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어떤 경계가 일어났을 때
좋고 나쁜 것을 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판단해서
그 중에서 좋은 것은 붙잡아서 집착하고 애착하고
싫은 것은 밀어내려하고 거부하고 도망치려 한단 말이죠.
좋은 것은 막 쫓아갑니다.
그 좋은 것이 도망가는 데도 불구하고 막 쫓아가요.
좋은 것을 향해서는 우리는 추격자가 됩니다.
그러나 싫은 것을 향해서는 막 도망가 버려요.
그러니까 싫은 것을 향해서는 우리는 도망자가 됩니다.
우리 삶은 지금까지 보면 도망자거나 추격자거나 둘 중 하나에요.
그런데 도망자도 어떻습니까?
초조하고 불안하고 정신없고 바쁘고 힘들어요.
추격자가 되도 도망자가 되도
양쪽 모두 바쁘고 정신없고 힘들고 에너지 소모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뭔가로부터 도망가거나
뭔가를 향해 쫓아가서 막 추격을 하거나,
이 두 가지 극단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되는데
우리의 삶은 지금까지 이러한 삶만을 살아왔다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시면 오늘 하루 동안
도망자가 되거나 추격자가 된 적이 몇 번 있을까요?
셀 수 없습니다.
"예"
10분 사이에도 쉴새없이
뭔가 좋다, 라는 생각,
뭔가 나쁘다, 라는 생각,
이게 좋다, 나쁘다, 라는 차별심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행복과 불행,
또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이렇게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놓고
좋은 것 쪽을 택해서 집착하고,
싫은 쪽을 택해서 거부하려 한단 말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의 삶의 방식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이 우주법계에서는 부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한 완벽한 삶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이랬습니다.
이 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고 완전한 것입니다.
완벽하게 우리를 일깨워주기 위한
우리를 깨달음으로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기 위한
공부의 장이고 수행의 장입니다.
어떤 수업과도 같은.
'인생 수업'이라는 거죠.
그 인생 수업에서 우리가 선택적으로
좋은 것만 받아들이게 되면 반쪽짜리 공부밖에 안됩니다.
양쪽을 아울러 통째로 받아들여야지만
양변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공부를 익어가게 할 수 있단 말이죠.
지금까지의 인생이 뭔가 풀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균형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습관적으로 나누어 놓고
그것에 따라서 거부하거나 쫓아가거나
이 둘 중의 하나를 끊임없이 습관적으로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불교를 공부한다, 라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습관, 다시 말해,
금강경에서는 아상이라고 하거든요.
아상이 바로 이 짓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아상이라는 것이 좋은 것과 싫은 것을 나누어 놓고
그 중에서 좋은 것은 잡아 당기고 싫은 것은 밀쳐내는 걸 한단 말이죠.
나다, 라는 생각, '나'라는 갇힌 생각이.
그런데 이 아상을 그냥 타파하고
좋다, 나쁘다, 라는 분별을 탁, 놓아 버리는 것,
그래서 좋은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쁜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될 수행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그 신심명(信心銘)에서는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는 말이 있어요.
지극한 도, 도라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다만 간택하지만 않으면 된다.
즉 뭔가 좋고 나쁜 걸 막 간택하고 선택하고 이러지만 않으면 된다.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만 않으면
그게 바로 도와 일치되어 지는 것이고 계합되어 지는 것이다,
이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