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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시인(국선도 사범 13기)의 중앙일보 기사

작성자바람소리|작성시간08.09.21|조회수103 목록 댓글 0

시인 박해수(13기 사범)의 중앙일보 인터뷰


시인 박해수님 : 13 기 사범님.


박해수 사범님의 중앙일보 인터뷰(2008년 9월 19일) 기사


기차가 떠난 자리에서 태어나는 시

-간이역 시인 박해수 인터뷰 

 

꽃 진 물자리, 젖꼭지 달렸네

자다 잠 깬, 꽃물 든 목숨이네

선 자리 꽃자리


꽃 뿌리 눈물 뿌리


방울새 어디 서서 우나


배꽃, 메밀꽃, 메꽃


배꼽 눈 보이네,


배꼽도 서 있네


녹물 든 급수탑


억새풀 고개 숙인 목덜미


눈물 포갠 기다림,


설렘은 흰 겨울 눈꽃에 젖네


어머니 젖꽃 어머니 젖꽃


젖꽃 실뿌리, 실, 실, 실, 웃는 실뿌리


오솔길, 저녁 낮달로 떴네


어머니 삶 꽃,


젖빛으로 뜬 낮달


오솔길 꽃 진 길 가네


산모롱, 굽이 굽이 돌아


돌아누운 낮달 따라 가네


낮달 따라 꽃 진자리 찾아 가네



시인 박해수 씨의 ‘화본역’이라는 시다. 시 제목에서도 이미 눈치챌 수 있지만 간이역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그는 일명 ‘간이역 시인’으로 통한다. 경북 군위군의 간이역, 화본역에 가면 볼 수 있다. 간이역(簡易驛)은 일반 기차역과 다르게 역무원이 상주하지 않고 기차가 정차만 하는 역을 말한다. 도로와 교통의 발달은 느리게 돌아가는 기차를 대신하여 더 빠른 교통수단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원래의 자리엔 간이역만이 남았다. 전국적으로 현재 남아있는 간이역은 800여 개. 그나마도 폐쇄되거나 철거되어 사라져 가고 있다. 옛것이 대접 받기 어려운 세상 탓이다. 그 때문에 간이역에 서면 어쩐지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진다.
정지된 풍경 속에 흘러 다니는 ‘그곳만의 풍경’에 시인 박해수는 진득하니 홀려있다. 그는 사실 ‘바다의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1985년 대학가요제의 대상곡 ‘저 바다에 누워’의 작시자가 바로 그다. 이제 간이역을 서성이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Walkholic(이하 WH)= ‘바다의 시인', '간이역 시인' 선생님을 대변하는 말들이 많아요.(웃음) 어떻게 그리 불리게 되셨는지?
박해수 시인(이하 박)= ‘바다의 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름 탓도 커요. 海水, ‘바다 해’와 ‘물 수’를 이름자로 쓰고 있으니까요. 거기다 ‘바다에 누워’ ‘서 있는 바다’ ‘바닷가 성당에서’ 등 시집의 주류가 바다였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무렵이었는데, 영원한 생명을 잉태하는 곳, 모든 생명들을 창조하는 곳이 바로 바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시집 속에서는 모두 바다가 출렁입니다.(웃음) 또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 당선 작품인 ‘바다에 누워’가 1985년에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게 된 게 대중들에게 ‘바다의 시인’으로 각인된 것 같아요.
‘간이역 시인’이 된지는 얼마 안 됐어요.(웃음) 2000년대 이후부터거든요. 1938년에 어머니가 남겨 놓으신 사진 한 장이 저에게는 큰 영향을 줬어요. 그걸 본 이후로 간이역을 떠돌면서 시를 쓰게 됐거든요. ‘철로에 서 있는 부평(浮萍)의 마음을’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는데….
간이역 시인이라 불리게 되는 것은 2000년대에 오면서부터입니다. 1938년 어머니가 남겨놓은 사진 한 장 ‘철로에 서 있는 부평(浮萍)의 마음을’ 보며 간이역을 떠돌며 시를 쓰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대구문화방송에서 ‘경부철도 100년, 현대시 100년’을 기념하면서 간이역마다 제가 지은 시로 시비를 세워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확실히 ‘간이역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 거죠.

WH= ‘간이역 시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박= 사라져가는 간이역마다 낭만과 추억의 시비를 세우자는 뜻에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2005년 2월 16일 대구 고모역에 세운 게 첫 시작이었죠. 경북 영천의 화산역, 칠곡의 지천역, 김천의 직지사역, 경산의 삼성역, 군위의 우보역, 칠곡의 신동역, 영천의 임포역, 김천의 대신역, 그리고 화본역을 마지막으로 간이역 10곳에 시비 10기가 세워졌죠. 전국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구 경북으로 축소했어요. 글씨는 독창적인 한글서체를 만들어낸 서예가 류영희 씨가 써주었고, 우리나라 최고의 석공예 명장 윤만걸 씨가 제작을 해주었어요.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죠.
지금도 틈나는 대로 열차를 타고 시를 씁니다. 새벽5시 40분쯤 무궁화 열차를 타고 대구에서 아름다운 바다역인 정동진까지 6시간 남짓을 타고 가지요. 풍광이 얼마나 멋들어지는지…! 제 상상 속에서는 부산에서 러시아까지도 기차 타고 갑니다. 그런 날 오겠죠? 멀지 않았겠조?(웃음)

WH= 간이역 주변은 자연적으로도 산책하기 참 좋은 정취를 가졌을 거 같은데 이맘때쯤 찾으면 좋은 곳이 어딜까요?
박= 시비작업하면서 시 쓰느라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지요. 대구・경북 지역은 물론이고 시비 세우지 않은 곳까지 전국 각지를 다…. 말하자면 간이역을 껴안고 살아 온 셈이죠.(웃음) 사랑과 애정, 집착 이런 것들이 뒤섞여서 ‘명소’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보잘것없는 오솔길도, 누구도 가지 않은 길도 마음이 끌리고 정이 가면 그대로 명소가 될 수 있지요.
김천 직지사역 주변은 포도밭이에요. 그런데 포도밭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화본역 부근의 길들도 제 눈에는 정취가 넘치고, 우보역 주변은 봄에 딱 좋은 곳이에요. 팔공산 줄기 따라 봄꽃들이 환영 인사 건네는 것 같이 보여요. 벚꽃, 개나리, 진달래는 물론이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의 향연이 펼쳐지거든요. 거기다 방울새 울음소리까지 들려오면 그게 심장을 톡톡톡 건드려요.
영천의 화산역은 옛날에 꽃으로 가득 찬 산이었는데, 이제는 그 모습은 볼 수 없어요. 조용하고 한적하고 고즈넉한 시골역인데 폐쇄됐어요. 마음이 아프지요. 낙동강을 끼고 차례로 문경역, 상주역, 점촌역, 용궁역이 이어져요. 어디 하나 아름다움을 버릴 곳이 없어요. 사랑하는 만큼 보이고 마음 가는 만큼 아름다움이 쌓이죠.

WH= 안타깝지만 이제는 사라져가는 풍경이 아닌가 싶어요. 그 중에는 분명 보존 가치가 높은 것도 많을 텐데요. 다른 활용방안이 없을까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박= 지금 이 세상은 속도지상주의죠. KTX에 떠밀려서 간이역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중이죠. 간이역에는 우리네 삶과 사연이 있거든요. 청운의 뜻을 품고 대처로 나서던 꿈 많은 청춘남녀들의 설레는 꿈이 있었고, 닭, 오리, 파, 고추, 호박 같은 것들을 싣고 나르던 우리 아버지・어머니들의 수고가 있었죠. 우리 삶의 풍경들이 거기 기차역에 흩어져 있어요. 그래서 추억과 낭만, 생명과 희망 꿈과 대화를 그려 나가는 작업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폐쇄된 간이역도 여러 가지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대구시내와 가까운 고모역은 문학 전시장, 상설미술전시장 등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효의 바탕이 된 전설 고모령과 연계하여 충효의 교육현장으로 만들어도 좋은 곳이지요. 한국은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기차를 타면 모든 곳이 소공원 같습니다. 문화와 역사는 창의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긴 안목 창의적인 눈을 가진다면 사라지는 역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해 낼 수 있고 문화브랜드가치와 경제적 효과를 충분히 발휘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WH= 선생님에게 간이역은 어떤 영감을 주는 곳인가요?
박= ‘간이역’하면 가슴이 설레지요. 아무리 간이역을 다니고 또 다녀도 계속 그렇게 설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소멸의 미학이 지배하는 곳이어서 마음이 아프지만, 불과 십 수년 전까지도 삶의 역동성과 삶의 애환이 깊이깊이 숨쉬던 곳이었잖아요. 시인은 ‘존재와 내면의 미학’을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삶의 현장, 삶의 애환, 삶의 쓸쓸함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간이역은 쓸쓸함의 미학, 느림의 미학, 사라지고 소멸하는 미학이 있습니다. 여기에 시적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학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삶이 영원이 아니듯 죽음 또한 영원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도 간이역 같은 것이지요. 제 몫과 생명을 다 하면 사라지듯이 간이역도 그런 것과 같아요. 이런 것들을 따라 제 시는 쫓아가는 것이고요

WH=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박= 간이역도 돌아보고 바다 구경도 하러 다니죠. 보통 기차를 타고 다닙니다. 인도나 프랑스, 중국의 역을 보러 가기도 합니다. 역에서 만남과 헤어짐의 어떤 숙명 같은 걸 느껴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제 마음 속에 차지하는 존재감에 대해서도 늘 새롭게 일깨워 주고요. 출판이 허락되면 한국의 역과 일본, 중국, 인도 유럽 등의 역들을 책으로 출간하고 싶습니다. 아마 대형 시집이 될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출판사를 못 찾고 있습니다. 세상물정을 잘 몰라서 그냥 글만 쓰고 여행 다니며 지냈습니다. 돈이 안 되는 시를 쓰면서 말입니다. 다행히 시비를 세워 준 대구문화방송 공재성 편성국장과 노래를 만든 최광철, 서예 류영희, 석공예 명장 윤만걸 님들이 고맙지요. 서울의 좋은 출판사가 책 내어주기를 고대합니다. 역시 삶과 예술은 때가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가톨릭 성인들의 시와 대운하 문제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시란 가장 빈약한 몸을 가졌어도 가장 오래 남고 가슴에 박히는 샛별이 아니겠습니까? 시인으로 또한 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보는 일’ (바다에 누워 첫 구절) 아니겠습니까? 삶의 일회성에 대한 아름다움의 귀로 간이역 역을 찾고 세계로 나아가는 가슴 터진 삶을 살고 싶지요.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애지중지 사랑하면서 자중자애 삶과 시간 시와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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