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빨리 그리고 어지럽게 달린다. 중심점, 구심점 없이 모든 게 제멋대로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맹자의 호연지기가 나의 인생살이에서 중심 역할이라도 해주었으면 한다. 호연(浩然)이란 무엇인가? 사실 맹자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그 말을 쓴 적이 없다.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는데, 이 ‘호연’은 강물이 불어 거대한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모습을 뜻한다고 한다. 그럼 왜 맹자가 호연지기라고 했을까? 어떻게 ‘우리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인 기(氣)가 ‘호연’하게 변하는 것인가! 송나라 때의 이기론 논의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물리세계를 주관하는 기라는 힘이 세상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맹자가 하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맹자는 여기서 세 가지 핵심언어를 말한다. 첫째는 ‘직(直)’이다. 바로 진정성이다. 진실하고 정직하며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며 핑계를 대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義)’이다. 곧 마땅함이다. 어떤 상황에 맞다, 적절하다는 의미의 마땅함이다. 갖가지 상황에 대해 마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지혜가 필요하다. 핵심글자 세 번째는 ‘도(道)’이다. 도는 인류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올바른 길이다. 그러므로 통상 이 도는 사회적인 예의나 예절, 도덕 등으로 표현된다.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에는 공통된 사회적 인식, 공통된 예의와 규범에 따르면 된다. 살짝 말을 바꾸면 의는 어떤 일을 할 때 정당성의 근거가 되고, 도는 인생에서 올바른 길을 찾도록 등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가의 이 ‘의(義)’는 어떤 해석을 가져와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들다. 그래서 공자는 인자(仁者)뿐만 아니라 지자(知者)도 되라고 강조했다. 지자는 흡사 물과 같아야 한다. 산을 만나면 굽이돌고 구덩이를 만나면 그곳을 채운다. 갖가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인자는 어떤 자인가? 지자에 비하면 상당히 단순하다.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산에는 식물도 있고 동물도 있고 물도 있고 바위도 있어서 한마디로 산은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품는다. 이것이 인자이다. 공자는 인과 지 모두를 중시했다. 여기에 용(勇)을 더해 실천에 옮김으로써 참 삶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대장부가 가지고 사는 직과 의와 도의 기초가 되는 기운은 바른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더나아가 자신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고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어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바른몸을 만드는 수신의 으뜸은 국선도 단전행공이며 이것을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 수련이고 국선도 공부이다. 이 국선도 공부를 해서 좋은 점은 18년을 수련한 나는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1년 2년 지나면서 위에서말한 직과 의와 도가 조금씩 살아났고 이것이 어울어져 용으로 나타나고 이 용이 지금은 생활의 기초가 되어 우려져 나오므로 충실하게 모든 일을 임할 수 있고 그것을 또한 믿음직스럽게 처리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겨 항상 그 자리에서 믿음직한 주인이 되어진다. 이것은 몸을 바르게 하므로 실천력이 생기고 이 실천력은 그 일 처리에 자신이 생겨 마음의 안정을 가져와 더욱 사려깊게 일에 임하게 되고 더나아가 그일에 통찰력이 생겨 쉽게 그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이와같이 뼈 속까지 사무치는 단전행공이 우리 몸의 근원적인 부분까지도 단련하고 수련시킴을 알게 된다. 이것이 호연이며, 이 수련이 생활의 기초가 되어있다면 우리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 즉 의사, 운동선수, 공무원, 선생님 또는 교수님, 학생등의 분야에서 직무를 수행함에 효율적으로 적용되어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고귀한 체험을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20180508새벽에 의견을조금 더붙임.) |
김규석변호사가 쓴 내용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