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게시판

불교 금강영관 수행법(선무도)의 창시자 양익 큰스님 열반 기사

작성자바람소리|작성시간06.05.29|조회수169 목록 댓글 0
'불교무도' 양익 스님 좌탈입망

2006/05/08 033면 11:35:51 PDF보기 |프린터 출력 |뉴스 배달서비스


사진 설명:
범어사 원로이며 한국 불교무도(佛敎武道)의 수장인 양익(兩翼) 스님이 지난 6일 오전 1시 20분께 앉은 채로 입적했다. 세수 72세,법랍 44세.
1934년 강원도 홍천 출생인 스님은 서울 법대 출신으로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범어사에 고시 공부를 하러 왔다가 동산 스님을 두 번째로 만나 오랜 인연을 느끼고 이듬해인 1962년 출가했다.

스님은 불교무도에서 한국 최고의 전설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원조 격이었다. 젊은 시절 범어사 일주문을 쉽게 뛰어넘었다고 하며,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은 양익 스님이 결가부좌한 채로 공중부양하여 천장의 못을 빼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스님이 집대성한 불교무도는 '불교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 고려시대까지 전수되다가 중국 선종이 들어오면서 맥이 끊긴 즉신성불(卽身成佛,현재의 몸이 그대로 부처가 됨)의 밀교수행법을 체계화한 것이었다. 스님은 출가 전에 이미 고수였는데 서울 청도관의 허사범(스님의 속명은 허남익)이라면 명동의 깡패들도 겁을 냈다고 한다. 출가 직후 동화사 불국사 봉훈사에서 주요 직책을 맡은 뒤 71년 범어사에 돌아가 40년 가까이 줄곧 후학을 지도했는데 선무도를 펴고 있는 골굴사 주지 적운 스님을 비롯해 수백 명에 이르는 출가 재가의 고수 제자들이 있다.

몸과 마음의 하나됨을 설파했던 스님은 무엇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했다. 또한 "자기의 복을 비는 기도라고 해도 헛되지 않다. 마음을 모으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기도는 멀리 있는 인연을 앞당길 수 있다"며 불교 연기법을 불자들이 생활 속에서 알기 쉽게 얘기했다. 제자 안도 스님은 "입적 하루 전날인 부처님오신날에도 스님께서는 통도사 적멸보궁을 참배하셨다. 당신께서는 제자들 모르게 입적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범어사 주지 대성 스님은 "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는데 아무런 법문도 남기시지 않고 고요히 앉은 채 원적(圓寂)에 드셨다"고 했다. 장례는 범어사 다비장으로 치러진다. 분향소 범어사 보제루,영결식 10일 오전 10시30분. 051-508-3122~5. 최학림기자 theos@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