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卍 ▶…번뇌망상과 깨어있음의 원리

작성자초심(혜산)|작성시간26.06.09|조회수47 목록 댓글 0

 



번뇌는 무수히 일어나는게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번뇌라는게 다 아상이 만들어 내는 것들이거든요.


아상이 뭐라고 그랬어요?
아상이 뭐냐 하면, ‘나’라는 생각,
쉽게 말해, 내가 만들어낸 생각,
내가 만들어낸 허망한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 낸 허상,
이게 아상입니다. 내가 만든 허상,


진짜 참된 실상이 아닌 허상, 헛된 망상이라는 거죠.
우린 끊임없어 내 머릿속에서 온갖 상을 만들어 낸단 말이에요.


생각을 만들어 내고, 그게 아상인데,
그걸 가지고 온갖 생각, 번뇌, 잡념들을 일으키는 거죠.


그러면 그 번뇌 잡념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냐?
그거 문제라고 할 수가 없어요.
번뇌가 일어난다고 해서 나는 수행자도 아니고,
나는 왜 이렇게 수행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건 당연히 일어나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게 아상의 특성이니까.
아상이라는 ‘나’다, 라는 어떤 생각이 있게 되면,
저절로 아상은 끊임없이 생각을 만들어 내요.


그게 자기의 할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아상과 싸워 이기려 할 필요가 없다.


지눌 스님은 수심결에서 뭐라고 말씀 하셨냐 하면은,
번뇌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번뇌 망상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라.
 번뇌 망상이 일어나면 번뇌망상이 일어났다, 라는 사실을 알아차려라.
알아차리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번뇌 망상이 일어날 때 번뇌 망상이 일어났다, 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 번뇌 망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번뇌 망상이 일어날 때, 그 번뇌 망상을 가만히 한번 살펴보란 말이죠.
관찰해 보란 말이죠. 그러면 저절로 소멸됩니다.


막~ 싸워 이기려고 할 필요가 없이.
싸워 이기려하면 안 없어지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고 지켜보기만 하는 겁니다.


그럴 때 그건 사라진다.
그래서 불교수행의 핵심은 관에 있습니다.
위빠사나, 관에 있어요.
모든 수행법에 관이 들어가지 않으면,
지관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건 불교 수행이 아닙니다.


염불에도 지관이 들어가요.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면서 마음을 그치고,
번뇌 망상을 그치고, 내가 염불하고 있다, 라는.
염불하고 있는 나 자신을 온전히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거에요.


입으로는 염불을 하지만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염불하는 의미가 없죠.
온갖 망상이 들끓는 것을 화두라는, 염불이라는 어떤 재료를,
수행의 재료를 들고, 마음을 그치고, 관찰하는데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염불을 통해서 마음을 관찰하기 위해서 염불 하는 거에요.


절 수행을 하는데, 몸은 절을 하면서 마음은 딴데가 있다.
그건 절수행이 아니죠.


불교 수행이라는 것은 몸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같이 있는게 수행입니다.
몸은 어디에 있어요? 지금 여기에 항상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있는 몸이
지금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딴 데가 있단 말이에요?


그럼 몸과 마음이 분리가 되죠.
그럼 수행이 되지 않는 겁니다.
몸있는 곳에 마음이 있을 때, 마음도 같이 있고.
그러려면 관찰을 해야 됩니다.


지금 이 순간만 관찰할 수 있죠.
과거나 미래를 관찰하는게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증명해 주는 건 뭐가 있겠어요?
호흡이 있습니다. 숨을 쉬고 있다? 라는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에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죠.


그래서 옛날부터 불교에서는 호흡관 수행을 이야기 합니다.
호흡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다.


호흡을 지켜볼 때 번뇌 망상은 멈춘단 말이죠.
지금 이 순간 고요해 지고 지혜가 생긴단 말입니다.


그래서 달마스님은 이렇게 표현하셨어요.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찰하는 그 한 가지 법, 그 한 가지 진리가 제행을 총섭한다.
일체 모든 진리다운 행을, 총섭하는,
불교를 한마디로 뭐라고 할 것이냐?
물어보면 관,
이 한마디로 끝날 수 있습니다.
관하는 종교다.


그 관이 팔정도에서는 정념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어요.
정념. 정념이 마음 관찰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관찰하는 것.


계정혜에서는 혜를 의미하고,
또 근본불교에서 교리에 보면은 정념에 대한 세부적인,
구체적인 수행법으로 사념처수행이 나옵니다. 사념처.


신수심법이라는 네 가지 관찰의 대상이 나옵니다.
신념처(身念處), 몸을 관찰하는 거에요.
그리고 수념처(受念處) 느낌을 관찰하는 것.
그리고 심념처(心念處) ,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
법념처(法念處), 존재를 관찰하고 진리를 관찰하는 것.


그래서 신수심법을 관찰하는 수행.
이게 근본불교. 위빠사나라고 하는 사념처수행의 핵심입니다.


이게 불교의 핵심이기도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마음을 관하지 못한다.
이건 기도하는게 아닙니다.


마음을 관할 때만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깨어있을 수 있어요.
불교에서 쉽게쉽게 깨어있어라,
깨어있어라 한단 말이에요.


깨어 있는게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 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순간 알아차리고 있다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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