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에 머물러 보시하면 내가 보시 한 만큼만 받겠죠.
상에 머물러서 내가 100만원을 너한테 줬다? 하고,
100만원 딱 주면 어때요?
갚을 때 100만원만 갚으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상에 머물지 않고 누구한테 티내는 거 없이.
상을 내는 것 전혀 없이, 그냥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곳에 100만원을 턱 보시했어요.
그 과보는 100만원만 돌아오는게 아니라는 거죠.
은행에다가 저금을 하면 은행이자밖에 안 나오잖아요.
그런데 우주법계에다가 복을 짓는 걸로서,
보시로서 저축을 하면, 무량대복으로서 과보를 받게 됩니다.
무량대복. 무량대복은 뭐냐 하면요,
너무나도 무량해서, 너무나도 커서, 그 복은 끝이 없는 겁니다.
한이 없는 겁니다. 한도 끝도 없는 복이 된단 말이에요.
상이 없이 보시하면 그런 과보를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왜 그러냐하면 ,
우리라는 존재는 내가 ‘나는 복도 없지. 지지리도 복도 없지.’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복없다,라고 생각할 뿐이지.
사실은 복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체 모든 중생은,
일체 모든 존재는 무량대복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완전하고 누구나 풍요롭습니다.
다만 스스로 완전하다.
스스로 풍요롭다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무한한 풍요가 나에게 오지 않는 거에요.
지금 여러분들의 경제적인 수준.
연봉, 버는 돈, 수입. 많습니까? 적습니까?
그 돈은 어떤 사람은 천만 원, 어떤 사람은 이천만원,
어떤 사람은 삼천만원. 어떤 사람은 연봉 1억을 받는다 하더라도,
진리 당처에서는
누구든 상관없이 차별없이 완전한 풍요 그 자체입니다.
완전한 만족, 각자 그 수준에서 만족할 수 있어요.
누구나. 그 정도의 수준에서도 누구나 만족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수백, 수천억이 있어도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기어이 거부하고, 아상을 만들어 내서 이 만큼 울타리를 치고,
이 만큼만 내꺼야, 라고 생각하면서
아상의 울타리를 탁~ 쳐 놓으니까
그 안에 있는 것만 내게 되는 겁니다.
아상을 놓아버리면 내 것이다, 라는 울타리를 탁 거둬버리면,
일체 이 우주 법계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