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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선사님

청산을 부른다(윤중호)

작성자바람소리|작성시간06.03.03|조회수196 목록 댓글 0

뿔뿔이 달빛 흩어져

모든 것 가뭇 자취 없다, 밤

청산에 들어 청산을 찾다 길 잃고

지친 돌멩이 되어

가파른 산비탈에 눕다.

청산은 어디에 있는가?

함부로 부는 바람에

나뭇잎 깨어나는 소리, 저 높은 곳

두런대는 산들의 소리 들리는데......

 

 

슬그머니 저자거리 내려와

서러운 곱사등, 조막손으로 눈을 가리고, 훔치듯 해바라기하며

차부 한켠에서 눈곱을 떼고 있어도

청산은 청산이다. 추운 세상 고개 돌리다가 언뜻 보았던

아! 그때 그 사람이었을까?

스스로 세상의 넝마가 되어

무료급식소 식판 그득히

따순 온기를 담던 사람, 세상의 쓰레기가 되어, 저물녘에

어둑우둑, 다리 절면서 스스로

깜깜한 밤이 되던 사람

다시, 청산을 부른다.

싱싱한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는

저 마른 잡풀들이, 그리움에 떨며 허리 꺽어 키우는

새봄의 뿌리.

 


청산이 숲을 이룬 곳에는

뭇 생명이 자란다. 숨을 헐떡이며

개울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하찮은 풀잎이나 못쓰는 돌멩이도 자라서

계곡을 심고, 그곳에 뭇 짐승을 키운다.

오지랖도 넓지, 청산은 온갖 수모를

대번에 끌어안고 뒹굴어, 쉿---

아주 낮은 숨, 하나를 키운다

 


청산, 너머에 또 청산, 너머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살랑대는 바람도 푸르게 자라서 길이 되는 곳

나무등걸, 칡넝쿨, 솟을바위, 세상이 버린 멍든 가슴들이

막아선 길 끝

사람이 만든 길 끝에 서서, 울먹이며

청산을 부른다

 



악!

이제까지 밟아왔던 길들이

모두 청산이었다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달빛에 흘려 찾아나선 길.

숨겨진 길, 비전의 길

청산으로 가는 길이 있단 말인가?

사람의 길, 물의 길, 달빛의 길, 저자거리의 길

그 길을 헤매며 길을 찾는다.

길은 보이지 않는데 나뭇잎 촘촘히 막아서고

날더러, 이쯤 서서, 쓰러지는 나무등걸 되어

허망한 세상을 버리란 말인가?



줄렁줄렁 꼬리를 물고, 곳곳에다

한숨을 토해놓던 저 산들은 모두

눈부신 빛덩이로 가는 길?

청산, 길을 버리고

눈을 감는다


청산에 갇혀서 청산을 찾는다

그곳, 길 잃은 곳에서부터

길을 놓아버리고

우두커니 산 아래 산을 바라본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다 잠시 멈추는 산들

신기하다, 저렇게 많은 산들이

슬슬 산을 오르다가, 일제히

구름에 가니 청산을 일으켜 세우다니

나는 청산에 같혔다. 나를 비탈에 누이고

터덜터덜 돌아선다.

"도대체 길이 없어......."

길을 버리고 낭떠러지를 찾는다.

 

 


청산을 부른다

사람이 그리워 청산을 오른다

골골, 메아리처럼 스러질

청산이 기르는 소리가 되기 위하여.....

 

물끄러미 세상을 바라본다.

지아비의 애틋한 인연도 때로는

겨울 나뭇잎처럼 털고 싶은 것

산이 나뭇잎을 지우고

겨울 바람에 몸뚱이를 내맡기듯

벗어버린 세상의 질긴 모습들이 슬프다.

산을 비추며 흐르는

겨울강을 본다. 강에 새겨진 산을 보고

눈 들어 다시 세상을 바라본다.

청산은 아름다운가?

 


들었는가?

겨울산에 기대어 귀기울이면

산의 둥치, 거기쯤에서 움터오는

소리, 산속을 흐르며 왼갖 생명을 뎁히며

슬슬, 불 지피는 소리.

앗! 청산인가?

 

차박차박, 단비 온 세상을 적셔도

마음밭은 자갈밭, 자갈만 키우고

청산은 구름 두르고 하늘만 키운다


강물이 흘러도 그릇만큼만 목 축일 뿐

그저 지나는 세월에 마음 벼릴 뿐

그저 청산은 청산이라 푸를 뿐.

 

청산이 울고 있다. 하루 점두룩

모진 인연의 뿌리를 손에 들고

청산이 울고 있다

청산의 울음소리가 구름을 부르고, 장대비가 되어

성난 계곡물 산허리를 허물고

아름드리 나무들 뿌리째 뽑힌 그곳에서

가슴을 치면서 청산이 울고 있다.

뜬구름이라고, 세상을 버린 적 없는데

버려진 세상이 청산을 부르고, 울먹이며

부르는 소리에

청산이 울고 있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세상을 단숨에 격파하고 싶던 사람들도

입으로 밭을 갈고 싶던 사람들도

청산의 품에서 청산을 기리던 사람들도,

청산에게 주먹질하여 청산을 팔고

청산을 가리고 청산이라 스스로 부르고

청산을 밟아서 더 우뚝한 청산이라 하고,


그러나 비는 온 누리에 뿌린다

청산은

비탈에서도, 반듯하게 하늘로 나무를 키우고

숲을 길러 스스로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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