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 법계는 좋고 나쁜 건 없죠.
좋은 쪽이고 나쁜 쪽이고는 상관없습니다.
그 에너지가 강하냐? 약하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어느 쪽이든. 어느 방향이든. 강한가? 약한가?
강하면 그것은 이루어집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공포심은 어디서부터 오냐 하면은 실체관념에서 옵니다.
귀신이 실체적으로 있다라고 생각하고 그 귀신이 나를 해칠 수도 있다.
실체적으로 해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게 공포를 불러와요.
그런데 이 마음공부를 해 보니까. 불교공부를 해 보니까.
아~ 귀신이 실체가 있는 게 아니구나. 실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도 실체가 있는 게 아닌데. 귀신이 뭔 실체가 있겠어요?
실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더라.
그러기 때문에 귀신은 우리를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
귀신은 결정코 우리를 괴롭힐 수가 없다.
그런데 괴롭힐 수 있는 경우가 있죠.
내가 머릿속에서 귀신은 실체로 있고,
나를 공격할지도 몰라 라고 머릿속으로 그렇게 탁 집착해서
만들어 놓으면 그게 현실이 됩니다.
왜?
저마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마음 가운데 창조의 힘이 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은 자기가 창조하는 거거든요.
내가 만드는 대로 창조되는 게 내 삶입니다.
저마다 자기인생의 조물주에요.
내가 그것을 창조해 내면 거기에 힘을 주고 거기에 실체성을 부여하면
그것은 곧 실체가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실체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그건 실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우리가 실체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그것이 나를 괴롭히는 일은 없고.
그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거죠.
실체성을 부여하지 않고. 너무 과도하게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너무 과도하게 에너지를 그곳에 투입시키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비중 있게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은 그것 자체가 비중있는게 아니라 내가 거기에 비중을 둔겁니다.
의미부여를 한 거예요.
의미 부여를 하지만 않으면 결코 두려울게 없죠.
그래서 내가 뭔가 두려운게 있다면,
뭔가 무서워 하는게 있다면
아~ 내가 그것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반야 공사상.
공하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걸림이 없어지고,
걸림이 없어지니까 두려움이 없어지고.
또 나아가서 원리전도몽상.
전도된 몽상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