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잊었겠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최춘선 할아버지의 영상과 책을 보았다.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몇 장면 중 하나는 할아버지 방 한 모퉁이에 적혀 있던 찬송가 가사였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늘 불러서 입에 익숙한 찬송가 가사였지만, 영상을 보는 순간 그 가사가 내 마음을 쳤다. 내 가슴을 때린 또 하나의 고백은 “사명은 각자 각자”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에게 주신 주님의 사명을 누가 막을 수 있냐는 뜻이다.
통일이 올 때까지 신발을 신지 않고 다니며 전도를 하시는 게 할아버지의 사명이라고 하셨다. 그 분은 이상한 차림으로 걸인처럼 다니며 지하철에서 전도를 하셨다. 엄동설한에도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셨다.
그 행색이 정상인은 아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와 이상한 전도지.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향해 미쳤다며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손가락질을 당해도, 그것이 할아버지의 사명이었다.
누구도 그 분이 오래전 동경에서 유학을 한 지식인이고 목사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 분의 행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도전과 은혜의 눈물로 할아버지를 대했다.
이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알려진 할아버지의 비밀. 할아버지는 버젓이 성공한 자녀들, 좋은 집, 든든한 학벌, 고마운 아내,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명의 길을 가셨다.
할아버지는 집이 아닌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 곧 지하철 한구석에서 주께로 가셨다. 이 땅에서 사는 마지막 날도 그 사명을 다하시기 위해 맨발로 거리에 나오시고 지하철을 타신 것이다. 지하철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발을 만져보고 싶었다.
“엄동설한에도 동상이 없어요. 추운 줄 몰라요.” 할아버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가슴을 때리고 마음에 박힌다. 왜 춥지 않겠는가. 그 발은 여러 번 동상과 상처와 고난을 겪은 발 같았다. 오직 하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가기 위해 할아버지는 자기의 추움도, 발의 고통도,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그 못 자국 난 손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만난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 땅에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까? 나의 의문에 하나님이 할아버지를 소개해주신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이분의 영상과 책을 본다. 볼 때마다 나는 여전히 이분으로 말미암아 심장이 뛴다.
말할 수는 있지만 그대로 살지는 못 하는 게 우리다.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말씀은 어떤 유창한 언어로 구사해도 떠도는 메아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삶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이 땅을 떠난 후에도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한다.
의인의 믿음은 이런 것이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을 온 맘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나를 드리며 살지만, 이 땅이 나의 집이 아니고, 나의 고향도 아니며, 나의 창고도 아닌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이 땅의 기름진 삶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이들의 가방을 무겁게 하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 몸을 버려 가며 밤낮으로 뛰지도 않는다.
이 땅은 지나가는 곳이다. 우리가 정말 바라보는 땅은 하늘의 본향이어야 한다. 최춘선 할아버지는 그렇게 사셨다. 이 땅이 아닌 주님이 계신 그 본향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