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속에 흐르는 기운의 길을 터
- 만성 축농증 치료기 - 김영욱 ....... 창간호 <선>에서 옮김
축농증이란 생소한 말을 듣게 된 것은 내가 중학교 때니, 벌써 28년 전의 일이다.
전남 영암군 학산면에 소재하는 남주 중학교 2학년 때에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히고 머리는 자주 띵하고 아파와 독천에 있는 약국에 가서 물어보니, 축농증 시초의 징후이니 약을 좀 꾸준히 먹어야 된다시며 다음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약 1개월 간 계속해서 약을 먹어야 되니, 1주일 먹고 나서 또 오셔야 됩니다.'
그러나, 1주일 가량 약을 먹고 나니 기분도 상쾌해지고, 감기도 다 나은 것같아 약 먹기를 그만 두었다. 하지만 그후에 감기만 오면 농이 나오고 골치가 아파 약국에서 축농증 약을 사다 먹었지만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
고등학교1학년 겨울 방학 때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부모님께 말씀드려 이비인후과의 수술대에 올랐다. 입에 커다란 마스크를 쓰자 서서히 정신이 혼미해지고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수술을 끝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으니 수술 부위는 아파오고 코는 주먹코처럼 부어있었다. 그간 약을 먹고 주사 맞고 치료받는 시간들이 어찌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지금 생각해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수술한지 1주일만에 퇴원하여 통원 치료를 하였으나 얼마 후 재발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다른 병원과 한의원 한약방등을 다니며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으나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않았고 상태가 좀 좋아지는가 싶으면, 재발하여 농이 나오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어떤 때는 소금물이 좋다 하여 코로 들이마셔 입으로 뱉어 내는 일을 몇 달 간 계속했으나 이일 역시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않았고, 소금물의 농도를 진하게 하면 할수록 코는 더 찡하게 울려오고, 머리만 더 아팠다. 더구나 축농증은 코의 상태가 안 좋기 때문에 잠을 잘 때 입을 벌리고 자기가 일쑤여서 기관지와 폐가 안 좋아졌는지 기침도 자주 나오곤 했다.
그 후 교육대학을 나와 교편을 잡으면서, 분필가루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겨울철만 되면 심한 축농증과 만성 기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1985년 어느 때인가 여수 봉산 국민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교사 연수 시간에 호흡 수련에 대한 특강이 있었는데(그때 오신 분이 여수 국선도 수련장의 김광현 법사님이셨다.) 그 특강을 듣고 난 뒤 호기심 삼아 부인과 함께 여수 교동에 있는 국선도 수련장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작들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한달 정도 하니 어느 정도 동작들을 따라할 수 있었다. 6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새벽에 일어나서 여느 때와 같이 수련장에 나가려는데 어찌나 기침이 나오던지 새벽 시간에 나가지 못하고 오후수련 시간에 나갔다. 다음날 새벽에는 잠을 자다 말고 기침이 나와 가래를 뱉어 보니 누런 농이었다. 이런 현상을 법사님께 말씀드리니 '이런 현상을 명현 현상이라고도 하는 데, 옛날에 아팠거나 현재 앓고 있는 병이 나으려고 그러는 것이니, 병원에는 안가셔도 되고, 호흡수련만 열심히 하셔요.' 하는 것이었다.
나의 생각도 법사님의 생각과 같아서 수련만 열심히 하는데도 한 달이 넘도록 기침이 심해 아내도 걱정이 되는지 병원에 가서 진찰 좀 받아보자며 강력히 권했다. 그러나 병원이나 약에 대해서는 이미 불신을 한 지 오래여서 부인의 권유가 귀에 들어 오지도 앟았고, 병원에 갈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45일 정도 지난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침도 멎고 누런 농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명현 현상이 있고 나서 1개월쯤 후에는 막혔던 코에서 콧물이 줄줄 나왔고 특히 새벽시간에 그런 현상이 심했다. 그러나 보름이 지난 후에는 콧물이 멈추었고 머리도 개운하고 몸도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그때야 난 병이란 몸속에 기운이 재대로 흐르지 않고 막힐 때에 생긴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아무리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써도 균을 죽이고 아픈 부위만 치료하는 것으로는 좀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전체적인 몸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재 발병하거나 다른 부위에 또다른 질병이 발생한다는 걸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만성 축농증이 낫고 나서 건강 상태가 좀 좋아지자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해이해져 수련장을 나가지 않다가 작년부터는 마음에 깨닫는 바가 있어 수련원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여 지금은 원기 단법 7단계를 수련하고 있다. 몸을 골고루 움직여 주면서 전신에 기운이 흐르게 하는 국선도 행공 체계야말로 무병하고 바람직한 인격 수양의 바른 길임을 믿기에 오늘도 발걸음을 수련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적이고 단계적인 행공 체계와 심신 수련법을 개발해 내신 우리 조상님들의 슬기와 지혜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아울러 오늘도 묵묵히 수련생 지도와 국선도 보급에 애쓰시는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장세민의 국선도 홈피에서 발췌)
- 만성 축농증 치료기 - 김영욱 ....... 창간호 <선>에서 옮김
축농증이란 생소한 말을 듣게 된 것은 내가 중학교 때니, 벌써 28년 전의 일이다.
전남 영암군 학산면에 소재하는 남주 중학교 2학년 때에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히고 머리는 자주 띵하고 아파와 독천에 있는 약국에 가서 물어보니, 축농증 시초의 징후이니 약을 좀 꾸준히 먹어야 된다시며 다음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약 1개월 간 계속해서 약을 먹어야 되니, 1주일 먹고 나서 또 오셔야 됩니다.'
그러나, 1주일 가량 약을 먹고 나니 기분도 상쾌해지고, 감기도 다 나은 것같아 약 먹기를 그만 두었다. 하지만 그후에 감기만 오면 농이 나오고 골치가 아파 약국에서 축농증 약을 사다 먹었지만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
고등학교1학년 겨울 방학 때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부모님께 말씀드려 이비인후과의 수술대에 올랐다. 입에 커다란 마스크를 쓰자 서서히 정신이 혼미해지고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수술을 끝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으니 수술 부위는 아파오고 코는 주먹코처럼 부어있었다. 그간 약을 먹고 주사 맞고 치료받는 시간들이 어찌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지금 생각해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수술한지 1주일만에 퇴원하여 통원 치료를 하였으나 얼마 후 재발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다른 병원과 한의원 한약방등을 다니며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으나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않았고 상태가 좀 좋아지는가 싶으면, 재발하여 농이 나오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어떤 때는 소금물이 좋다 하여 코로 들이마셔 입으로 뱉어 내는 일을 몇 달 간 계속했으나 이일 역시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않았고, 소금물의 농도를 진하게 하면 할수록 코는 더 찡하게 울려오고, 머리만 더 아팠다. 더구나 축농증은 코의 상태가 안 좋기 때문에 잠을 잘 때 입을 벌리고 자기가 일쑤여서 기관지와 폐가 안 좋아졌는지 기침도 자주 나오곤 했다.
그 후 교육대학을 나와 교편을 잡으면서, 분필가루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겨울철만 되면 심한 축농증과 만성 기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1985년 어느 때인가 여수 봉산 국민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교사 연수 시간에 호흡 수련에 대한 특강이 있었는데(그때 오신 분이 여수 국선도 수련장의 김광현 법사님이셨다.) 그 특강을 듣고 난 뒤 호기심 삼아 부인과 함께 여수 교동에 있는 국선도 수련장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작들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한달 정도 하니 어느 정도 동작들을 따라할 수 있었다. 6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새벽에 일어나서 여느 때와 같이 수련장에 나가려는데 어찌나 기침이 나오던지 새벽 시간에 나가지 못하고 오후수련 시간에 나갔다. 다음날 새벽에는 잠을 자다 말고 기침이 나와 가래를 뱉어 보니 누런 농이었다. 이런 현상을 법사님께 말씀드리니 '이런 현상을 명현 현상이라고도 하는 데, 옛날에 아팠거나 현재 앓고 있는 병이 나으려고 그러는 것이니, 병원에는 안가셔도 되고, 호흡수련만 열심히 하셔요.' 하는 것이었다.
나의 생각도 법사님의 생각과 같아서 수련만 열심히 하는데도 한 달이 넘도록 기침이 심해 아내도 걱정이 되는지 병원에 가서 진찰 좀 받아보자며 강력히 권했다. 그러나 병원이나 약에 대해서는 이미 불신을 한 지 오래여서 부인의 권유가 귀에 들어 오지도 앟았고, 병원에 갈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45일 정도 지난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침도 멎고 누런 농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명현 현상이 있고 나서 1개월쯤 후에는 막혔던 코에서 콧물이 줄줄 나왔고 특히 새벽시간에 그런 현상이 심했다. 그러나 보름이 지난 후에는 콧물이 멈추었고 머리도 개운하고 몸도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그때야 난 병이란 몸속에 기운이 재대로 흐르지 않고 막힐 때에 생긴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아무리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써도 균을 죽이고 아픈 부위만 치료하는 것으로는 좀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전체적인 몸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재 발병하거나 다른 부위에 또다른 질병이 발생한다는 걸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만성 축농증이 낫고 나서 건강 상태가 좀 좋아지자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해이해져 수련장을 나가지 않다가 작년부터는 마음에 깨닫는 바가 있어 수련원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여 지금은 원기 단법 7단계를 수련하고 있다. 몸을 골고루 움직여 주면서 전신에 기운이 흐르게 하는 국선도 행공 체계야말로 무병하고 바람직한 인격 수양의 바른 길임을 믿기에 오늘도 발걸음을 수련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적이고 단계적인 행공 체계와 심신 수련법을 개발해 내신 우리 조상님들의 슬기와 지혜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아울러 오늘도 묵묵히 수련생 지도와 국선도 보급에 애쓰시는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장세민의 국선도 홈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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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와 살아가는 이야기