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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피지법(相避之法)

작성자처음처럼(낙천)|작성시간26.06.14|조회수31 목록 댓글 0

 

상피지법(相避之法)

 

관직에서 가까운 친척은 서로 피하는 법이다.

   相 : 서로 상
   避 : 피할 피
      之 : 의조사 지
法 : 법 법


1548년 음력 1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충청도 단양군수(丹陽郡守)로 나갔다.

 

임기를 채우기도 전인 10월에 갑자기

경상도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옮겼다.

 

왜? 자기 형님인 온계(溫溪)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형이 관찰사로 있는 도에 그 아우가 고을원으로

재직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관원들 사이에 서로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관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제도가 있었다.

 

바로 '상피법(相避法)'이다.

형제뿐만 아니라 친족 4촌까지 외가,

처가까지도 다 고려해, 같은 부서나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서에 같이 근무할 수 없게 했다.

관직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시험의 응시자 가운데

자기 아들이나 조카 등 가까운 친척이 응시하면

시험관이 될 수 없었다.

 

만약 사전에 신고해 피하지 않으면 나중에 처벌 받는다.
인재 추천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은 할 수 없게 돼 있다.

재판도 피고와 관계있는 사람은 담당할 수 없었다.

 

이 모두가 이해관계와 권력의 편중을 막으려는 것으로

정치를 공정하게 합리적으로 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상피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었고

조선왕조에서는 더욱 강화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상세하게 그 규정을 명시했다.

 

"조선 말기에 가면,

안동김씨(安東金氏) 등등의

집안에서는 형제가 동시대에 정승을 맡고

한 집안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는데,

상피제도가 정말 시행됐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상피제도가 너무 엄격하자 꼭 쓰일 만한 인재인데도

쓰이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조(正祖) 임금 때부터

상피제도를 상당히 완화시켰다.

 

순조(純祖) 임금 때부터는 이 제도가 점점 허물어져

세도정치(勢道政治)가 등장하게 됐고 나라를 망치게 됐다.

 

가까운 친척끼리 뭉치면 권력과 이익을 독점하게 되고

공정한 평가와 비판이 있을 수 없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이 동향 사람, 측근, 친인척 등을

요직에 앉힌 경우가 많았다.

 

인재 선발에는 그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해

가장 적절한 자리에 앉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하면 공정하게 인사가 될 수 없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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