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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강의(최동춘법사님2011.01.04)

작성자현제(안영식)|작성시간15.02.26|조회수158 목록 댓글 0

 

 

총재님 특강

일시: 2010. 10. 26. 화요일 18:00-19:10

장소: 국방연구원연수원(사범 최만영)

초빙강사: 국선도연맹 총재(법사 최동춘)

 

1973년 처음 국선도 시작 1975년 농협을 그만 두고 과학원에서 근무 고향인 광주로 가서 수련원 시작, 2007년에 국선도 대표가 됨, 서울에 화랑대 수련원 동시 운영 처음에는 직장을 그만 두고 입산하여 도사가 되려하였으나 청산 스승이 만류하면서, 산에는 귀신들 밖에 없으니 시중에서 수련을 하라고 하였음.

 

국선도를 하면서 보니, 청산선사가 무리하지 말라하신 것 같이 국선도는 쉬면서 수련하는 것이다. 신발장에 신발을 넣은 순간 바깥세상의 생각과 일일랑은 신발장에 함께 넣어 두고 수련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선도 동작은 기지개 켜는 자세이다. 기지개를 켜면 기운이 온몸에 골고루 퍼져 몸이 시원해 진다. 우리말의 시원하다는 것은 기운이 잘 순환된다는 것이다. 수련할 때 몸이 시원할 정도만 동작을 해주면 좋은데 처음 시작하는 분이 수년간 수련한 사람의 동작을 따라하려하면 무리가 된다. 몸이 시원하게 느낄 정도로 만 하면서 점차 어려운 동작을 하는 것이다.

정신집중은 송곳으로 무엇을 뚫는 것처럼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몰입하는 것이다. 이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긴장된 상태가 아니라 편안하게 이완된 상태이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하고 호흡에 마음을 실으면 절로 몰입이 된다. 일을 하듯이 무언가를 성취하려 무리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정각도에서는 3가지를 하는데 편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자주 하는 말로 몰입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수련의 목적이 나를 알아가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와 싸워서는 곤란하다. 몸과 싸우고 몸을 항복시키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는 친해질 수 없고 싸우는 대상이 되어서는 잘 알게 될 수가 없다. 친해야 잘 알게 되는 것이다.

 

호흡은 숨을 쉰다고 한다. 호흡이 일이 아니라 휴식이 되어야 한다. 호흡이 휴식이 될 때 기운이 재충전이 될 수 있다. 단전호흡은 기운으로 하는 것이다.

호흡은 코와 폐로 한다는 오해를 한다. 코와 폐는 자체의 근육이 없어서 공기를 빨아들일 능력이 없다. 가슴을 움직이는 호흡은 흉식호흡이요, 배를 움직이는 호흡은 복식호흡이며, 단전호흡은 배꼽 아래가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다. 흔히 호흡은 많이 마시고 오래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먼저 단전의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들숨 때는 폐활량의 70%(50-80%) 정도를 마시고, 더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내쉰다. 내쉴 때는 100% 내뱉어야 한다. 완전히 내 뱉으면 빈 공간으로 좋은 기운이 저절로 들어온다. 대장간 풀무가 당겼다 놓았다 할 때 공기가 저절로 나가고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숨을 내쉴 때 들어왔던 공기가 다시 나간다는 오해를 한다. 아랫배로 호흡할 때도 들어온 맑은 기운이 내쉴 때 온몸으로 퍼지고, 다시 나가는 것은 몸속의 탁한 기운이 나가는 것이다. 아랫배로 하는 호흡은 깊은 호흡을 하기 위한 방편이다. 배꼽 위쪽의 몸은 없다고 생각하라고 청산스승이 이야기하셨다.

 

水昇火降 : 몸이 자연을 본받은 것으로서 자연법칙이 몸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하늘의 해가 불이고 땅에 물이 있다. 땅의 수증기가 올라가는 것은 불의 힘이고 구름이 되어 식으면 물은 비가 되어 내려온다. 이러한 水昇火降이 잘 이루어져야 만물이 生長한다. 산골짝 옹달샘이 좋은 것은 물을 끌어올리는 힘이 좋기 때문이다. 물을 끌어 올리는 힘은 불기운이다. 산꼭대기의 약수는 불기운으로 끌어올려진 물이고 이 물은 水火合實한 물이다.

 

心火腎水 : 心火-마음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火降이다. 신장의 水氣上昇시키려면 신장의 아래 아랫배에 불을 때야한다. 불을 때는 것이 心火(마음)를 하단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장의 수기가 상승하게 되어 水昇火降이 왕성해져 건강하게 된다. 하단전은 양 신장 사이에 위치하여 계란만하다고 나와 있다. 앞뒤의 위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상하의 위치는 배꼽아래 세치부분이라 한다. 이를 종합하면 단전의 위치는 배꼽 아래 세치 부분으로 앞에서는 70%, 뒤쪽에서 30% 정도인 양 신장 사이. 무형의 장기이다. 그래서 단전의 위치를 기운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기운을 느끼기 힘들다. 道胎가 생겨야 느낀다. 기운은 절로 도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기운을 느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기운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평상 삶에 불편할 수도 있다. 평소에 피돌이가 느껴진다든지, 기운이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면 번거로울 수 있다. 수련을 하면 필요에 따라 마음으로 기운을 이끌 수 있다.(氣隨神) 기를 느끼는 것이 氣感인데, 이것은 기를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인데 늘 느끼는 것이 정상은 아니란 것이다. 타 수련단체에서 기감을 강조하는 것은 기를 느끼는 것도 있겠지만 보통사람에게 기운을 느끼라고 할 때 정신을 집중하여 기를 느끼려고 하면 느껴진다.

음식물을 곡기라고 하는데 보이는 것은 곡, 보이지 않는 것은 음식물의 기운. 그래서 곡기. 곡은 배설이 되지만 기는 몸에 남는다.

아랫배는 천기와 지기가 만나는 자리. 누었다 일어날 때 허리가 닿는데 이것은 그 부분이 우리 몸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허리힘은 뱃심과 관계가 있다. 뱃심이 없으면 허리가 꺾어지고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정신을 아랫배에 모은다는 것은 수승화강을 왕성하게 하는 것이다.

 

頭寒足熱 : 상체의 병은 대표적인 것이 두통인데 두통은 열 때문에 오는 것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뜨거워진다. 하체의 병은 냉해서 오는 것이다. 하복통은 배가 차서 오는 것이지 배가 뜨거우면서 하복통이 오는 경우는 없다. 수련하면 아래에는 열이 나고 위에는 시원해지는 것이 좋은 것이다. 힘을 주면 기운이 모이고 기운이 모이면 더워지니까 아랫배에 은은히 힘을 주는 것이다.

괄약근은 단전호흡이 잘되면 저절로 조여졌다 풀렸다 하지만 기운을 아레로 내리기 위해서 숨을 들이 쉴 때 괄약근을 조이고 내쉴 때 풀어지면 좋다. 서서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동작 중에도 상체는 골반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하고 힘을 빼고 하는 것이 좋다. 힘을 빼라는 것은 은은히 지긋이 하라는 것으로서 무리하지 말라는 것과 통하는 것이다. 자는 것처럼 완전히 풀어놓으란 뜻은 아니다.

몸통, 머리통, 다리통... 통은 비었다는 뜻이다.

발바닥 용천에서 기운이 올라와 아랫배에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좋다.

윗몸은 없다고 상상하고 아랫배를 선풍기 모터나 진공청소기 모터라고 생각해보면 좋다. 아랫배에 마음을 집중한다는 것은 눈을 감으면 오감 중에 가장 정보를 많이 흡수(83%)하는 보는 행위를 차단하여 보이는 것에 빼앗기던 마음을 자신의 내면으로 집중하기 좋아진다.

집중한다면서 생각을 없애려하지 말라.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을 잡념이라고 하지 말라. 雜念 따로 正念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생각일 뿐이다. 느낌에 마음을 실어두면 생각이 정리된다.

눈 뜨고 있을 때는 보는 것에 주의가 끌려 마음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눈을 감으면 여러 생각이 나게 되는데 자기 안에 있는 생각이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귀찮아하지 말고, 안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는 어린애를 달래는 엄마처럼 그런 생각을 안아주면 저절로 잦아든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억누르려고 하면, 어떻게든 다시 살아난다. 우는 애를 억지로 누르는 것처럼. 방안의 먼지가 평소에 보이지 않다가, 빛이 들어오면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너무 부정적으로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보고 알아주고 안아주면 사라진다.

수련 중에 흔히 경험하는 것은 아픈 데를 많이 느낀다. 그것도 좋은 현상이다. 기혈순환이 되어 기가 돌아가다 보면 나쁜 곳에서 막히고, 막힌 곳이 뚤리는 과정에서,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아픈 것을 느끼게 된다. 통상 아프고 약한 곳이 먼저 나타난다. 수련 중에 아픈 것은 견딜만하게 아프다. 반점이 나기도 하고 종기가 나기도 한다. 바로 그 과정은 몸이 정화되는 것이다. 수련이 진행되면서 저절로 낫는다. 약으로 고치려하면 부작용이 난다.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은 열이 나야 정상으로 되돌아 가기 때문이다. 그것을 억지로 누르면 숨어버리지만 그것이 나중에 다른 형태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몸살이 나기도 한다. 몸살은 몸살리기이다. 몸을 너무 혹사하면, 몸살을 통해 몸의 대청소를 통해 몸을 살리기 위한 과정이다.

수련을 하면서 아파지면 무리하지 말고, 쉬다 간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그러니까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성장통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생명이 커가는 것이 나무의 성장이 점진적으로 은밀히 진행이 되는 것처럼 몸이 조금씩 적응하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하루아침이 뭔가 좋아지길 바라는 것은 병을 바라는 것이다. 병은 몸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매일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면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수련의 성과도 매일 조금씩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진척이 되는 것이다. 수련을 하면서 매일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면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강인호 질문: 피곤한 날 수련의 한 주기를 하는 것을 쉬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가?

수련은 적극적인 휴식이다. 휴일에 피곤하다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쉬면 다음날 더 피곤하다. 몸을 적당히 움직이는 것이 피곤을 푸는데 더 효과적이다. 좋은 사람들 만나서 산책도 하고 가벼운 운동을 하면 피곤이 잘 풀린다. 가장 좋은 수련은 잠자는 것에서 배울 수 있다. 몸이 편해지고 호흡도 아주 깊은 호흡을 하지 않던가.

夢中行功하라. 꿈속에서 몸을 움직이듯이 천천히. 청산사부는 동작을 바꿀 때 1분 정도 걸리더라도 천천히 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호흡을 놓치지 않는다. 천천히 하는 것이 더 어렵다. 태극권은 천천히 한다. 불교에서 위빠사나라는 것도 있는데 천천히 함으로써 눈깜빡이는 것조차도 인식하고 작은 몸짓하나도 느낄 수 있도록 천천히 하는 것이다. 동작을 천천히 하다보면 충분한 휴식이 된다.

여러 동작을 하다보면 동작을 통해서 기운을 유통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몸을 앞으로 숙일 때 뒷다리 근육이 땡기고 그러면 마음이 그리고 가면서 기운도 마음을 따라가면서 기혈 순환이 되는 것이다. 수련이 잘 되면, 마음은 잠을 잘 잔 것처럼 맑아지고 몸은 목욕을 한 것처럼 개운해지는 것이다. 호흡은 보통 1분에 15-18회인데, 중기단법 전편에서는 6번하면서 깊은 호흡을 통해서 전신에 기운을 골고루 퍼지게 하는 것이다. 몸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박태유 질문: 기를 느끼는 것이 사람에 따라 다른데...

기운을 느끼는 것이 필수사항은 아니다. 느껴지면 그냥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청산스승의 가르침에 수련은 나무에 오르기와 같다고 했다. 여행할 때 차창 밖의 경치는 구경만 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모두 경험하려 하면 해 떨어지고 갈 곳에 도착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나무 오르기는 본줄기를 타고 가는 것인데 재미가 없을 수는 있겠으나 곁가지의 꽃을 보고 열매를 보다가 너무 열중하다 보면 실족할 수 있다. 수련의 부산물과 치유, 전생경험 등등 그냥 있어도 없어도 별 문제 없는 것이다. 요즈음은 진동을 하는 분이 별로 없는데 기운이 형성이 되면서 몸의 저항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몸이 좋아질 수 있는데 그것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다른 사람의 변화를 겪는 것에 신경을 쓰지 말고, 자신을 관찰하고 무리하지 말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봄여름에 갈고 씨 뿌리고 가을에 열매 거두는 것처럼. 정각도는 씨뿌리는 것이고 통기법이 거두는 것이라고 한다. 성과를 이야기하면, 흑백논리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수련을 하면 몸이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이고 자연과 가까워진 만큼 자연에서 부여받은 것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다.

 

최종섭 질문: 국선도 수련이 나무 오르기이고, 곁가지에 한눈 팔지말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궁극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련의 궁극은 자연과 같아지는 것이다. 자가 의미 하듯이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는 경지이다. 청산 스승을 비롯한 그 위의 스승들이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믿고 있다. 낮은 곳에서 높은 봉우리를 보면 그것이 가장 높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고, 그 봉우리에 올라보면 더 높은 봉우리가 있는지 그 봉우리가 가장 높은지 알 것이다.

 

2011.1.4 )국선도연맹 총재 최동춘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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