렸고, 얼마 후에는 그의 사역에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과업에 대하여 결코 낙심하지 말라. 합당한 때에 주님께서 그것을 번성케 하실 것이다.
사명을 다한 교환수
1908년 8월 폭풍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이었다.
미국 뉴멕시코 폴솜 읍의 전화 교환수에게 고원지대에 폭우가 내려 존슨 메사시가 큰 홍수를 만났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 홍수는 폴솜 읍을 향해 오고 있었다. 교환수 루크 여사는 68세 곱사등이었는데 자신이 피신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으나 그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피신시켰고 전화가 없는 집은 로버트 펜웰씨로 하여금 긴급히 연락하도록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을 피신시킨 교환수는 끝내 자신은 피신하지 못하고 홍수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성경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였다(요15:13).
생명을 걸고
옛날 로크리스라는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국회에다 새 법안을 제출할 때에는 그 목에다 밧줄을 걸고 연단에 올라가게 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만일 그가 제안한 법안이 통과 되면 그 목에서 받줄을 풀어주고 실패하면 그가 올라선 연단을 치우므로 그대로 교수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법을 제정하려는 사람의 책임이 강한 것이다
자기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1840년, 리빙스턴은 런던선교협회 소속 의료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에 파견되었다. 이 때 그는 한창 젊음을 발산하는 27세였다.
처음에는 사람의 발길조차 드문 두메까지 들어가 전도 사업에 진력했다.
그러다가 전도와 의료를 겸하면서 아프리카 각지를 탐험하기 시작했고 세계 사람들에게 오지의 땅인 아프리카의 실상을 밝혔다.
그는 탐험을 계속하는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1871년에는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는데, 다행히 스탠리의 수색 탐험대를 만나 구출되었다. 이외에도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만났는데 그 때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리빙스턴은 자신의 경험으로 "사람은 자기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 신념을 가지고 계속 탐험과선교를 강행했다.
그 후 리빙스턴은 스탠리 일행과 함께 조사를 계속하다가 1873년 뱅귀울루 부근의 마을에서 이질로 사망했다.
교회 교사의 성실
스펄전 교회교사 성실 복음 사명 책임감 설교가 회개 결실
스펄전은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가였다.
스펄전이 16세이던 1850년 콜체스터의 한 교회에서 조그만 모임이 있었고 스펄전은 이 집회에서 복음을 접하고 큰 변화를 받았다
그런데 이날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이날 교회학교의 한 교사는
날씨가 나빠도 교회에 미리 가 조금 후에 온 17명을 위해 열정을 다해 복음을 증거 했다. 그 결과 스펄전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교회사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결실]은 [최선의 성실]에서 비롯된다.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시편 31:23)
댓 가
독일의 신학자 본훼퍼는 그 당시 독일 교회를 바라보면서 독일 교회가 왜 그렇게 무기력해 졌는지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따르는 대가를 치르기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을 받는 데는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이무 것도 없다. 하나님이 값없이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하신 것이다.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그러나 이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을 강조할 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까지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는 값비싼 대가가 그 배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우리 주님처럼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심장이 고동이 멈추는 바요 그 순간에 내 몸의 더운 피가 식는 바로 그 순간에 "아버지께서 내개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습니다."{요17:4절 참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주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그 모든 대가를 기쁨으로 지불할 결의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얼굴
사람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니까 사십이 넘은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 온 인생을 대변해 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십 전의 인생은 자기의 얼굴을 만들고 있는 시기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사십 이후의 얼굴은 그 사람의 삶과 성품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얼굴은 그의 인품이 빚어내는 예술이다. 얼굴은 개성이 창조하는 일종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즐거운 마음과 태도는 즐거운 얼굴을 만들고, 슬픈 얼굴은 비애의 얼굴을 만든다.
짜증스럽고 불만스러운 마음은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얼굴을 만들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 6장 15절을 보면 전도하다가 잡혀 온 스데반의 얼굴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우리가 스데반이 받았던 이 아름다운 별명, 천사의 얼굴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삶을 살펴보아야 한다.
1)그는 책임을 다 하는 사람이었고,
2)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으며,
3)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참고.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사도행전 강해설교, 이 동원.나침판사
할아버지의 유훈
잡지 편집인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가진 미국의 에드워드 윌리엄 보크씨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다가 어린 몸으로 미국에 건너오게 되었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손자인 보크와 작별하려 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유훈으로 주었다. "나는 네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네가 지금부터 어디를 가든지 네가 있는 곳은 어떤 모양으로든 좋아지게 하려고 힘쓰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할아버지의 유훈을 받은 보크는 미국으로 건너와 보스톤 시 한 모퉁이에서 신문팔이를 시작하였는데, 그는 할아버지의 유훈대로 자기가 장사하고 있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종이조각이나 담배꽁초들을 손으로 줍고 수시로 깨끗이 청소하기에 힘썼다.
그리고 조간이나 석간신문들을 제일 먼저 가져다가 그날그날의 뉴스를 속히 손님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는 친절하고 믿음성 있는 소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는 커티스 출판사의 청소부로 취직이 되고 거기서 다시 신임을 얻어 그 회사의 사원이 된 다음 더욱 열심히 자기에게 맡겨진 일뿐만 아니라 회사의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돌봄으로 판매부장에서, 경리부장으로, 경리부장에서 편집국장으로, 편집국장에서 다시 지배인으로 승진이 되었으며 지배인에서 사장 사위가 된 다음에 마침내는 같은 회사의 사장이 되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유훈대로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을 언제나 깨끗이 그리고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듬으로서써 자신도 영달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할 우리 신자들은 어디를 가고 어느 곳에 있든지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자기가 있는 곳을 밝고 명랑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성실해야 할 것이다.
책임완수로 해결되는 갈등
유명한 생리학자인 윌리암. 엘, 사드리 박사는 극히 간단한 방법으로 시카고 큰 회사의 지배인의 신경과민을 고쳐준 일이 있다. 그 지배인은 밤낮 미결 서류로 말미암아 고민하던 끝에 신경과민이 되고 만 것인데 사드리 박사를 찾음으로 신경과민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사드리 박사는 말했다. "어떤 일을 맡을 때 그것을 끌고 끈다는 것은 분명히 큰 병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미결, 그리고 복잡이란 언제나 금물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지배인은 많은 일을 맡아하고 있는 사드리 박사를 향하여 "선생님 미안하지만 책상 서랍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사드리 박사는 곧 자기 책상 전부를 서랍을 열어 보여주었다. 비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빈 서랍이었다. "미결 서류는 어디에 보관해 두었습니까?"지배인은 물었다.
이에 사드리 박사는 "미결이란 없습니다. 무엇이나 즉석에서 해결해 버립니다. 끌지 않습니다. 편지 같은 것을 받으면 즉석에서 비서를 시켜 회답하도록 지시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6주일이 지난 후 이 지배인은 사드리 박사를 자기의 사무실로 초대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책상 서랍에도 미결 서류가 없어졌다는 것을 자랑삼아 보이며 "6주일 전만해도 사무실 두 곳에 책상 셋을 갖고서 서류에 파묻혀 있었답니다. 언제나 이로 말미암아 고민하고 드디어 고장까지 일으켰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곧 처분합니다. 이제는 한 책상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보다 놀라운 것은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것입니다."라고 희색이 만연하여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직책을 완수할 때 고민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재난
병을 고쳐주러 온 의사가 병자에게 증세를 물어보았다. 병자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땀을 흘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그것은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의사가 두 번째 와서 그에게 병세를 묻자 병자 는 "오랜 시간 떨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의사는 "그것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가버렸다. 의사가 세 번째 와서 다시 그에게 병세를 물었다. 병자가 "설사를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의사는 "그것도 괜찮습니다."라고 하며 가버렸다. 이때친척 한 사람이 그에게 와서 병세가 어떠냐고 묻자 병자는 화가 나서 말하였다.
"나는 괜찮다는 사람들 때문에 죽어가고 있단 말이오."
기상청의 망신
벌써 3년째 기상청 체육대회 날에 비가 왔다고 한다.
올해(94년)도 체육의 날 전 직원 등반 대회가 있었는데 점심 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서둘러 철수를 했는데 과연 있을 법한 얘긴가?
온 나라 전역에 기상을 예보해 주는 기관의 행사가 벌써 3년째 비가 왔다면 참으로 비웃음을 살만할 것이다. 망신을 당한 것이다.
피 고용자
어떤 젊은 기사는 어느 광산 회사가 모집하고 있는 기사 채용 시험에 응모하였다.
그는 나이 많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서 무척 돈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 시험에 경쟁 율이 높은 줄 미리 알고 있었으나 면접시험을 위해서 선출하는 6명 중에는 꼭 선발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3년 수개월 동안 양심적으로 근무해 준 전고용주로 부터 신원 증명서와 소개장을 얻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번 광산회사는 중요한 유전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신규로 채용하는 젊은 기사에게 새 유전의 시추를 맡겨 볼 예정이었다.
중대한 면접일이 다가왔다. 최초에 모든 일은 순조로 왔고 심사원도 그의 응답에 만족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심사위원장이 독수리와 같은 무서운 눈초리로 그를 응시하며 "전에 네가 종사했던 회사에서도 방금 네가 대답한 것과 같은 깊이만큼 파서 유전을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하고 물었을 때 그가 바라던 희망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 같은 실망을 느꼈다.
잠시 동안 젊은이는 주저하다가 단호하게 그러나 공손히 "전 고용주를 위해서일할 때 알게 된 그 회사의 비밀을 죄송하지만 여기서 마음대로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심사원들은 그의 대답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며 심사 위원장은 면접이 끝났음을 그에게 암시하였다. 그 젊은이는 침울하게 면접 실을 나오고 말았다. 아마 그는 바보짓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너무 양심적이었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정직은 가장 좋은 방책이다. 사업과 사생활에 있어서 결코 다른 기준을 두지 말라."고 가르쳐 준 아버지의 말씀을 되씹어 보았다.
부모에게 면접 때 일을 말씀드렸을 때 그의 양친은 그가 한 일이 옳았다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며 또한 격려하였다. 그는 다소 마음이 풀려 잠자리에 들었으며 그다음 날 아침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계획을 세워 아랫 층으로 내려왔다.
뜻밖에 등기 속달 우편으로 그가 바라던 편지가 도착하였다. 광산회사로부터 온 것이었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다. 그가 열망하던 일자리를 주겠다는 내용을 읽고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년 후에 비로소 젊은이는 그가 취직하게 된 동기를 알게 되었다. 심사위원장의질문은 고용주에 대한 그의 충성과 그 자신에 대한 신뢰도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천국행 허가증을 발급
로디지아에 "예언자 앨리스"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정부에 대항하여 전쟁에 참여한 약 10만 명으 아프리카인들에게 "천국허가증"을 발급해 주었다. 45세의 이 여인은 자신이 죽어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났었고 그 진실을 말하기 위해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녹음해 들려주는 행위로 그녀를 따르는 자들을 광란의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개미탑꼭대기에 그녀의 "열두제자"와 함께 서서 "처어칠은 하나님의 소리다"라고 했다. 이 광신자는 정부에 체포되기 전 피비린내 나는 공격을 이끌었고 그것으로 수백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죽어갔다. 주의 강림이 있을 때까지 거짓 영을 분별하여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정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에 왔을 때의 일이다. 유대인이 대왕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금은을 보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대왕은 "나는 금은을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부럽게 생각지 않소. 그대들의 습관과 또 그대들에게 있어서 옳고 그름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를 바랄 뿐이오." 했다.
대왕이 머무는 동안 마침 두 사람이 랍비에게 상담하러 왔다. 두 사람 중의 하나가 다른 한 사람으로부터 넝마더미를 샀다. 산 사람은 넝마 속에 엄청나게 돈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이 넝마를 산 것이지 돈에 대한 지불은 하지 않았소." 하고 판 사람에게 말했다. 판 사람은 "내가 당신에게 판 것은 넝마더미 전부니까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건 모두 당신의 것이오."했다. 그래서 랍비는 "그대에게는 딸이 있을 것이고 그대에게는 아들이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둘을 결혼시켜 그 돈을 그 둘에게 주는 것이 옳은 일이오." 하고 판정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랍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물었다.
"대왕의 나라에서는 이런 때 어떤 방식으로 판정하십니까?" 대왕의 답은 극히 간단하였다.
"내 나라에서는 둘을 죽이고 내가 돈을 가지오. 이것이 내게 있어 정의라는 것이오."
약
에드워드 7세는 덴마크 왕국에서 열린 로마 법왕 선거회의에 출석했는데 어느 날 오후 혼자서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시골길로 접어들어서 난처해하고 있었다.
마침 늙은 농부 한 사람이 마초를 짐수레에 싣고 덜거덕 덜거덕 오고 있었다.
"왕궁 문 앞 까지 태워다 주지 않겠나."
"좋습니다요."하고 쾌히 태우고 가면서,
"당신은 누구슈?"
"영국의 에드워드 7세요."
"흠, 그래요."
하고 농부는 웃더니,
"그럼 나는 로마 법왕이요."하고 말하였다.
이윽고 왕궁 앞에서 손님을 내려놓자 위병들이 굳어져서 받들어총을 했기 때문에 이 늙은 농부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위병 앞으로 가더니, "지금 저 사람 누구슈?"하고 물었다.
"에드워드 7세 폐하시다."
"히야 ---"
소스라치게 놀란 농부, 잠시 머리를 긁고 있더니 이렇게 부탁하였다.
"저 파수병님, 저 임금님에게 말씀 좀 전해 주십쇼. 나는 결코 로마 법왕님이 아니라고요."
진의
남의 말만 듣고,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세상에서 말이 말을 낳고, 다시 그 말은 새끼를 쳐서 그 말의 참뜻이 나중에 가서는 흐려지거나 잘못 전해지는 수도 있거니와 그보다도 남을 헐뜯기 잘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이른바 모략과 중상이 생기기도 쉽기 때문이다.
옛날 한 신하가 임금에게 어떤 일에 대하여 상당히 오랫동안 건의를 했다. 그러고 나자 잠시 뒤에 또 다른 신하가 같은 일에 대하여 먼저 신하와는 전혀 다른 방안을 건의했다.
이같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서로 상반되는 말을 했는데 임금은 두 사람의 말을 모두 그럴듯하다고 동의했다. 임금의 이 같은 흐리멍텅한 태도에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이 "어째서 같은 일에 대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의견을 모두 옳다고 하십니까?"하고 여쭈었다. 이에 대해 임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사람의 귀가 본디 둘이니, 두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소?"
그렇다. 이 때 임금으로서는 어느 한쪽의 말만을 믿고 처리하는 것이 경솔하고도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비단 임금뿐만 아니라 남의 윗사람 된 자가 어떤 한쪽의 말만을 그대로 믿고서 일을 처결하는 것은 자칫 실수하기 쉬운 일이다.
일찍이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자는 정나라에서 아주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열자의 이와 같은 곤경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고 해서 그 사정을 고관에게 말했다. 관에서는 급하게 수십 대의 우마차를 동원해서 곡식을 실어다 주었다.
그러나 열자는 이것을 받지 않았다.
열자의 아내는 당장 굶게 된 판에 관에서 준 곡식이니 우선 먹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인 열자의 하는 짓에 반항하려 했다. 그래도 열자는 받아 먹을 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아내는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열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관에서 누구에게 선가 내가 몹시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서 곡식을 보내준 듯한데, 그렇게 남의 말을 잘 믿는다면 만약에 이다음에 누가 나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할 때에도 그대로 믿고서 옥에 가둘는지 모를 일이오. 그때 내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니겠소."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과연 열자의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열자보다 더 심하게 그 곡식을 돌려보내느라고 애를 썼다.
부자
두 사람의 랍비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혜와 돈 어느 쪽이 더 소중할까?"
"물론 지혜 쪽이겠지."
"하지만 만약에 지혜 쪽이 더 소중하다면 어째서 난 사람들이 돈 많은 사람들에게 부림을 당하고 돈 많은 사람들은 난 사람들의 부림을 안 당하게 되는 걸까? 언제나 학자와 철학자들은 돈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자들은 난 사람들에 대해 거만하게 굴지 않느냐 말일세."
"그것은 아주 간단하지 똑똑한 사람은 돈의 고마움을 알지만 부자들은 지혜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지."
상술
귀금속은 누구나 값어치를 인정하지만 그 밖의 이른바 골동품 따위는 아무나 그 값어치를 알 수 없다. 남이 보아서 하찮은 물건이 귀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따라서 고가(高價)로 팔리는 것을 본다.
그런데 그와 같은 물품의 진가를 알아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 때문에 세상에는 남을 속여서 횡재하는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크게 손해를 보는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진품(진품)이 아닌 가짜를 속여 팔았을 때 판 측은 돈을 벌지만 산 사람은 대단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귀중품을 가지고 남을 속이고 속는 일이 많은데 그 보기의 하나로서 프랑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푸줏간에 바이올린을 들고 고기를 사러 온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고기를 사고서 값을 치르려 할 때, 돈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닫고 할 수 없이 그가 가지고 온 바이올린을 맡기고 고기를 가져갔다. 물론 잠시 뒤에 돈을 가져와서 바이올린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푸줏간 주인은 바이올린이 상당히 낡았으나 아무래도 고기값만큼은 돈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승낙 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옷차림이 훌륭한 신사가 고기를 사려고 왔다가 그 바이올린을 보았다. 그는 "이 바이올린이 바로 스트라디바리의 작품이 아닌가!" 하고 사뭇 신기하다는 듯이 유심히 살펴보면서, "이건 파는 거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푸줏간 주인은, "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팔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 신사는 주인에게서 그것은 어떤 소년의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 그렇다면 나는 그 소년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그 소년이 오거든 꼭 이 바이올린을 사두었다가 나에게 파시오. 값은 2만 프랑까지 낼 용의가 있소."하고 신신당부했다.
신사가 간지 잠시 뒤에 그 소년이 왔다. 주인은 소년에게 바이올린을 팔기를 권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그 바이올린이 자기 집의 유물이기 때문에 팔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인은 그 소리를 듣자 더욱 열렬하게 그 바이올린을 사려고 덤벼들었다.
주인은 마침내 그 바이올린을 처음에 천 프랑 주겠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3천 프랑을 주고 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만 프랑을 받으면 1만 7천 프랑이라는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신사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신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 서야 속은 것을 깨달았으나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유대인
러시아의 유대인가 신학교에서 랍비와 학생들이 징병으로 끌려 나가게 됐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랍비와 학생들은 훈련 중 사격에 월등한 성적을 나타냈다.
러시아인 장교는 몹시 기뻐했다. 훈련이 끝나자 랍비와 학생들은 장교에게 인솔되어 전선에 나서게 됐다.
전선에 닿자 러시아인 장교가 칼을 뽐아,
"사격개시!"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총성을 전혀 나질 않았다. 러시아인 장교는 다시 한 번 칼을 높이 쳐들어 "사격개시!"하고 외쳤다. 그래도 총성이나 그밖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너희들은 훈련 중에는 사격에서 그렇게 우수한 성적을 올렸는데 어째서 총을 쏘지 않는 거냐?" 러시아인 장교는 화가 몹시 나서 소리쳤다. 그러자 2등 병의 제복을 입은 랍비가 대답했다.
"어째서라 고요? 앞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이질 않나요?"
재판
안식일에 유대인 셋이 예루살렘으로 갔다. 당시에는 은행이 없었으므로 셋이 가지고 있던 돈을 함께 묻었다. 그런데 셋 중의 하나가 몰래 그곳으로 되돌아가 돈을 간져가 버렸다.
이튿날 셋은 현인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에게 가서 셋 중에 누가 돈을 훔쳤는지 판결을 해달라고 했다. 솔로몬 왕은 "그대들 세 사람은 매우 영리한 사람들이니 지금 내가 곤란해 하는 문제를 재판하는 일에 먼저 순종하기를 바라노라. 그러면 그대들 세 사람의 문제를 내가 재판하리라."했다.
"어느 젊은 처녀가 어느 남자에게 시집가기로 약속했다. 얼마 후에 처녀는 다른 남자와 연애하여 맨 처음 약혼자를 만나 헤어지자고 제의를 했다. 그녀는 그러기 위하여 위자료를 지불해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첫 남자는 위자료는 필요 없다고 하며 그녀와의 약혼을 취소했다. 그녀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므로 어느 노인에게 유괴되었다. 그녀는 나는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던 남성에게 약혼 취소를 제의 했더니 위자료를 지불받지 않고 해방시켜 주었는데 당신도 같은 일을 내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요구하였다. 노인은 돈을 받지 않고 그녀를 놓아주는데 동의했다. 이 중에서 누가 가장 칭찬받을 행위를 한 사람인가?" 하고 솔로몬 왕이 물었다.
첫 번째 남자는 "그녀와 약혼하고 있다가 위자료도 받지 않고 약혼을 해소해 준 맨 처음 남자가 가장 칭찬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녀의 의지를 무시하면서까지 결혼하려하지 않았고 돈도 받지 않았사옵니다."했다.
다음 남자는 "아니옵니다. 처녀야말로 칭찬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녀는 용기를 가지고 맨 처음 남자에게 약혼의 해소를 제의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이야말로 칭찬 받아야 할 것이옵니다."했다.
세 번째 남자는 "이 이야기는 도무지 영문 모를 소리여서 저는 모르겠는데요. 첫째유괴한 사람만 하더라도 돈 때문에 유괴했는데 돈도 받지 않고 놓아준다는 따위는 이야기 줄거리가 도무지 통하지 않사옵니다."했다.
솔로몬 왕은 "돈을 훔친 범인은 너다!"하고 꾸짖었다.
"다른 두 사람은 애정이나 처녀와 약혼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관계, 그 사이에 긴장되어 있는 기분 등에 이내 마음이 쏠렸는데 너는 돈 문제 밖에 생각지 않고 있으니 네가 범인임이 틀림없구나."했다.
책
19세기의 저명한 영국의 소설가요, 시인이던 월터 스콧트 경은 병상에 누워 이제자기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하인을 불러 책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월터 스콧트는 원래 다작으로 유명하였으며 그가 쓴 책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당황한 하인은, "어느 책을 가져올까요?"라고 물었다. 사실 그의 서재에는 자기가 쓴 책 외에도 상당한 장서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때 월터 스콧트는 하인을 향해 말하기를,
"세상에 책은 하나밖에 없다." 하며 자기의 의사를 명백하게 하였다. 하인은 서재에서 성경을 가져다주었고 그는 운명하기에 앞서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만인의 가슴을 울리고 그에게 돈과 명예를 풍성하게 하져다준 그 모든 훌륭한 작품들을 그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참된 의미에서 책이라는 것은 오직 성경뿐임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운
세계를 떠돌아다닌 유대인만큼 행운을 구했던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한 땅에 오래 정착하고 확고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행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압박받고 차별받고 가난한 탓으로 일정한 삶의 자리를 갖지 못했던 유대인은 행운을 동경했다.
그러나 행운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비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 스스로가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 행운을 나비로 비유한다면, 아름답고 진기한 나비가 가까이에 찾아왔다는 것이 되겠다.
행운을 자기 것으로 하는 데는 역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행운이 찾아오는 것을 끝까지 살피는 데도 훈련이 필요하다. 감각을 날카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저 행운을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행운은 만인 곁에 찾아오지만 스스로 수중에 들어와 주지는 않는다. 금방 스쳐가는 것이다.
유럽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거리의 주민들은 행운을 어떻게 붙잡아야 하느냐로 머리를 짜냈다. 다음과 같은 속담도 있다.
"육감이 나쁜데도 행운을 붙잡으려 하는 것은 구멍 뚫린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려하는 것과도 같다."
"행운에 의지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행운에 협력해야 한다."
주님이 맡긴 일
독일에 말틴 미네르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히틀러 치하에서 본 회퍼라고 하는 분과 함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많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본 회퍼는 죽고 미네르 목사님은 생존해서 출옥을 했습니다. 그는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주 심각한 표정을 하고 열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너는 네가 한 일을 변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자기도 거기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자기에게 그 말을 하지 않고 자기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물음에 "나를 반대하고 욕하는 사람만 있었지 나에게 예수를 전해 주는 사람은 없어서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일곱 밤을 계속해서 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위탁한 것이 있습니다. 이 민족을 복음으로 구해야 하겠습니다. 세계 선교를 우리가 담당해야하겠습니다.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구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땅 끝까지 이르는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아무나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공직
한 자리 하려는 작자들이 하도 몰려들어서 링컨은 정말 골치를 앓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옛날에 아주 늙은 왕이 있었어요. 하루는 이 왕이 궁중의 모든 신하들을 다 거느리고 사냥을 나갔답니다. 길에서 농부를 한 사람 만났더니 그 농부가 임금께 하는 말이 비가 올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임금의 점쟁이는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약 한 시간 후에 폭우가 쏟아져 그 농부의 말이 옳다는 게 증명되었답니다. 그래서 왕은 그의 점쟁이의 목을 잘랐지요. 그리고는 농부를 불러, 공석중인 점쟁이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답니다.
그러나 농부는 그 자리를 원치 않는다고 했답니다.
"상감마마, 비가 올 것을 미리 안 것은 이 백성이 아니옵고 제 집의 당나귀 옵니다.
“그 놈이 비가 올듯하면 두 귀를 뒤로 움츠리 옵니다.!"
"그렇다면 너의 당나귀를 이에 궁중 점쟁이로 임명하노라!" 하고 임금이 엄숙히 선언했지요. 그러나 왕은 얼마 안가서 자신의 결정이 일생일대의 최대의 과오임을 깨달았답니다.>
링컨은 이 말을 하고 돌아 앉아 책상 위의 원고를 읽기 시작하였다. 입관운동을 하려고 방문했던 사람 하나가 이렇게 물었다.
"아니, 어째서 그 임명이 과오였단 말씀입니까?"
"그러고 나니까, 전국의 당나귀가 죄다 한 자리씩 달라고 야단을 하더란 말이오!"
장사꾼으로는 유명했던 무명용사
텔아비브의 무명용사의 묘비에 다음과 같이 쓰여 져 있다.
“이 땅에 무명의 병사, 다윗, 루비칙(가축사료 소매상인)잠들다.”
외국에서 온 외교관이 이상히 여겨 이스라엘 관리에게 이유를 물었다.
"이 사나이는 장사꾼으로서는 상당히 이름을 날렸지만 병사로서는 알려지지 못했었죠."
회중에게 졸음을 주는 설교자
랍비인 코오엔이 어느 날 아침거리를 거닐고 있으려니 맞은편에서 아브라함이 다가왔다.
랍비는 "샤로옴"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샤로옴, 아브라함, 좋은 날씨구려"하고 또 인사를 건넸다.
그제 서야 아브라함은 제 정신이 든 듯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실은 어저께 랍비님의 설교를 듣고서는 통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혼났습니다. 아침까지 깨어 있었거든요."
랍비는 크게 감동했다. 자기의 설교가 그토록 사람의 마음에 큰 감명을 주었던가! 그래서 얼굴 가득히 미소 지으며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내 설교가 그토록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니! 미쳐 몰랐소. 하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일은 안됐구려. 사람은 매사를 너무 심각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소이다." 하고 랍비가 말하자 아브라함은 약간 멋 적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랍비님, 나는 랍비님 설교 때는 늘 잠을 잔답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통 잠이 안와요."
인술과 의술
의술은 인술이라고도 한다.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을 고쳐주는 것은 그지없이 고마운 일이다. 더욱이 중병에 걸려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다면 그것은 제2의 생명의창조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술을 인술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의술을 한낱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의사도 없지 않다. 이들은 환자가 위급하다 해도 우선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병을 보살펴 주려 하지를 않는다.
병은 급한데 미처 치료비가 마련이 되지 않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마침내 귀중한 생명을 잃는 일도 있다.
이러한 의사들이 있는 현실과는 달리 여기 사랑스러운 인술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남짓한 옛날 영국에 올리버 골드스미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도 짓고 소설이나 희곡도 쓰는 작가였으나, 일찍이 의학공부를 한 의사이기도 했다.
어느 날 마을에 사는 가난한 집의 부인이 찾아와서 자기 남편의 병을 보아 달라고 청했다. 인정이 많은 그는 곧 왕진 채비를 차리고 그 부인의 뒤를 따랐다.
얼마 뒤 초라한 집 앞에 다다랐다. 방안에 들어가 보니 환자는 몸이 매우 쇠약해졌으나 무슨 뚜렷한 병명을 드러낼 만한 병세는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진찰 도구를 도로 거두어 넣고 부인을 보고 약을 지어 줄 터이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부인은 그를 따라 그의 집에 갔다. 그는 조그만 상자를 내어 주면서, "자, 여기 약이 들어 있습니다. 이 약을 자시면 주인의 병은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갈 때까지 이 상자를 열어보시면 안 됩니다."하고 말했다.
이 약이 들어 있다는 상자를 받아든 부인은 물었다.
"약이 대단히 무겁군요.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셔요."
"아, 그 상자 안에 씌어 있으니, 그대로만 하십시오."하고 그는 말했다.
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부인은 남편 앞에 가서 약을 지어 왔으니, 어서 일어나서 약을 먹으라고 권하고 상자를 열었다. 순간 부인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상자 안에는 돈(금. 은. 동전)이 가득히 들어 있었다.
그리고 흰 종이에 글이 씌어 있었다. "이 돈으로 무엇이나 먹고 싶은 것을 사서잡수시오. 당신의 병은 잘 먹지를 못해서 영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운을 차리지 못한 것뿐입니다."
돈
두 딸을 가진 부자가 있었다. 그런데 맏딸이 병으로 죽었으므로 대신 울어주는 노파를 샀다. 노파들이 가슴을 치며 소리 지르며 슬피 우는 것을 본 둘째 딸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정말 슬픈 우리는 울지 않고 아무 관계없는 여자들이 슬피 우는 것을 보면 안됐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말하였다.
"저 노파는 우는 것이 직업이란다. 슬퍼서가 아니라 돈 때문에 하는 즐거운 짓이야!"
멍에를 같이한 자
일찍이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에서는 밭을 갈 때 황소와 암소 두 마리가 같은 멍에를 끌고 갑니다. 따라서 두 마리는 보조가 맞아야 합니다. 한 마리가 다른 소보다 빨리 가거나 늦게 간다면 빙 돌아버립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여러 번 보습 쟁기를 잡아보았습니다.
소걸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더딥니까? 그런 걸음으로 천천히 나아가는데도 보습을 땅에 대고 보니까 막 달아나는 것처럼 빨라 보입니다. 양쪽 소를 번갈아가면서 이쪽으로 몰기도 하고 저쪽으로 몰기도 하는데, 그 모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른쪽 소의 고삐를 탁 채서 빨리 가게 하면 보습은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왼쪽 소를 빨리 몰면 이 쟁기는 오른쪽으로 돌아갑니다. 두 마리 소를 같은 보조로 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앞서거나 뒤져도 안 되고, 가다가 한 마리가 숨을 돌리고 쉬어도 안 됩니다. 두 마리가 똑같이 발을 맞추어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멍에를 같이했다는 말의 뜻입니다. 그래서 “멍에를 같이했다”는 말은 본디 부부간을 이야기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동업자간에도 이 말을 씁니다. 동반자요 가까운 협력자라는 뜻입니다. 적당히 협력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똑같이 균형을 잡은 동반자이며. 책임도 똑같이 지는 것입니다. 이쪽이 무너지면 저쪽도 무너집니다. 이쪽이 갈 때에는 저쪽도 가야 합니다.
이것이 동반자의 걸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4:3에서 표현한 '참으로 나와 함께 멍에를 같이한 자'란 이토록 절실한 관계입니다. 이것은 유기적이요 균형 잡힌 공존적 관계인 것입니다.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메었고 복음전파에 한마음으로 힘썼다는 각성과 인식을 가질 때에 자연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충실해야 할 직분
사냥꾼이 개 두 마리를 길렀다. 한 마리에게는 사냥을 가르치고 다른 한 마리에게는 집을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사냥꾼은 사냥하여 온 것 중에서 한 몫을 언제나 집지키는 개에게 주곤 하였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냥개가 집 지키는 개에게 항의를 하였다.
"내가 고생 고생하여 잡아온 것을 너는 아무 일도 안하면서 먹다니 말이 되느냐."
그러니까 집 지키는 개는 대답하였다.
"그 말은 나한테 하지 말고 주인한테 하렴. 나는 네 것을 먹는 것이 아니고 주인의 것을 먹는 거란 말이야."
화려한 꽃은 꿀이 없다
기적 소리가 기차를 움직이지 못하며, 뱃고동 소리가 기선을 밀어 주지 못합니다.
또한 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가 나무를 키워 주지 못하며, 연꽃에 앉아 너울거리는 나비가 연꽃을 길러내지 못합니다. 기차는 피스톤으로 배는 스크류의 움직임으로 작동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검점 투성이의 화부가 석탄가루와 기름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또한 땅에 묻혀 있는 뿌리로 인해 나무가 자라며, 진흙에 묻혀 있는 뿌리가 연꽃을 피워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랑하는 사람치고 위대한 이는 없습니다. 힘들고 중요한 사명을 맡은 사람은 밖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물감 칠한 광대의 화려함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을 것입니다. 화려한 꽃은 꿀이 없고 작은 꽃에서 꿀이 많이 나옵니다. 진리와 생명의 능력은 보이지 않는 소박한데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제물로 드리자
링컨 같은 사람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물론 사업도 열심히 했을 것이고 법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세계 정치사에서 성스럽다고까지 할 링컨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노예를 해방하고 미국의 건국사의 초석을 놓았던 링컨은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가 '예스'를 하면 유럽이 전부 '예스'로 진동이 되고, '노'를 하면 유럽이 '노' 쪽으로 진동을 할 정도로 지진을 일으킨 사람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개신교는 없었을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께서 만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입니다.
K목사님은 아주 불량한 깡패였습니다. 그는 시장에 가는 사람마다 괴롭혔습니다.
장에 가는 사람들이 오늘은 K를 안 만나게 해달라고 고사를 지내고 갔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한국 초대 교회의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인물이 되었습니다. 어거스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참회록을 보면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했습니다. 가장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로 예수를 만나서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모세가 왜 없겠습니까? 한국의 이사야가 왜 없겠습니까? 한국의 베드로나 바울이 왜 없겠습니까? 한국의 에스더나 룻이나 한나 같은 여성이 왜 없겠습니까? 사람들만 잘 키워 낸다면 우리 민족적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위대한 교육자이시며 위대한 예술가이시며 또한 창조주이시며 부활의 주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생애를 맡겨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격의 모든 병을 낫게 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께 우리의 생애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소경들이 예수께로 갔을 적에 예수님은 '내가 그 일을 능히 할 수 있다고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이일을 능히 하실 수가 있나이다.'하고 믿으면 그렇게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보혜사인 목자
제가 아는 어느 권사님은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으로서 남의 속을 들여다보고 사냥개가 냄새를 맡듯이 남의 죄를 알아냅니다. 그 권사님의 말에 의하면 한사람도 죄가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을 만나면 예수를 무지하게 잘 믿는 것 같은데 남을 배타하고, 남을 저주하며, 교만과 권위와 엘리트 의식
이 꽉 차 있고 자기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사로잡혀 있습니다. 절대로 성령은 그렇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경은 겸손하고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 남의 죄를 가리어 주고 기도해 줄지언정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악령을 받은 것이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어딘가 남을 도와주고 남에게 힘을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가르쳐 주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보혜사 적이고 비둘기 같은 것이지 그렇게 점쟁이처럼 요사스럽거나 죄를 냄새 맡고 그것을 다 폭로하거나 배타하거나자기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교만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설교를 잘하는 빌리 그래함처럼 그런 성령의 은사도 중요하지만 아주 겸손하게 남을 돕고 남의 상담자가 되어 주며 위로 자가 되어 주는 성령의 은사도 매우 중요합니다. 옛날 어느 목사님은 근 30년 동안 심방만을 담당하셨습니다. 주일 학교 때 가르쳤던 자기 후배들이 담임 목사가 된 그 밑에서도 겸손하게 심방만 하고 다니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병든 자에게 가거나 문제가 있는 외롭고 슬프고 고달프고 낙심하고 있는 성도들을 찾아가면 예수님이 찾아온 것처럼 성도들이 저절로 그 앞에 모든 것을 쏟아 놓고 싶고 기도를 받고 싶고 의논하고 울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이 한 번만 다녀가면 성도들이 다시 회생을 하는 이러한 보혜사적인 남을 돕는 은사를 받은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받은 목사님은 대설교가로 은사를 받은 목사님이나 병을 치료하는 신유의 은사를 받은 목사님 못지않게 필요한 것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의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