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생명운동과의 만남에 대하여
***이 글은 환경운동 단체인 (사)푸른평화의 워크샾에서 국선도 체험시간후 하였던 인사말을 보완한 것입니다. 지난 3월13일(토) 장소는 경북 영천 오산자연학교에서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께 우리의 정통 수련법인 밝돌법 국선도를 말씀드리게 됨을 진심으로 기쁘게 그리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 예지의 결정체이자 생명에 대한 바른 수행법인 밝돌법 국선도와 그리스도교회와의 만남, 그리고 국선도와 생명운동과의 만남을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고민하고 기다려 왔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의 자리가 마련되어 무척 기쁘며,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국선도와 그리스도교회, 그리고 생명운동과의 만남을 갈구해 온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서로를 익히고 받아들일 때, 그들의 신앙이나 신념, 그리고 수련에 대한 믿음이 더 굳고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교와 생명운동의 입장에서는 신앙이나 신념을 더 "전인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으며, 한 편으로 국선도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동시에 구체적인 실천의 폭도 넓힐 수 있다고 믿기때문인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명운동은 국선도를 통하여 "머리" 와 "가슴" 으로 가는 신앙과 신념에서 "온 몸"으로 가는 그것으로 바뀌어 질 수 있으며, 동시에 종교적인 신념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내 존재의 뿌리에 깊이 깊이 더 사무치게 새겨 가며 가는 "體化"를 동시에 이룰 수 있을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의 뿌리에 해당하는 단전에 마음을 모은 채 , 몸움직임을 동반한 깊은 "숨"을 쉬며 해 가는 국선도 수련에 그 열쇠가 있습니다.
즉, 수련을 통하여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높은 도덕심이 생기면, 마음의 중심이 잡혀 자연히 심지가 굳어지고 식별력이 생겨 바른 것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진지한 투신"이 이루어지며, 동시에 바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게되어 그러한 진정한 내면화가 이루어지게되는 것입니다.
또한,이러한 영성을 위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서구사회는 동양의 여러 수행 전통--요가, 선, 명상 등 -- 에서 많은 시도를 해 온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 전통들이 다 나름대로 대단한 의미가 있고 인간에게 유익한 방법들이긴 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숨" 에 의지하여 몸과 마음을 함께 닦되, 마음이 몸의 경계를 넘지 못하게 수련해가는 국선도를 통하여 깨달아지는 이치나 도리가, 작지만 더 구체적이고 굳건하므로 영성의 진정한 내면화에 맞는 방법이자 동시에 안전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한 양생의 측면에서도, 더운 지방의 날 숨 위주의 호흡법이나, 마음을 통해서 몸이 부수적으로 좋아지는 방법들 보다는, 동의학의 뿌리이자 민족예지의 결정체인 국선도가 우리에게는 맞고 또한 상대적으로 더 '직접적이고 강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생명력 자체를 강화, 완성시켜 가면서 "힘차게" 진리에 다가 갈 때, 그것은 그리스도교 영성과 생명운동에 있어서 새로운 흐름이자 발견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바른 응답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다른 여러 동양의 수행법들과는 다르게, 깊이 들어갔을 때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신앙과 종교적인 색이나 특성이 --- 그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은 --- 국선도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수행을 목적으로 출발한 그들과는 다르게, 국선도는 오직 인간 생명의 강화와 확충에 목적을 두고 "인간"을 찾아 나서는 "실존 생명의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해서 바라보는 인간의 본 모습이나 끝은 그 어떤 체계보다도 더 진실되고 바르며 이치에 맞을 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중시하는 생명운동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한 편으로는, 국선도도 그리스도교와 생명운동과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해와 구체적인 실천의 폭을 동시에 넓힐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희 국선도의 스승들은 명상이나 선, 요가 혹은 종교가의 눈빛이나 풍모와는 확연히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맑고 밝은 기혈과 함께 특유의 강함이 배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흡사 무술인의 풍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붙잡아 주는 계율이나 계명 혹은 절대자 없이 오직 인간 본성에만 의지해서 수련해가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 몸을 만들어 가면서 해가지 않으면 온갖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는 것이 동양의 수행법 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육체적인 고행을 통해 강하게 수련해 가던 국선도도 그리스도교와의 만남을 통하여, 그들이 초인적인 인내를 통해서 추구해 왔던 "인간"에 대한 답을 새롭게 맞춰 보고, 인간 생명의 보호와 육성 그리고 완성이란 점에서, 그 둘이 결국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고 반가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로서의 국선도와 서구 세계의 근간으로서의 그리스도교가 든든한 동반자로서, 한 목표를 향해 각자 "자기 길"을 힘차게 가는 모습에서 한 층 더 커진 국선도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현대 문명의 위기에서 생명운동을 하는 수많은 "동지"들을 만나, 생활 속에서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을 배우고, 그들도 "익명의 국선도인"이라는 생각으로 기쁘게 하나되어 선도주의 구활창생(求活蒼生)을 실현해 나가는 국선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만 고집하는 사람은 그 하나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는 어느 인문학자의 말을 생각하면서, 국선도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생명운동과의 만남이 진정 상대에 대한 존경과 배려의 열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진지하게 잘 이루어져 나가기를 기원드립니다.
2004년 6월 23일(수)
-국선도 대구 지산수련원 오재용 사범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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